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어스테핑’은 원래 위험천만 취재를 말한다?[정미경의 이런영어 저런미국]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7월 16일 12시 00분


힐러리의 “젠장,” 닉슨 vs 프로스트 맞대결, 트럼프의 러브레터 고백
대통령과 기자가 만났을 때 탄생한 명장면들

“He doorstepped me at a private party.”(사적인 모임에서 나를 도어스텝하다니)

최근 ‘도어스테핑(doorstepping)’이라는 단어가 화제입니다. 외교가에서는 오래 전부터 ‘약식 회견’ 의미로 ‘도어스테핑’이라는 단어를 써왔지만 새 정부 들어서는 대통령의 ‘출근길 회견’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아침마다 용산 대통령실 청사 앞에 모인 기자들과 대통령이 나누는 즉석 질의응답(Q&A) 세션입니다.

언론이 사전 동의를 얻지 않고 취재원의 거처, 중요한 장소 등에 진을 치고 취재하는 것을 ‘도어스테핑’이라고 한다. BBC 취재 매뉴얼
언론이 사전 동의를 얻지 않고 취재원의 거처, 중요한 장소 등에 진을 치고 취재하는 것을 ‘도어스테핑’이라고 한다. BBC 취재 매뉴얼


‘doorstep’은 ‘집 앞 계단’ ‘문간’을 뜻합니다.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외국인들은 누가 문 앞까지 접근하면 침입자라고 여기며 반기지 않습니다. 도어스테핑은 원래 기자들이 사전 동의를 얻지 않고 문 앞까지 들이닥쳐 과열 취재 경쟁을 벌이는 것에서 유래했습니다. 문 앞이 아니더라도 중요한 인물이 타고 있는 차에 마이크를 들이미는 것도 도어스테핑이라고 합니다.

도어스테핑은 영국 유럽식 영어입니다. 2005년 한 비공개 파티에 참석한 런던 시장은 기자가 잠입 취재를 하려고 하자 “사적인 모임에서 나를 도어스텝 하다니”라며 벌컥 화를 냈습니다. 영국 BBC 방송은 도어스테핑을 위험한 취재 행위로 간주하고 이를 시도하는 기자들은 사전에 상부의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과격한 취재가 자주 벌어지지만 도어스테핑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습니다.

어떤 단어를 쓰건 간에 유력 정치인, 특히 대통령이 언론의 최고 관심사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기자들은 대통령 주위에 몰려들고 인터뷰를 하기 위해 전력을 다합니다. 미 역사에 길이 남는 대통령 인터뷰 명장면을 알아봤습니다.

1977년 퇴임 후 리처드 닉슨 대통령(오른쪽)을 인터뷰하고 있는 영국 언론인 데이비드 프로스트(왼쪽). 리처드 닉슨 도서관 홈페이지
1977년 퇴임 후 리처드 닉슨 대통령(오른쪽)을 인터뷰하고 있는 영국 언론인 데이비드 프로스트(왼쪽). 리처드 닉슨 도서관 홈페이지


“I let down the country. I let the American people down.”(나는 국가를 실망시켰다. 국민들을 실망시켰다)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물러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2년 넘게 은둔생활을 했습니다. 그동안 자서전을 썼습니다. 자서전을 완성한 뒤 공식적인 ‘컴백’을 위한 언론 인터뷰를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은 닉슨 대통령을 용서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터뷰를 하겠다고 선뜻 나서는 언론이 없었습니다.

그때 미국에서 활동하던 영국 언론인 데이비드 프로스트가 나섰습니다. 1977년 닉슨-프로스트 인터뷰 과정은 2009년 국내에서도 개봉한 미국 영화 ‘프로스트 vs 닉슨’에 잘 나와 있습니다. 영화는 극적인 긴장감을 위해 두 사람 간의 치열한 대결 구도를 강조했지만 실제인터뷰에서는 프로스트가 닉슨에게 지나치게 동정적이었다는 평이 지배적이었습니다.

