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국제음악콩쿠르 꼽혀
첼로 부문 한국인 최초 1위
최하영 “이름 불릴때 사실인가 생각”
“나흘 전 결선곡인 루토스와프스키의 협주곡 연주가 끝나는 순간 와 하는 함성과 기립박수를 치는 청중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우승은 짐작하지 못했어요. 시상식에서 이름이 불리는 순간 ‘사실인가’라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5일 새벽(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폐막한 2022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첼로 부문에서 첼리스트 최하영(24)이 한국인 최초로 1위를 수상했다. 1937년 창설된 퀸엘리자베스 콩쿠르는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차이콥스키 콩쿠르와 함께 세계 3대 국제음악콩쿠르로 꼽힌다. 매년 바이올린 성악 작곡 피아노 부문을 번갈아 개최했고, 작곡 부문은 2012년을 마지막으로 폐지된 뒤 첼로가 추가됐다. 첼로는 2017년 처음 대회가 열렸고 올해가 두 번째다.
1일 결선에서 연주한 현대 작곡가 루토스와프스키의 협주곡에 대해 그는 “현대곡이어서 까다로울 수도 있지만 극적인 효과가 큰 곡이어서 과감히 택했다 결과가 좋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벨기에 도착 직후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테스트 양성이 나와 당황했지만 예선 바로 전날 격리가 풀려 가슴을 쓸어내렸다”며 위기의 순간을 회상했다.
다음은 최하영과의 1문1답.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는 결선에서 새로운 창작곡 악보를 받아 8일 동안 익힌 뒤 연주해야 하는 까다로운 조건으로 유명합니다. 올해 콩쿠르에 나온 외르그 비드만의 창작곡 ‘다섯 개의 소품’은 소화하기 힘든 곡이었나요.
“악보를 받았을 때 낭만적인 곡으로 느껴져 오히려 안심했습니다. 제가 선택한 루토스와프스키의 협주곡도 현대곡이어서 두 곡의 성격이 부딪칠 수도 있었으니까요. 그렇지만 작곡가가 첼리스트가 아니어서 핑거링(손 짚는 법) 등이 익숙하지 않아 익히는 데 시간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특히 템포를 늘였다 당겼다 하는 ‘루바토’가 많아 악단과의 호흡이 중요했는데 지휘자 스테판 드네브와 브뤼셀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정말 잘 맞춰 주셨습니다.”
―결선곡 창작곡 악보를 받은 뒤 브뤼셀 외곽의 ‘뮤직 채플’에 8일 동안 감금(?) 되는데 힘들지 않았나요.
“아름다운 자연에 둘러싸인 곳이고 모든 것을 연주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어서 좋았습니다. 새 곡을 익히느라 정신이 없었죠. 한국인 결선 진출자 넷이 심리적으로 크게 의지가 되었습니다.”
―최하영 씨 연주에 대한 청중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이 콩쿠르의 관객들은 대부분 매일 와서 연주를 듣는 열성팬들이죠. 매회 연주가 끝날 때마다 많은 관객들이 직접 찾아와 격려해주셨습니다.‘다른 세상에 온 것처럼 매료되어 음악을 들었다’는 얘기가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참가자는 호텔 대신 일반 브뤼셀 시민 가정을 택해 숙박하며 연습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자원봉사자(서포터) 가정에 가서 지낼 수 있죠. 저는 브뤼셀 중심에서 20분 떨어진 교외의 아름다운 집에서 지냈습니다. 너무도 따뜻한 가족이었고, 제 우승 소식이 전해진 순간 다같이 눈물을 흘리셨다고 하셨습니다. 평생 잊지 않을 것 같습니다.”
―첼로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듣고 싶습니다.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첼로를 시작했습니다. 어머니가 먼저 아마추어로 첼로를 배우셨는데, 옆에서 들으며 ‘나도 하고 싶어’ 한 게 시작이었죠.”(웃음)
―앞으로의 계획은. 언제 서울에서 만날 수 있나요.
“입상 특전으로 벨기에에서 몇 주 동안 협연 일정이 잡혀 있습니다. 6월에는 스웨덴에 가서 안토니 비트가 지휘하는 뇌르쾨핑 오케스트라, 바이올리니스트 알렉산드라 쿨스와 팬데레츠키의 이중협주곡을 녹음합니다. 콩쿠르 입상 전 이미 계획되어 있던 녹음이고 낙소스 레이블로 발매될 예정입니다. 콩쿠르 입상에 따른 한국 투어는 9월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오케스트라 협연과 리사이틀 모두를 소화하게 됩니다.”
―자신의 음악적 모델이 있다면.
“보자르 트리오의 일원이었던 미국 첼리스트 버나드 그린하우스를 존경합니다. (그는 첼로 케이스에 그린하우스의 사진을 넣어두고 있다) 그분 댁이 있는 보스턴 근교에서 2009년 몇 주 동안 함께 지내며 레슨을 받고 산책도 함께 했는데, ‘좋은 첼리스트가 되기보다 좋은 음악가가 되라’는 말씀에 깊은 깨우침을 받았습니다.”
이번 우승에 따라 최하영이 받는 상금은 2만5000 유로(약 3370만원)이다. 이번 콩쿠르 2위는 중국의 이바이 첸, 3위는 에스토니아의 마르셀 요하네스 키츠가 차지했다. 올해 대회에서는 최하영 문태국 윤설 정우찬 등 한국인 네 명을 비롯해 12명이 결선에 진출했다. 결선에서 작곡가 외르그 비드만의 신곡 ‘5곡의 소품’과 연주자가 선택한 협주곡 1곡씩을 브뤼셀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연주했다.
2015년부터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와 업무협약을 맺고 한국인 참가자와 심사위원을 지원해온 주벨기에 한국문화원의 김재환 원장은 “예선부터 관객들이 최하영의 연주에 유독 열렬히 호응했다”고 전했다.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5일 축전을 통해 “음악을 향한 순수한 열정과 예술적 창조력, 도전정신이 빚어낸 결과”라고 축하했다.
최하영은 2006년 금호영재콘서트로 데뷔했으며 2011년 브람스 국제 콩쿠르 최연소 1위, 2018년 펜데레츠키 국제 첼로 콩쿠르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와 한국예술영재교육원을 거쳐 영국 퍼셀 음악학교에서 수학했다. 독일 크론베르크 아카데미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쳤다. 2019년 금호악기은행 수혜자로 선정되어 파올로 마치니 첼로를 임대 받았다. 2017년부터 크론베르크 아카데미 부설 에마뉘엘 포이어만 콘서바토리에서 강사로 활동해왔고 2020년부터 베를린 국립예술대학에서 수학하며 에투알클래식 소속 아티스트로 활동 중이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는 소프라노 홍혜란이 2011년, 소프라노 황수미가 2014년 성악부문 1위를 차지했다. 임지영이 2015년 바이올린 부문 1위에 입상했다. 2012년까지 열린 작곡 부문에서는 2008년 조은화, 2009년 전민재가 각각 1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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