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병들게 하는 ‘패스트 패션’
생산∼폐기 전 과정서 환경 오염… 디지털 샘플로 원단 낭비 줄이고
국제 인증 친환경 섬유 사용 등… 기업들, 환경보호 움직임 활발
“지원 정책 통해 기업 참여 늘려야”… EU, 의류생산 규제 신설 뜻 밝혀
최신 유행에 맞춰 옷을 빠르고 값싸게 공급하는 일명 ‘패스트 패션’이 늘어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옷을 접하는 시대가 됐다. 하지만 ‘패션의 민주화’라는 찬사가 나온 이 패스트 패션 시작 이후 생산하거나 버려지는 의류의 양도 급증하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매년 생산되는 옷이 약 1000억 벌, 버려지는 옷이 약 330억 벌로 추산된다. 이 중 화학섬유로 만들어지는 옷이 60%인데 이 옷들이 분해되면서 많은 양의 미세플라스틱을 방출한다. 물속 미세플라스틱의 35%가 옷에서 나온 것이라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 WFO 대표 “미세플라스틱 50만 t이 바다로”
최근 환경단체들은 패션산업이 배출하는 오염에 주목하고 있다. 2011년 설립된 비영리 국제환경단체인 ‘WFO(Waste Free Oceans)’는 플라스틱 쓰레기와 해양폐기물 수거 활동을 하면서 패션산업 환경오염 문제로 눈을 돌렸다. 이들은 옷 폐기물 수거에서 더 나아가 버려진 옷을 재활용하고 친환경 옷을 만드는 활동도 하고 있다.
알렉상드르 당지 WFO 대표는 25일 동아일보 서면 인터뷰에서 “옷을 버릴 때뿐 아니라 옷을 만들고 배송할 때도 많은 환경오염과 자원낭비가 발생한다”고 강조했다. 당지 대표는 “의류 생산으로 인해 매년 800억 m³(800조 L)의 물이 사용되고 1억7500만 t의 이산화탄소와 9200만 t의 쓰레기가 배출된다. 또 옷을 생산하고 배송하는 데도 많은 발전 에너지가 들어간다”고 강조했다. 그는 옷 재료를 구하는 과정에도 오염이 발생한다며 “면화를 생산할 때 많은 토지와 물, 살충제, 비료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미세플라스틱 문제도 지적했다. 당지 대표는 “소비자들이 옷을 빨거나 말리거나 다림질할 때 수많은 미세플라스틱이 나온다”며 “이렇게 섬유에서 나온 미세플라스틱 가운데 약 50만 t이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이들 플라스틱은 해양생물을 거쳐 결국 최종 포식자인 인간에게까지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아직 이런 오염물질을 획기적으로 줄이거나 제거하는 기술은 없다. 당지 대표는 “바닷속 미세플라스틱을 제거하는 기술이 있긴 하지만 아직도 개선이 필요하다”며 “옷을 재활용하는 기술도 여전히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 디지털 샘플 등 기업도 친환경 노력
결국 의류 폐기물과 오염물질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기술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생산·소비 단계에서 친환경적인 대안을 찾을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환경적으로 올바른 소비를 지향하는 이른바 ‘그린 컨슈머’들이 늘면서 일부 기업은 자발적으로 친환경 생산 방법을 마련하고 있다.
국내 수출전문 의류업체인 한세실업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 회사는 생산 단계에서 나오는 폐기물을 줄이고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2017년 ‘디지털 샘플’ 시스템을 도입했다. 정규광 한세실업 경영개선팀 이사는 해당 기술에 대해 “3D 디자인 기술을 도입해 실물 샘플만큼 정교한 가상 샘플을 제작하고, 이것을 아바타 모델에 적용해 수정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국내 의류공장에서 나오는 폐의류와 원단 양이 매년 6만7514t에 달한다. 정 이사는 “디지털 샘플을 이용하면 불필요한 샘플 원단 폐기물을 줄이고 샘플 전달 시 쓰이는 포장재나 운송 연료도 저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한세실업은 국제 친환경 섬유 인증기관(BCI)이 인정하는 친환경 섬유를 사용해 옷을 만드는 시도도 하고 있다. 2018년 5000만 야드(1야드는 약 0.91m)에 미치지 못하던 한세실업의 친환경 원단 구매량은 지난해 1억5000만 야드로 약 3배로 늘었다. 한세실업 관계자는 “2019년부터 친환경 의류에서 발생한 순이익의 10%를 환경단체 등에 기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버려진 옷을 재활용하거나 천연재료를 이용해 옷을 만드는 기업도 늘어나고 있다. 미국의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는 폐플라스틱 섬유를 이용하거나 버려진 옷의 원단을 재활용해 다양한 옷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최근 프랑스의 럭셔리 브랜드인 ‘에르메스’도 미국의 한 스타트업과 협업해 버섯 균사체로 만든 친환경 비건 가죽 가방 ‘빅토리아 백’을 선보인 바 있다.
○ 친환경 기업 보상 강화해야
더 많은 기업들을 친환경 의류 생산에 동참시키기 위해서는 정책적인 지원과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허정림 건국대 사회환경공학부 학술연구교수는 “세금 혜택 등 친환경 생산을 하는 기업에 대한 보상을 다각적으로 구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또 “패션업계에 대한 환경전과정평가(LCA), 즉 재료, 생산, 유통, 폐기 전 과정의 환경적 영향에 대한 평가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실제 유럽연합(EU)은 올 3월 패스트 패션을 비롯한 패션산업을 환경오염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하고 친환경 소재 사용과 내구성이 강한 의류 생산 관련 규제를 신설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소비자들의 노력 역시 중요하다. 당지 대표는 “세탁할 때 물 온도를 낮추고 건조기 사용을 줄여야 미세플라스틱 발생을 줄일 수 있다. 또 친환경 소재로 만든 옷을 구입하고, 옷을 버리기보다는 기부하는 등 소비자 행동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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