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희균]교육감 직선제의 득과 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6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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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중립 무너지고 유권자도 외면
과연 민주주의에 부합하나 따져봐야

김희균 정책사회부장
김희균 정책사회부장
1일 아침, 작고 흰 공간에 서서 한참을 망설였다. 위아래로 긴 종이들 앞에선 거침이 없었는데, 유독 좌우로 긴 종이 한 장 앞에서 미적거리게 됐다. 정당 추천이 금지돼 후보들이 선거구마다 순서를 달리해 가로로 배치되는 교육감 투표용지였다.

결국 짜증인지 체념인지 모를 감정을 도장에 실어 누르고 나왔지만 찜찜함은 가시지 않았다. 교육감이라는 이름을 달기엔 비교육적인 후보들, 교육감의 권한으로는 지킬 수 없는 공염불을 한 후보들 때문이다. ‘투표는 민주주의의 꽃’이라니 하긴 했다만, 왠지 알면서도 사기 당하는 기분이었다.

동병상련인 이들이 많았나 보다.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 무효표와 기권이 전체 선거인의 51%나 됐다. 성심껏 투표소까지 간 사람마저도 절반 넘게 교육감은 포기했다는 뜻이다. 아예 투표를 안 한 사람까지 더하면 교육감 선거는 악플보다 무섭다는 무플을 받은 셈이다.

교육감 선거의 특이한 점은 이해 당사자가 적다는 거다. 시민이면 누구나 자신의 생활과 직결되는 여타 지방선거와 달리 교육감 선거는 교직원이나 초중고교생 학부모가 아닌 이상 별 영향이 없다. 자녀가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남의 나라 대통령보다 먼 사람일 뿐이다.

반면 교육감이 소수의 이해 당사자에게 미치는 영향은 어마어마하다. 내 아이가 기초학력이 떨어지는데 학교가 진단평가를 하고 지도해 줄지,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 예산이나 인력이 제대로 지원될지, 내가 가고 싶은 특목고가 공정한 평가를 받아 유지될 수 있을지가 교육감에게 달려 있다. 하지만 이를 결정하는 건 진영에 따라, 혹은 누군지도 모르고 표를 던지는 다수의 유권자다.

교육감 선거의 또 다른 특이점은 유독 못 지킬 공약(公約)이 많다는 거다. 가령 이번 서울시교육감 보수 후보들은 모두 자사고와 특목고 체제를 유지하겠다고 했다. 개별 학교 평가와 별개로 체제 자체를 유지하려면 정부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고쳐야 한다. 이들이 반대한 고교학점제 역시 정부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다. 둘 다 교육감 권한 밖의 공약(空約)이라는 얘기다. 시장 후보가 전 국민 건강보험료를 낮추겠다고 나서는 격이다. 하지만 교육감에 관심 없는 유권자들이 교육감의 공약에 관심이 있을 리는 더욱 만무하니 선거 때마다 이런 일이 반복된다.

과거 임명되거나 간선됐던 교육감이 직선제 대상이 된 건 2007년이다. 교육의 전문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자는 취지로 직선제가 실시된 지 15년이 흘렀지만 과연 그렇게 됐나 물었을 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까.

정당이 개입하지 않으니 정치적 중립성이 확보됐다고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동안 교육감 선거는 그 자체로 정치판이 됐다. 후보들 사이에 정책 경쟁은 사라지고 진영 간 대립, 진영 내 단일화 다툼만 커지고 있다. 닳고 닳은 정치인들도 재판 중에는 불출마를 선언하기도 하는데, 돈이나 채용 문제로 사법기관을 드나들면서도 교육감 선거에 나서는 이들이 적지 않다. 명색이 교육을 책임지겠다는 사람들이 고소 고발을 일삼고 상욕까지 한다.

교육감 선거는 회차를 거듭할수록 일반 유권자에게서 멀어지고 있다. 보수와 진보 진영 싸움에 애꿎은 학생과 학부모 등만 터지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교육 수요자들의 손에 쥐어진 것은 없는데 잃은 것은 너무 많다. 교육자에 대한 신뢰, 교육 정책의 일관성이 특히 그렇다. 모두가 직접 교육감을 뽑아야 민주주의의 꽃이 핀다는 허상을 언제까지 붙들고 있어야 할까.

#교육감 직선제#득과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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