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현장의 여름, 기후위기를 체감하다[2030세상/배윤슬]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7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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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윤슬 도배사·‘청년 도배사 이야기’ 저자
배윤슬 도배사·‘청년 도배사 이야기’ 저자
계절을 정통으로 맞는 일, 누군가 내 일에 대하여 이렇게 표현했다. 다시 말해 ‘더울 때 더운 곳에서 일하고 추울 때 추운 곳에서 일하는 사람’이 바로 나다. 추위보다는 더위를 더 잘 견디는 내게도 건설 현장의 여름나기는 쉽지 않다. 완공되기 전의 건물에는 에어컨은 물론이고 선풍기와 같은 냉방시설이 전혀 없고, 당연히 커튼도 없기 때문에 들어오는 햇빛과 열기를 그대로 맞으며 일을 해야 한다. 뜨거운 열기에 벽지가 지레 마르거나 장맛비가 들이쳐 벽지가 젖을까 봐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일할 수도 없다. 게다가 벽지에 바르는 풀은 여름철 더위에 쉽게 쉬어버리기 때문에 시큼한 풀냄새와도 싸워야 한다. 여름철을 넘기는 것은 해마다 쉬운 일이 아니다.

여름에 더운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올해 더위는 유독 더 심한 것 같다. 6월부터 마치 한여름같이 더운 날씨가 지속되더니 사상 처음 ‘6월 열대야’가 관측됐다는 뉴스도 들려왔다. 도배를 하며 맞는 세 번째 여름이지만 올해만큼 땀을 많이 흘린 적은 처음이다. 더위를 잘 참는 나도 일하면서 땀을 워낙 많이 흘리다 보니 머리가 핑 돌아 어지러울 때가 있다. 나보다 훨씬 더 더워하는 동료들이 걱정돼 사비로 이온음료를 대량 구매해 도배 창고에 구비해 놓기도 했다. 아직 한참 남은 여름을 잘 이겨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

이런 무더위를 비롯한 이상기후는 기후위기로 인한 것이다. 기후위기로 북극의 빙하가 녹아내리고 지구 곳곳에서 대형 산불이 나는 등 이상 현상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나도 환경문제를 걱정하면서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를 사용하고 가능하면 배달음식을 시켜먹지 않으려 노력한다. 샴푸와 보디워시 대신에 비누를, 일회용 생리대 대신 재활용이 가능한 면 생리대를 수년째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개인적 노력만으로 기후재난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사람의 편리를 위해 환경을 해치는 행위는 이미 개인의 차원을 넘어섰고, 무차별적이며 대규모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 또래들 중 일부는 앞으로의 세상이 더 나아질 희망이 없기 때문에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환경문제가 점점 더 악화될 것이 분명한 세상에서 아이를 자라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미래의 내 아이가 지금보다 더 더운 여름과 더 추운 겨울, 그리고 더 잦은 산불과 홍수를 경험하며 살아야 한다면 나 역시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기성세대는 환경문제 해결에 소극적이다. 기후위기에 대한 심각성이 아주 오래전부터 이야기돼 왔지만 지금까지 그 위험성을 구체적으로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기 때문일까. 그러나 이런 분위기가 지속되면 기후위기로 인해 발생하는 앞으로의 더 큰 피해는 지금의 청년세대가 뒤집어쓸 수밖에 없다. 올해로 서른 살이 된 나만 해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고 더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환경문제를 체감하고 있다. 지금보다도 훨씬 더 빠른 속도로 환경이 무너진다면 나 다음 세대를 걱정할 것이 아니라 당장 우리 세대부터 위험해질 것이다. 개개인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더 거시적인 노력, 더 강력한 변화가 필요하다.

#노동현장#여름#기후위기 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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