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을 거치는 동안 기업이나 브랜드가 제공하는 경험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가 많이 달라졌어요. 어떻게 해야 요즘 소비자들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을지 고민이에요.”
최근 기업의 마케팅 담당자들을 만날 때마다 흔히 듣는 화두는 ‘경험’이다. 사람들이 공간을 경험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곳에 대한 설계가 잘되어 있어야 더 오래 머무르면서 지갑도 열 것이기 때문이다.
팬데믹에도 입소문이 난 브랜드나 공간의 공통점을 분석해 보면 경험을 ‘박제’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감염병이 한창이던 시기엔 오프라인 공간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멋진 것을 보는 것 자체가 희소성 있는 행위였고 때로는 사치였다. 남들이 못 하는 경험을 자랑하고 싶은 명품 구매 심리처럼, 오프라인에서의 경험은 박제를 해서라도 공유하고 싶은 추억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팬데믹과 그 이후에도 잘 팔리는 경험의 조건 첫 번째는 ‘시성비(시간 대비 성능)’다. 오프라인 활동이 제한되는 시기, 시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기억에 남는 경험을 선사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를 잘 실현한 사례가 공간 디벨로퍼 기업인 ‘글로우서울’이다. 서울 종로구 익선동과 창신동, 대전 동구 소제동 등을 힙한 카페와 레스토랑 거리로 변화시킨 주인공이다. 하지만 예쁜 공간들을 기획해 유명세를 탄 글로우서울이 매장 설계 시 고수하는 철칙은 뜻밖에도 ‘포토존은 조성하지 말 것’이다. 인위적인 포토존에는 인간의 경험이란 ‘영혼’이 배제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들이 접근성도 나쁘고 낙후됐던 지역을 몇 시간씩 기꺼이 줄을 서는 핫한 공간으로 만든 비결은 특정 포토존이 아닌 공간 전체에 경험적 요소를 풍부히 넣었기 때문이다. 전체 매장 면적의 60%는 영업 공간으로, 40%는 비영업적 콘텐츠로 채워넣는 것도 경험 설계를 위해서다. 일본 료칸 이미지를 살린 샤부샤부 전문점 ‘온천집’, 신비한 동굴처럼 설계된 태국 식당 ‘밀림’도 그랬다.
이동이 제한된 시기, ‘시성비’ 넘치는 경험은 이처럼 외국을 테마로 한 콘텐츠로 구현돼 큰 각광을 받기도 했다. 도넛 카페 ‘카페 노티드’를 성공시킨 GFFG는 미국인들의 대표 간식인 도넛, ‘미국식 중국 요리’를 내세운 차이니스 레스토랑 등으로 ‘미국의 맛’을 브랜딩했다. GFFG 측은 “음식이나 매장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미국 여행을 경험하려는 MZ세대가 차별화된 콘텐츠로 받아들인 것 같다”고 말했다.
경험 설계는 오프라인 공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팬데믹이라는 ‘시대정신’을 읽은 브랜드들은 소비자들의 감성을 공략하고, 이를 팬덤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예컨대 시몬스침대는 코로나 3년 차를 맞아 심신이 지친 소비자들에게 ‘멍 때리기’란 소재로 광고 캠페인을 선보였다. 이 광고는 소비자들에게 묘한 힐링을 선사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TV 광고 시청률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시성비’와 시대정신은 이처럼 소비자들의 발길과 눈길을 사로잡는 경험 설계의 성공 키워드가 됐다. ‘마음 편하게’ ‘시간을 귀하게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소비의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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