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목숨 여러 개… 복제된 인간에게 ‘살아남을 권리’란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7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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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7/에드워드 애슈턴 지음·배지혜 옮김/412쪽·1만5000원·황금가지

저자는 “2019년 말 초고 완성 뒤 출판 계약도 안 한 상태에서 에이전시가 ‘플랜B’에 원고를 넘겼다. 플랜B는 봉준호 감독이 
‘미키7’을 스크린에 소환할 적임자라 여겼고 봉 감독은 원고를 받자마자 차기작으로 정할 정도로 맘에 들어 했다”고 전했다.황금가지 제공
저자는 “2019년 말 초고 완성 뒤 출판 계약도 안 한 상태에서 에이전시가 ‘플랜B’에 원고를 넘겼다. 플랜B는 봉준호 감독이 ‘미키7’을 스크린에 소환할 적임자라 여겼고 봉 감독은 원고를 받자마자 차기작으로 정할 정도로 맘에 들어 했다”고 전했다.황금가지 제공

당신은 어젯밤 11시 잠자리에 들었다가 오늘 아침 7시 깨어났다. 세수를 하며 어제 잠들기 전까지 무슨 일을 했는지 기억을 떠올려보자. 잠들기 전 당신과 깨어난 후 당신 사이에 놓인 8시간의 ‘빈 시간’은 딱히 고려하지 않는다. 그저 잠을 잤을 뿐이니까. 그리고 당연히 당신은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같은 사람이라 여긴다.

자, 이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일상에 도발적인 가정을 던져보자. 당신은 어젯밤 11시 잠이 들며 그날 하루의 기억을 컴퓨터에 올리고 사망했다고. 어제의 당신은 ‘당신1’이라고. 그리고 오늘 아침 7시에 새로운 ‘당신2’가 그 기억을 내려받은 뒤 새로 태어났다고. 그렇다면 당신1과 당신2는 똑같은 사람인가, 다른 사람인가. 지금 이 순간,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정말 어제의 당신과 같은 이라 확신할 수 있나.

위 사진은 왼쪽부터 봉 감독과 주인공을 맡은 배우 로버트 패틴슨. 동아일보DB
위 사진은 왼쪽부터 봉 감독과 주인공을 맡은 배우 로버트 패틴슨. 동아일보DB
영화 ‘기생충’(2019년)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도 이런 상상을 해본 적이 있을까. 공상과학(SF)소설 ‘미키7’은 봉 감독이 차기작으로 발표한 영화의 원작이다. 배우 브래드 피트가 설립한 제작사 ‘플랜B’도 참여하고, 로버트 패틴슨과 마크 러펄로, 스티븐 연 등 유명 배우들이 출연한다고 한다.

소설은 이처럼 미래사회에 복제인간으로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한 사내에 대한 이야기다. 다시 제목을 보면 짐작이 되겠지만, ‘미키7’은 일곱 번째 미키라 할 수 있다. 미키7은 새로운 행성을 탐험하는 개척단에 투입돼 임무를 수행하다 깊고 깊은 절벽으로 떨어진다. 겨우 목숨을 건진 미키7은 가까스로 기지로 돌아오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미키8’. 자신이 죽은 줄 안 동료들이 새로운 복제인간을 깨운 것이다. 그럼 미키7은 용도가 끝나 폐기처분돼야 할 대상일까. 아니면 혼선을 빚고 잘못 생명을 얻은 미키8을 없애야 하나. 그 전에, 미키7과 미키8은 서로에게 아군일까, 적군일까.

소설은 페이지를 넘길수록 왜 봉 감독이 이 작품을 영화의 원작으로 택했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뭔가 블랙코미디적인 설정이 흥미로운데다 알게 모르게 묻어나는 계급 담론이 짙기 때문이다. 사실 미래사회라고 누구나 복제인간의 삶을 선호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이 끔찍한 굴레를 피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빚더미에 깔려 돈이 필요했던 미키는 어쩔 수 없이 힘든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복제인간에 지원했다. 미국 로체스터대에서 양자물리학을 가르치는 과학자이기도 한 저자는 국내 출판사와의 인터뷰에서 “경제시스템에 대한 의구심이나 계급 갈등에 대해 봉 감독과 비슷한 관점과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고 세상이 아무리 발전해도 하층민의 삶이 서글프고 고단한 건 바뀌질 않나 보다. 봉 감독은 또 이 독특한 소설을 어떻게 영상으로 풀어낼는지. 요즘 국내 웹툰이나 웹소설에서는 과거로 돌아가 다시 태어나는 ‘회귀물’이 대세인데, 삶이 반복되는 게 정말 행복을 보장할까. 잠깐, 혹시 우리는 지금 ‘n회 차’ 인생을 살고 있나. 괜스레 주변 사람들을 실눈 뜨고 쳐다보다 머리만 긁적거렸다.

#미키7#계급 담론#철학적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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