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는 180만 년 동안 화산 폭발이 지속되면서 방패모양의 순상화산체 형태로 완만하게 이뤄진 뒤 중앙 부위에서 현무암류를 뚫고 점도가 높은 조면암류 용암이 흘러나왔다. 감귤 ‘한라봉’처럼 중앙이 봉긋 솟아오른 백록담 분화구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백록담은 둘레 1720m, 동서직경 600m, 남북직경 400m의 타원형인데, 조면암류 암석으로 이뤄진 북쪽 사면이 풍화작용 등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다. 지질학계는 시간이 흐르면 한쪽이 터진 U자 형태의 분화구로 변할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풍화작용과 지형의 변화는 자연적인 현상이어서 인위적으로 개입하기 어렵지만 주변 탐방로의 안전은 대비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6일 오전 관음사탐방안내소에서 백록담 정상으로 가는 탐방로를 걸었다. 삼각봉대피소(해발 1500m)를 지나 용진계곡을 건너 급경사 구간에 올라서자 진분홍빛 털진달래 뒤로 백록담이 시야에 들어왔다. 섬휘파람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귀가 즐거웠다.
세계 최대 규모의 한라산 구상나무 군락지에도 봄이 찾아왔다. 검은색, 붉은색 열매를 맺기 시작한 구상나무를 뒤로 하고 조금 더 올라가 해발 1800m 정도에 이르자 최근에 백록담 북벽의 일부가 떨어져나간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짙은 회색빛 암벽에서 바위가 떨어져나간 것을 보여주듯 갈색이 선명했다.
조면암류 암반이 발달한 백록담 서벽, 남벽 일대를 확인하기 위해 8일 오전 다시 한라산에 올랐다. 어리목탐방로를 통해 윗세오름(해발 1700m)을 거쳐 백록담 남벽 분기점 코스를 답사했다. 남벽 주변에는 지난해 200㎡ 가량 무너져 내린 암벽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서벽의 암벽 골짜기에서는 최근에 일부 붕괴된 장면이 포착됐다. 풍화작용이 지속되면서 골짜기가 더욱 깊어져 바위가 떨어져 나가고 있는 것이다. 영실계곡 오백장군처럼 특이한 형상을 한 기암괴석 형태로 변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토르(tor)’로 불리는 이런 기암괴석은 차별적인 침식과 풍화작용 등으로 용암 암석이 쪼개지고 분리되는 과정에서 탑 모양으로 남게 된다. 특히 경사가 가파른 백록담의 특성 때문에 풍화물질이 아래로 떨어져나가면서 세로방향의 뾰족한 바위 경관을 보여주고 있다. 백록담 암벽 붕괴는 현무암류 동릉 정상보다 조면암류인 서북벽~서벽~남벽일대에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암석의 수분함유율은 현무암이 2~3%인데 비해 조면암은 18% 정도로 많다. 수분이 얼면 부피가 7~11% 가량 더 팽창했다가 녹는 과정을 거치면서 균열을 가속화하기 때문에 조면암류가 상대적으로 풍화작용에 취약하다. 안웅산 제주도 세계유산본부 연구사(지질학 박사)는 “겨울철에 백록담은 여러 차례 얼고, 녹기를 반복하는 동결-융해현상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에 조면암류 암벽에서 갈라지고 무너지는 풍화작용이 보다 쉽게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지구 나이에 비해 한라산은 상당히 젊은 화산지대에 속한다. 풍화작용 등에 따른 변화는 피할 수 없는 현상이지만 탐방로의 안전이 문제다. 관음사탐방로 가운데 조면암류 구간은 언제 바위가 굴러 떨어질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이다. 특히 삼각봉대피소~탐라계곡 구간은 낙석위험이 상존하고 있다. 실제 2015년 삼각봉 일대에서 바위가 붕괴하면서 탐방로를 덮치기도 했다.
제주지역 지질학계 관계자는 “탐방객 안전을 위해 장기적으로 삼각봉 주변 구간은 폐쇄하고 안전한 대체 코스를 확보해야한다”며 “탐방로를 대상으로 풍화작용 진행 정도와 향후 진행 방향 등에 대한 정밀 조사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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