닉슨 대통령은 프로스트 인터뷰에서 자신의 위법 행위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미국을 실망시킨 점은 인정했습니다. ‘let down’은 ‘내려가다’라는 뜻으로 부피나 무게가 줄어들거나 사회적 분위기가 위축될 때 씁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실망시키다’가 뜻이 더 일반적입니다. “너를 실망시키지 않을게”는 “I won‘t let you down”이라고 합니다.

1992년 시사 프로그램 ’60분‘에 출연해 성추문을 해명하는 빌-힐러리 클린턴 부부. 위키피디아
1992년 시사 프로그램 ’60분‘에 출연해 성추문을 해명하는 빌-힐러리 클린턴 부부. 위키피디아


“If that’s not enough for people, then heck, don‘t vote for him.”(만약 그걸로 충분하지 않다면, 젠장, 그를 안 뽑아도 된다)

대선 출마 발표 후 각종 성추문이 끊이지 않던 빌 클린턴 아칸소 주지사 부부는 1992년 시사프로그램 ’60분‘에 출연했습니다. 슈퍼볼 중계에 이어지는 프로그램으로 특별 편성됐기 때문에 높은 시청률은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인터뷰의 주인공은 클린턴 주지사이었지만 정작 스타가 된 것은 힐러리였습니다. ’후보 부인‘ 정도로 알고 있던 대다수 미국인들에게 힐러리의 똑부러지는 언행은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역대급 명대사인 “You know, I’m not sitting here, some little woman standing by my man like Tammy Wynette”(나는 태미 와이넷의 노래처럼 남편 옆에서 내조나 하는 초라한 여자가 아니다)라고 하더니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경한다고 했습니다. 이어 방송 불가급 단어인 “heck”(젠장)을 써가며 “만약 사랑이라는 설명으로도 충분치 않다면 내 남편을 안 뽑으면 된다”는 결정타를 날렸습니다.

영어에는 ‘욕설 완곡어법 3총사’가 있습니다. 흔히 ‘Gosh Darn it to Heck!’이라고 이어서 말합니다. 아무 곳에서나 욕을 할 수는 없으니까 비슷한 어감의 순화된 버전을 쓰는 것입니다. ‘gosh’는 ‘god’의 대체어입니다. “oh my god”(하느님 맙소사) 대신에 “oh my gosh”라고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damn it”(빌어먹을) 대신에 “darn it”, “what the hell”(도대체) 대신에 “what the heck”입니다.

대기 중인 전용 헬기에 오르기 전 기자들의 대화를 나누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백악관 홈페이지
대기 중인 전용 헬기에 오르기 전 기자들의 대화를 나누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백악관 홈페이지


“He wrote a beautiful three-page, right from top to bottom.(김정은 위원장이 처음부터 끝까지 아름다운 3장짜리 편지를 보내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언론과 정식 인터뷰를 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대통령의 막말을 우려한 언론도 무리하게 인터뷰를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기자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던 트럼프 대통령은 ‘chopper talk’(초퍼 토크)를 즐겼습니다. 백악관 앞뜰에 대기 중인 헬기를 타고 이동하기 직전에 근처에서 대기하는 기자들과 즉석 토크를 하는 것입니다. 이동하는 중에 기자들과 짧게 대화를 나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도어스테핑과 비슷한 개념입니다.

헬기를 ‘chopper’라고 합니다. 헬기 날개가 공기를 ‘chop’(썰다, 가른다)는 의미입니다. 이밖에도 ‘헬기 앞 기자회견’이라고 해서 ‘heliconference’, ‘전용 헬기 회견’이라고 해서 ‘Marine One presser’ 등 다양하게 불렸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굳이 헬기 앞 대화를 선호한 이유는 ‘멋있어 보이기 때문’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부지런히 이동하며 직무를 수행하고, 언제 어디서나 언론과 소통하며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이상적인 대통령의 모습을 연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헬기의 굉음 속에서 기자들이 고함을 질러가며 질문을 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원하는 주제만을 골라 답했습니다. 2019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부터 받은 ‘러브레터’를 자랑했습니다. 당시 기자들은 북한이 다섯 차례 미사일을 발사한 것에 대한 반응을 물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주제를 돌려 김 위원장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는 사실을 공개했습니다. 편지는 3장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아름다운 내용이라고 합니다.

