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린 장피에르 미국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백악관 브리핑룸에 들어서며 함박웃음과 함께 이같이 말했다. 이날 백악관에는 고정석 49석 외에 기자 100여 명이 몰려 복도까지 가득 메웠다. 장피에르 대변인은 기자들이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과 동영상을 찍기 시작하자 “저는 잊어주세요. 이거 저 때문이 아닌 것 알아요”라고 했다. 이어 “오늘 이 자리에 특별 손님으로 천재적인 팝그룹 BTS를 맞이하게 돼 너무 기쁘다”면서 두 주먹을 흔들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BTS가 이날 백악관 브리핑룸을 찾은 것은 미국 ‘아시아·하와이원주민·태평양제도 주민(AANHPI)의 달’ 마지막 날을 맞아 조 바이든 대통령과 면담하고 아시아인에 대한 증오범죄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검은색 정장과 넥타이를 매고 차례로 연단에 오른 BTS 멤버들은 돌아가며 아시아인에 대한 증오범죄 관련 발언을 했다. 리더 RM이 먼저 영어로 “오늘 백악관에 초대돼 반(反)아시아 증오범죄, 아시아 포용과 다양성에 대한 중요한 문제를 논의하게 돼 영광”이라고 하자 진은 “AANHPI 커뮤니티와 뜻을 함께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백악관에 왔다”고 했다. 이어 지민은 “최근 아시아계를 대상으로 한 많은 증오범죄에 놀랐고 마음이 안 좋았다”며 “이런 일의 근절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이 자리를 빌려 목소리를 내려고 한다”고 말했다.
슈가는 “나와 다르다고 그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다. 옳고 그름이 아닌 다름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평등은 시작된다”고 말했고, 뷔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의미 있는 존재로서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기 위한 또 한걸음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제이홉은 “우리 음악을 사랑하는 다양한 국적과 언어를 가진 ‘아미’ 여러분이 있었기에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다”고 했고, 정국은 “한국인 음악이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넘어 많은 분께 닿을 수 있다는 것이 아직도 신기하다. 이 모든 것을 연결해주는 음악은 참으로 훌륭한 매개체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RM은 “중요한 문제를 함께 이야기하고 아티스트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할 기회를 준 바이든 대통령과 백악관에 감사하다”며 기자회견을 마쳤다. RM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는 한국어로 발언을 했고 이후 영어와 한국어 통역이 제공됐다.
BTS 멤버들이 발언하는 동안 백악관을 오래 출입해온 미국 기자들은 저마다 스마트폰을 높이 들고 영상이나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었다. 브리핑룸 뒤에서 영상을 촬영하던 백악관 카메라 기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폰 다운(phone down, 휴대전화 내려요)”이라고 외치기도 했다. 한 백악관 출입기자는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이렇게 많은 기자들이 모인 건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본 기자는 “BTS는 일본에서도 관심이 많아 직접 기자실에 왔다”고 말했다.
BTS는 기자회견 후 바이든 대통령과의 면담을 위해 질문을 받지 않고 브리핑룸을 빠져나갔다. 이어 연단에 선 브라이언 디스 국가경제위원장은 달아오른 열기에 “좋아요”라고 말한 뒤 6초가량 말을 잇지 못한 채 양복 단추를 잠그며 “오늘 집에 가서 아이들에게 BTS가 아빠 브리핑에 오프닝을 해줬다고 말할 것”이라고 농담을 했다.
이날 온라인 생중계된 백악관 브리핑은 31만 명 넘게 동시 접속했다. BTS가 기자회견을 마치자 곧바로 20만 명 이상이 빠져나갔다. 미국 CNBC는 “BTS 멤버 7명이 일으킨 센세이션이 31만 명 넘는 동시 접속자를 백악관 브리핑에 끌어들였다”며 “지난주 목요일 BTS가 없었던 백악관 브리핑은 이날 오후까지 1만6000명만 시청했을 뿐”이라고 전했다.
백악관 밖에도 200명 넘는 BTS 팬이 모여 백악관 펜스 앞에서 “BTS”를 외치며 응원했다. 하자르 베르지지 씨는 “BTS는 매일 음악을 통해 인종차별주의를 다루고 적극적인 메시지 전달을 돕는다. 다른 아티스트들은 잘 하지 않는 일”이라며 “BTS는 음악을 통해 사랑과 통합을 전파하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BTS 소속사 하이브 측은 BTS가 검은색 정장을 맞춰 입은 데 대해 “특별한 의미는 없고 단정하게 예의를 갖춘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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