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쿠이나 후보를 응원해 주시기 위해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와 주셨습니다. 모두 큰 박수로 맞아 주시기 바랍니다.” 27일 오후 일본 도쿄 지요다구 한 연회장. 참의원 선거 도쿄 선거구에 출마한 자민당 이쿠이나 아키코 후보 연설회 연단에 아베 전 일본 총리가 찬조 연설자로 섰다. 아베 전 총리가 온다는 소식에 준비된 의자 250여 석은 시작 30분 전 동이 났다. 연설회장 뒤에 서 있을 공간도 없어 회장 밖 복도에서 까치발을 들고 봐야 할 정도로 사람이 몰렸다.》
7월 10일 열리는 일본 참의원 선거전이 중반에 접어들었다. 한국처럼 대형 전광판을 동원하거나 유니폼을 맞춰 입은 당원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유세는 없지만 전국에서 마이크를 잡고 한 표를 호소하는 모습은 다르지 않다. 일본 언론은 이번 선거로 기시다 후미오 내각이 안정 의석을 얻어 ‘황금의 3년’을 구가하며 헌법에 자위대를 명기하는 등 개헌까지 실현시킬지 주목하고 있다.
청중과 셀카 찍는 아베
“야당이 금리 올리자고 하는데, 뭘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내가 처음 총리를 맡은 10년 전에는 엔고(円高)로 공장이 전부 해외로 나갔어요. 아베노믹스로 경제가 좋아진 것 아닙니까. 그런데 언론이 제대로 보도를 안 해 준다, 이겁니다.”
원고 한 장 없이 자기 자랑과 유머를 섞은 그의 연설에 청중은 “와!” 탄성을 지르며 박수로 호응했다. 30여 분 연설을 마치고 나가는 그를 건물 입구에서 기다리던 여대생 4명이 같이 사진을 찍자고 요청했다. 기꺼이 응한 아베 전 총리와 스마트폰으로 ‘셀카’를 찍은 한 명이 친구들과 사진을 돌려보며 신기해했다. 기자가 어느 당을 지지하느냐고 묻자 이 학생은 “처음에는 별로 안 좋아했지만 안보를 생각해 자민당을 지지한다. 자민당이 국가 안보를 위해 노력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날 오후 도쿄 기타구 아카바네역 교차로에서는 재선에 도전하는 아사히 겐타로 의원 가두연설회가 열렸다. 3선 참의원인 마루카와 다마요 전 올림픽 담당 장관이 응원 연설을 위해 마이크를 잡았다.
“코로나를 이겨내고 도쿄 올림픽을 완수해 세계인이 감동했습니다. 일본이 아니면 할 수 없었다며 찬사를 보내지 않았습니까.”
마루카와 전 장관이 연설하는 동안 아사히 의원은 유권자들과 악수를 하며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낮 기온이 섭씨 35.1도까지 올라간 찜통더위에 가두 유세장 주변 빌딩 그늘 밑에서 유권자 10여 명이 연신 부채질을 하며 연설을 들었다. 지역 주민 사토 씨는 “물가가 올라 걱정이긴 한데, 그래도 자민당이 강하고 정책을 추진하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 지지한다”고 말했다. 이름을 밝히길 거부한 주부는 “누가 돼도 달라지는 게 없어 관심이 없다. 언제 선거를 하는지도 모른다”며 발길을 돌렸다.
‘자민당 우세’ 속 물가고 초점
일본 언론은 이번 선거를 통해 자민당이 참의원 의석 과반을 무난하게 달성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야당조차 이런 전망을 인정한다.
NHK가 24∼26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기시다 내각을 지지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50%로 ‘지지하지 않는다’(27%)를 훨씬 앞섰다. 기시다 내각 지지율이 한 달 전 59%보다 9%포인트 낮아졌지만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 시절인 지난해 2월 내각 지지율이 38%까지 떨어진 것과 비교하면 고공 행진이다.
정당 지지율도 자민당(35.6%)이 제1야당 입헌민주당(6.0%), 보수야당 일본유신회(4.8%) 등을 크게 앞서고 있다. 한 언론사 정치부 기자는 “자민당 지지율이 워낙 높아 지금은 여야 승패를 논하는 게 의미가 없을 정도”라고 분석했다.
기시다 총리는 선거 승리 기준을 “선거가 없는 의석을 포함해 여당이 (참의원) 과반을 차지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참의원 전체 245석 중 이번에 선거를 치르는 125석 가운데 여당이 56석을 가져가면 가능하다.
기시다 총리의 목표는 어렵지 않게 달성될 것으로 보인다. 아소 다로 자민당 부총재(전 총리)가 “이번처럼 선거를 앞두고 편안해 본 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여당 지지세는 굳건하다. 최근 생활물가가 오르며 국민이 민감해하는 분위기지만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 2.1%(지난해 같은 달 대비)는 미국 영국 프랑스 같은 다른 선진국보다 많이 낮은 수준이라 정국을 흔들 정도의 변수는 되지 못하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은 자민당이 참의원 전체 과반 의석 확보를 위해 필요한 56석을 넘어 이번 선거 과반(63석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내놨다. 입헌민주당은 23석 확보도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승리 힘입어 ‘개헌 드라이브’ 걸까
싱거운 승부가 될 확률이 높은 이번 선거 관전 포인트는 자민당 숙원인 개헌이 가능한 의석을 확보할지다. 자민당은 선거에 승리하면 평화헌법에 자위대를 명기하는 등 개헌을 실현하겠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일본도 한국처럼 헌법 개정을 위해서는 중·참의원 각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자민당과 연립여당 공명당 일본유신회 그리고 소수 야당 국민민주당은 큰 틀에서 개헌에 찬성하고 있다. 이른바 이들 ‘개헌 세력’은 중의원에서는 이미 의석 3분의 2를 넘었다. 요미우리신문은 “자민 공명 유신 국민민주 등 4개 정당이 이번 선거에서 총 82석을 획득하면 개헌 세력이 (참의원에서도) 3분의 2를 넘는다”고 보도했다.
오사카를 기반으로 세력을 다져온 일본유신회는 최근 자민당보다도 우경화한 스탠스로 제1야당을 차지하겠다는 의욕을 보이고 있다. 과거 정통 야권 계열이던 국민민주당은 “반대만 하는 야당에서 벗어나겠다”고 선언하며 예산 심의 등에서 자민당과 힘을 합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누구보다 선거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사람은 기시다 총리다. 지난해 10월 취임 후 모든 정책을 참의원 선거에 맞췄다고 할 만큼 신경을 쓰고 있다. 지난해 11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새 변이 오미크론이 확산되기 시작하자 바로 외국인 신규 입국을 금지하는 초강수 카드를 꺼내든 그는 결단력을 평가받으며 단번에 지지율을 끌어올렸다.
파벌 정치로 돌아가는 자민당에서 세력 4위 소수파인 고치카이(기시다파)를 이끄는 기시다 총리는 선거 승리를 발판으로 정무와 정책 모두에서 자신의 색깔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고치카이는 개헌과 방위력 강화를 내세우는 아베파 같은 보수 강경파와 달리 경제 우선, 아시아 선린우호를 강조하는 비둘기파로 간주된다. 기시다 총리는 취임 후 주요 정책을 발표할 때 사전에 아베 전 총리 사무실을 직접 방문해 설명하는 등 예우를 갖춰 왔지만 최근 아베 전 총리 비서관을 지낸 방위성 차관을 아베 전 총리의 반대에도 전격 교체했다. 선거 후 당내 주도권 장악을 위한 파벌 싸움을 예고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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