새벽 5시 새소리에 눈을 뜬다. 세수를 하고 2시간 동안 소설을 쓴다. 옷을 챙겨 입고 도보 40분 거리의 일터로 천천히 걸어간다. 열심히 농사를 짓는다. 간단히 점심을 챙겨 먹고 폐교 2층에 있는 작업실에서 소설을 다시 쓴다. 해가 질 무렵 다시 집으로 걸어 돌아온다. 오후 9시면 잠에 든다. 비가 오나 해가 내리쬐나 일상은 매일 같다. 농사일에 시간을 뺏길 줄 알았건만 단순한 삶을 사는 덕에 소설 작업량은 그대로다. 서울에 있을 때보다 더 행복한 것 같다. 최근 에세이 ‘김탁환의 섬진강 일기’(해냄)를 펴낸 소설가 김탁환(54)의 일상은 이처럼 풍요롭다.
올해 쟁기질이 벌써 시작된 것일까. 3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그의 얼굴은 건강하게 그을려 있었다. 그는 “지난해 1월 1일 전남 곡성군으로 거처를 옮긴 뒤 1년 4개월 동안 오전엔 글밭에서, 오후엔 텃밭에서 살고 있다”며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로 일하며 대전에서, 전업 작가로서 서울에서 각각 10여 년을 살았는데 이젠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웃었다.
“인구가 2만7000명에 불과한 곡성군에서 생애 가장 만족한 삶을 살고 있어요. 가끔씩 서울에 올라오는 시간을 빼곤 곡성군에서 한 해의 대부분을 보내며 맑은 물맛과 진한 흙내가 가득한 문장을 쓰고 있습니다. 제철 채소, 과일처럼 ‘제철 마음’을 먹으며 건강해지고 있죠.”
30여 권의 장편소설을 낸 그가 처음 섬진강에 관심을 가진 건 동명의 한국방송(KBS) 드라마로 만들어진 대하소설 ‘불멸의 이순신’(2004년·황금가지)을 쓸 때였다. 그는 백의종군하던 충무공 이순신(1545~1598)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돼 섬진강변을 따라 북상하며 수군 재건을 모색했던 길을 여행하며 이순신의 마음을 이해하려 했다. 그땐 곡성군을 스치듯 지나갔지만 2018년 곡성군에서 곡물 연구 업체인 미실란(美實蘭)을 운영하는 이동현 대표를 우연히 만난 뒤 삶의 터전과 방식을 바꿔보기로 했다.
그는 “대도시에서의 삶에 회의를 느끼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시작된 뒤에 이사하자고 결심을 내렸다”며 “섬진강을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을 쓰고 있는데 내가 짓는 농사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모두 작품에 녹아들고 있다”고 웃었다. 그는 또 “지난해 수확한 벼 품종이 630종에 달할 정도로 초보 농사꾼으로서도 나쁘지 않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며 “벼 논농사 외에도 텃밭 농사도 짓고, 정원 가꾸기도 하는 탓에 어깨와 허벅지 근육이 뭉치는 게 일상”이라고 했다.
그는 겨울엔 책방을, 봄과 가을엔 이야기학교를 운영한다. 할머니를 모시고 온 20대 손녀부터 은퇴 후 귀촌한 60대까지 다양한 곡성군 주민이 그의 수업을 들으러 온다. 그에게 언제까지 머물 것이냐 물으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가수는 노래 따라가고, 소설가는 이야기 따라간다고 했나요. 적어도 10년은 안 떠나지 않을 것 같아요.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1835~1910)이 미국 중남부 미시시피주에서 살았던 경험을 녹여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 ‘미시시피강의 추억’이라는 미시시피 3부작을 썼듯 섬진강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계속 쓰고 싶거든요. 이곳에서 살아가고 노동하고 글을 쓰는 진정한 ‘마을 소설가’가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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