● 명언의 품격
사회생활에서 꼭 받게 되는 질문이 있습니다. 구직자는 “왜 우리 회사에 들어오고 싶은가”라는 면접관의 질문에 대비해야 합니다. 대통령을 꿈꾸는 정치인은 “왜 대통령이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대답할 준비가 돼있어야 합니다.

“왜 대통령이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받고 머뭇거리는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을 카메라가 클로즈업한 모습. CBS방송 캡처
“왜 대통령이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받고 머뭇거리는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을 카메라가 클로즈업한 모습. CBS방송 캡처


“Why do you want to be president?”(왜 대통령이 되고 싶은가?)

1979년 대선 출마를 준비 중이던 “테디(Teddy)”라는 애칭의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은 CBS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 질문을 받았습니다. 케네디 가문의 탁월한 연설력은 실종된 채 케네디 의원은 예상 밖으로 머뭇거렸습니다. “Well… uh… the reasons that I would run…”(음, 아, 내가 출마하려는 이유는…)이라며 어색한 미소만 날릴 뿐이었습니다. 케네디 의원의 머뭇거림은 미 정치사에서 “four-second pause”(4초의 공백)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합니다.

당시 민주당 경쟁자였던 지미 카터 대통령은 최악의 지지율을 기록 중이었고, 앞선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의 암살로 여론도 비교적 호의적이었지만 머뭇거림과 함께 대통령이 되려던 케네디 의원의 꿈도 날아갔습니다. 출마를 강행했지만 인터뷰 실패로 ‘케네디 후광 효과’는 이미 사라진 터라 고전만 거듭하다가 중도 사퇴했습니다. 이후 “왜 대통령이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은 모든 대선 주자들이 가장 먼저 대답을 준비해야 하는 ‘the question’(바로 그 질문)이 됐습니다.

● 실전 보케 360
실생활에서 많이 쓰는 단어를 활용해 영어를 익히는 코너입니다. 최근 브렛 캐버노 미국 연방대법관이 워싱턴의 유명 스테이크 레스토랑 ‘모턴스’에서 식사도 끝내지 못하고 뒷문으로 빠져나오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낙태권 폐기 반대 시위대가 레스토랑 앞에서 “캐버노 대법관을 쫓아내라”는 시위를 벌였기 때문입니다. 강경 보수파인 캐버노 대법관은 최근 연방대법원의 낙태권 폐기 결정에서 찬성표를 던진 6명의 대법관 중 한 명입니다.

현재 미 연방대법원을 구성하는 9명의 대법관. 뒷줄 왼쪽 끝이 브렛 캐버노 대법관. 미 연방대법원 홈페이지
현재 미 연방대법원을 구성하는 9명의 대법관. 뒷줄 왼쪽 끝이 브렛 캐버노 대법관. 미 연방대법원 홈페이지


시위대에 밀려 피신한 캐버노 대법관을 바라보는 시각은 정치적 성향에 따라 갈립니다. 보수 쪽에서는 시위대가 밥 먹을 권리를 침해했다며 반발합니다. 반면 진보 진영에서는 “여성의 권리를 침해한 것에 대한 응분의 대가를 치른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민주당의 스타 정치인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 하원의원도 그중 한 명입니다.

“I will never understand the pearl clutching over these protests.”(왜 호들갑 떨며 놀란 척을 하는지 이해 못하겠네)

코르테즈 의원이 올린 트윗에 ‘pearl clutching’(펄 클러칭)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자동차 클러치에서 볼 수 있듯이 ‘clutch’는 ‘움켜쥐다’는 뜻입니다. 사회적 이목을 중시하는 중년 여성들은 진주 목걸이를 선호합니다. 놀랍거나 충격적인 장면을 봤을 때 진주 목걸이를 움켜쥐고 호들갑스럽게 놀란 반응을 보이는 것을 ‘clutch the pearls’라고 합니다. 과격 시위는 보수주의자들의 전문 분야라는 것이 코르테즈 의원의 주장입니다. 보수 시위대가 코르테즈 의원 사무실 앞에서 업무를 못 볼 정도로 시위를 벌이는 일이 다반사라고 합니다. 보수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망각한 채 레스토랑 앞에서 캐버노 대법관의 식사를 방해한 시위대 몇 명을 두고 과장된 분노를 표출하는 것을 비판한 것입니다.

