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과 천연가스가 포함된 유럽연합(EU) 친환경 투자 기준 녹색분류체계(Taxonomy·택소노미)가 내년 1월 1일 시행된다. 유럽의회가 6일(현지 시간) 택소노미에 원전과 천연가스를 포함하는 EU 집행위원회 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았는데도 원전과 천연가스를 친환경 에너지로 분류한 것은 원전 없이는 화석연료에 더욱 의존해 탄소중립(탄소배출 제로·0) 달성이 어렵다는 현실론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영국 BBC는 “EU가 고민 끝에 ‘과도기적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전했다.
○ ‘그린워싱’-우크라이나 반대에도 통과
택소노미는 특정 산업이 탄소중립에 도움이 되는지 규정한 목록이다.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이 목표인 EU의 기후변화 목표에 적합한 투자 가이드라인인 셈이다. 여기에 포함돼야 친환경 관련 투자를 받을 수 있다.
2020년 6월 처음 발표됐을 때는 택소노미에 원전과 천연가스가 포함되지 않았다. 하지만 탄소배출이 많은 석유 석탄에서 태양광 풍력 같은 신재생에너지로 곧바로 전환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또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급격히 높이고 화석연료 비중을 줄인 스페인 영국 등은 지난해 전기료 급등 같은 부작용을 겪었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해 12월 원전과 천연가스를 포함한 택소노미 초안을 올 2월 확정했다.
그러자 친환경적이지 않은 원전 등을 친환경 에너지로 위장하는 ‘그린워싱’(세뇌를 뜻하는 브레인워싱에서 따온 말)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원전은 발전 시에는 친환경적이지만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인 폐연료봉 처리 문제가 심각하다. 천연가스는 이산화탄소보다 80배 강력한 온실효과를 내는 메탄을 배출한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천연가스가 포함된 택소노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선물을 주는 것”이라며 반대했다.
이를 의식한 듯 유럽의회는 택소노미 포함 조건을 까다롭게 달았다. 원전과 천연가스에 투자하려면 반감기가 수십만 년인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마련 및 안전한 처분, 기존 원전 시설 개선 및 수명 연장, 사고 확률이 낮은 사고저항성 핵연료(ATF) 사용 등을 지켜야 한다.
○ 佛, 원전 확대 위해 전력공사 국유화 추진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유럽의회 결정에 대해 “EU의 에너지 위기에 대한 두려움이 환경을 이유로 원전의 택소노미 포함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이겼다”고 평가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화석에너지를 신재생에너지 체계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그 공백을 원전으로 메우려는 움직임이 더욱 두드러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원전과 천연가스에 투자하지 않으면 석탄 석유에 더욱 의존하게 되는 현실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실제 프랑스 위성데이터분석업체 케이로스는 지난달 “석유 석탄 등 화석연료의 메탄 배출이 올 1분기(1∼3월) 세계 곳곳에서 지난해보다 최대 50%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유럽 주요국은 원전 폐기에서 원전 유지 및 확대로 에너지 정책을 바꾸고 있다. 엘리자베트 보른 프랑스 총리는 6일 “정부가 보유한 전력공사(EDF) 지분을 기존 84%에서 100%로 확대하겠다”며 전력 생산 국유화를 선언했다. EDF를 국유화해 원전 확대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의미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2028년부터 신규 원자로 6기 건설을 시작해 2035년에 새 원전을 가동시키겠다”며 원전에 10억 유로(약 1조3300억 원)를 투입하는 ‘프랑스 2030’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같은 달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도 차세대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 등을 담은 ‘넷제로(Net Zero)’ 정책을 공개했다. 네덜란드는 50억 유로(약 6조7000억 원)를 투입해 원전 2기를 신설할 계획이다. 다만 오스트리아, 룩셈부르크는 EU를 상대로 제소하겠다고 밝혔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