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액 낮추려 입찰 반복”…건설사 10곳중 3곳 불법하도급 경험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7월 11일 11시 30분


철근콘크리트연합회 서울·경기·인천지부는 11일부터 하도급 대금 증액 요청에 비협조적인 18개 시공사의 공사현장 26곳에서 작업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작업 중단 대상에 포함된 2천990가구 규모의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원베일리' 공사 현장.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철근콘크리트연합회 서울·경기·인천지부는 11일부터 하도급 대금 증액 요청에 비협조적인 18개 시공사의 공사현장 26곳에서 작업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작업 중단 대상에 포함된 2천990가구 규모의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원베일리' 공사 현장.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건설공사 부실의 주범으로 불법하도급이 꼽히고 있다. 이런 가운데 원청업체가 하도급 공사금액을 낮추기 위해 입찰을 반복해서 실시하고, 이를 경험한 업체가 10곳 가운데 3곳에 달한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특히 공사규모가 커서 대형업체가 하도급에 참여하는 경우 절반 이상이 이런 일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하도급 입찰 과정에서 나타나는 각종 비리를 방지하기 위해 입찰자료 공개를 의무화하고, 이를 어길 때 내려지는 처벌을 강화하는 등 대책 마련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

중소건설사 모임인 대한전문건설협회 산하 연구기관인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은 최근 이런 내용이 담긴 보고서 ‘건설공사 하도급 입찰 문제점 및 개선방안’을 발행했다. 보고서는 정부가 지난해 말 수립한 불법하도급 방지대책을 공공공사에만 적용하기로 하면서 민간공사에서 발생하는 불법하도급 문제를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마련됐다.
공사금액 낮추기 위해 입찰 반복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649개 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에서 187개(28.8%)가 하도급 공사계약 과정에서 재입찰을 경험했다. 또 공사규모가 커 대기업들만 참여하는 하청입찰에서는 전체(90개사)의 57.7%(51개사)가 재입찰을 통해 공사를 따낼 수 있었다.

업체 규모에 상관없이 작년 한 해 동안 이런 하도급 재입찰을 경험하는 건수도 평균 3.65건에 달했다. 또 이런 반복되는 재입찰을 통해 공사계약을 맺었을 때 최초입찰가보다 평균 17.6% 정도 감액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런 결과들이 모두 전년(2020년)보다는 소폭 나아진 수준이라는 점이다.

2006년 12월 광주에서 진행된 건설사 A와 B의 도시가스배관공사 하도급계약 과정은 이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사례다. A사는 6개 업체를 대상으로 경쟁입찰을 실시했고, B사가 최저가를 제시했다. 하지만 A사는 B사를 포함한 3개 업체를 대상으로 다시 입찰을 진행했다. B사는 울며 겨자 먹기로 응찰가를 추가로 낮춰야 했다. 결국 B사는 최초 가격보다 1000만 원 낮춘 가격에 공사계약을 맺었다.

원청업체가 최저가 입찰을 통해 하도급업체로 선정한 뒤 정당한 사유 없이 낙찰금액보다 낮은 금액으로 계약을 체결하도록 강요하는 일도 무려 24.5%나 됐다. 또 입찰을 진행하면서 다른 입찰자의 견적금액을 알려주고, 하청사업자에게 낮은 입찰금액을 써내도록 유도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경우 하청업체들은 대부분 기업 유지에 필요한 공사물량 확보를 위해 이를 수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이에 대해 “이러한 원청사업자의 불법행위는 하도급 공사의 입찰과 낙찰자 선정과정이 공정하지 못하고 투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하도급 입찰자료 공개 의무화 필요하다”
이런 불법 하도급계약이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이를 막기 위해 정부는 의원입법을 통해 지난해 12월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하도급법’)을 개정했다. 이에 따르면 하도급계약의 입찰금액 및 낙찰결과를 입찰 참가자들에게 공개하게 하고, 이를 어길 시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게 된다.

문제는 강화된 규정이 국가나 공기업, 준정부기관이 발주하며 종합심사낙찰제 적용 대상공사입찰로 제한돼 있다는 점이다. 즉 일부 대형 공공공사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하도급입찰공사가 대상에서 제외되는 셈이다.

보고서는 따라서 “하도급 입찰에서 발생하는 원청사업자의 불공정 행위는 사회적·경제적 약자인 하도급사업자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라며 “법리적으로나 대법원 판례 등을 검토했을 때 모든 건설공사의 하도급 입찰 결과를 공개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또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입찰자료 공개 의무를 위반한 때 내려지는 처벌 수위도 현재보다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위반한 사실이 적발되면 △시정조치 △하도급대금의 2배에 해당하는 금액 이하의 과징금 부과 △벌점 부과 및 입찰참가자격 제한 등과 같은 조치가 내려져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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