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이던 5월 29일 오전 11시 20분경,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 팬카페에 게재됐다는 사진에 대해 들었다. ‘건희 사랑(희사모)’에 들어가 봤다. 윤 대통령 부부 사진이 오전 8시 27분부터 잇달아 올라와 있었다. 첫 느낌은 ‘낯설다’였다. 대통령 집무실과 반려견을 품에 안고 일상을 보내는 대통령 부부의 조합이라니! 용산 대통령실 청사 내 집무실 의자에 앉은 김 여사는 질끈 묶은 머리에 반팔 티셔츠와 리넨 팬츠, 스니커즈 차림이었다. 김 여사의 ‘위켄드룩’(오피스룩의 반대말)은 생경함을 도드라지게 했다.
그런데 그저 낯섦이 아니었다. 우선, 사진이 팬카페를 통해 유통된 방식이 괴이했다. 대통령실 청사에서는 보안을 이유로 대통령 전속 사진가와 대통령실사진기자단만 촬영이 허용된다. 또 대통령실 자체적으로 찍은 사진이라면 ‘국민소통관실’을 통해 공개되는 게 보통이다. 대통령 부부의 재가 없이 이를 빼돌릴 간 큰 참모는 없다. 대통령 집무실에서 이래도 되나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18년째 회사를 다니며 부모님께 사무실을 보여드리겠다는 생각을 감히 해보지 못했다. ‘공적 공간’에 대한 장삼이사(張三李四)의 인식도 이렇다.
그럼에도 당일에는 “야권에서 비판 좀 하겠는데…”라고 말하고는 지나쳐 버렸다. 공개석상에 두문불출하는 김 여사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높으니 하며 쉬이 여겼다. 그러고선 다음 날 ‘대통령 부인 놀이’라는 김어준의 발언에 아차 싶었다. 한국 사회에 가장 해로운 인물로 생각하는 김어준의 영향력에 힘입어 이 사진을 뒤늦게 곱씹는 상황에 자괴감이 들었다.
대통령도 주말에는 장을 보고 반려견과 산책해야 한다. 보통 사람이 보통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법이다. 변명하자면, 그 생각에 김 여사가 남편의 퇴근을 기다려 대통령 집무실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팬카페를 통해 이를 공개한 활동까지 사생활로 눈감을 뻔했다. 기자로서 할 말이 없다. 대통령 부부가 갖는 화제성에 냉철하지 못했다. 애당초 대통령 집무실에서 일어나는 일은 개인 활동일 수 없었다. 대통령 집무의 엄중함 때문에 그곳에선 휴일이라도 ‘일상 코스프레’를 해선 안 됐다. 보안구역이어서 문제가 아니라 그 공간이 갖는 의미 때문에 문제인 거다. 국민에게 5년간 빌려 쓰는 공간이라 더욱 그렇다. 그것이 성역화된 청와대를 나온 정신이기도 하다.
대통령의 모든 말과 행동은 메시지다. 대통령이 그래서 숨 막히는 자리다. 쉬어도 메시지 있게 쉬어야 한다. 국민 눈높이에도 어긋나면 안 된다. ‘미국 대통령 부부도 했다’는 해명은 통하지 않는다. 가족과 정치에 관한 ‘컬처 코드’가 다르다. 취임 첫 주말 신발을 사러 간 대통령 부부의 모습은 좋았다. 저 신발을 신고 국민을 위해 곳곳을 누비겠다는 다짐 같았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과 참모들이 이번에 깊게 생각해 보면 좋겠다. 대통령 부부가 백화점에서 신발을 쇼핑하는 것은 되고, 관저와 분리된 집무실에서 반려견을 안고 기념 촬영하는 것은 안 되는 까닭을. 같은 사생활이라도 주는 메시지가 다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