● 이런 저런 리와인드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 장기 연재된 ‘정미경 기자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 칼럼 중에서 핵심 아이템을 선정해 그 내용 그대로 전해드리는 코너입니다. 오늘은 2020년 11월 2일 소개된 언론사 소셜미디어와 인터넷에 대한 내용입니다. 선거 때가 가까워오면 언론사가 운영하는 소셜미디어와 인터넷 사이트는 바빠지기 시작합니다. 정치적 견해를 밝히는 수많은 댓글이 올라오며 활발한 의견 교류의 장이 됩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맞붙은 2020년 대선이 임박한 시점에서 주요 언론사의 소셜미디어와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온 댓글들을 살펴봤습니다.

▶2020년 11월 2일자

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201102/103743124/1

2020년 대선을 앞둔 마지막 주말에 각각 펜실베이니아와 플로리다에서 유세를 펼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월스트리트저널
2020년 대선을 앞둔 마지막 주말에 각각 펜실베이니아와 플로리다에서 유세를 펼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월스트리트저널


“Like him or not, Trump lets you know where he stands. Biden stands for whatever the teleprompter tells him to stand for.”(트럼프를 좋아하건 말건 그는 자기주장이 확실하다. 반면 바이든은 텔레프롬프터가 시키는 대로 말한다)

폭스뉴스 페이스북에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가 올린 댓글입니다. ‘stand for’는 ‘주장을 펴다’ ‘찬성하다’는 뜻입니다. ‘반대하다’는 ‘stand against’가 됩니다. 댓글 필자는 “당신이 트럼프를 좋아하건 말건 이건 인정하자”고 합니다. 트럼프는 자기주장이 확고한 사람입니다. 반면 바이든 후보는 텔레프롬프터(원고 자막 장치)에 적힌 대로 주장을 편다, 즉 자기주관이 없다고 합니다.

“I didn‘t realize doing rallies, watching TV and tweeting was considered the president working his ass off, lol.”(지지 유세하러 다니고, TV 보고, 트위터 하는 걸 뼈 빠지게 일한다고 하는 건가)

CNN 유튜브에 올라온 댓글입니다. 이 댓글이 달린 동영상을 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나는 한가한 바이든 후보와는 달리 여기저기 유세 다니며 열심히 일한다(work my ass off)”고 자랑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댓글은 그 발언을 비꼽니다. 엄밀히 말해 지지자들을 만나러 다니고, TV 보고, 트위터를 하는 것은 선거운동이자 취미생활이지 대통령의 직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그런 활동들을 “열심히 일한다”고 할 수 있냐는 것이죠. 댓글은 마지막에 “lol”(정말 웃겨)라며 트럼프를 비웃습니다.

“The US is just like these tik tok people. They don’t care how dumb they look, as long as all eyes are on them.”(미국 정치인들은 틱톡 출연자 같다. 자신이 얼마나 멍청해 보이는지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주목만 받으면 된다)

NBC 방송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라온 댓글입니다. 대선 후보 토론 영상을 보고 외국 시청자가 올렸습니다. 정치인들은 유권자들의 관심을 얻기 위해 애를 씁니다. 비록 부정적인 관심이라고 하더라도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틱톡 출연자들도 비슷합니다. 짧은 동영상이 많이 올라오는 틱톡에는 몸을 이용한 우스꽝스런 묘기를 선보이는 출연자들이 많습니다. 관심 받는 것 자체를 즐기는 요즘 젊은 세대의 취향을 반영합니다. 외국인이 보기에는 TV 토론을 벌이는 트럼프-바이든 후보가 토론 내용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그저 주목을 받기 위해 열을 올리는 것이 틱톡 묘기자랑 같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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