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젯밤 11시 잠자리에 들었다가 오늘 아침 7시 깨어났다. 세수를 하며 어제 잠들기 전까지 무슨 일을 했는지 기억을 떠올려보자. 잠들기 전 당신과 깨어난 후 당신 사이에 놓인 8시간의 ‘빈 시간’은 딱히 고려하지 않는다. 그저 잠을 잤을 뿐이니까. 그리고 당연히 당신은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같은 사람이라 여긴다.
자, 이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일상에 도발적인 가정을 던져보자. 당신은 어젯밤 11시 잠이 들며 그날 하루의 기억을 컴퓨터에 올리고 사망했다고. 어제의 당신은 ‘당신1’이라고. 그리고 오늘 아침 7시에 새로운 ‘당신2’가 그 기억을 내려받은 뒤 새로 태어났다고. 그렇다면 당신1과 당신2는 똑같은 사람인가, 다른 사람인가. 지금 이 순간,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정말 어제의 당신과 같은 이라 확신할 수 있나.
영화 ‘기생충’(2019년)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도 이런 상상을 해본 적이 있을까. 공상과학(SF)소설 ‘미키7’은 봉 감독이 차기작으로 발표한 영화의 원작이다. 배우 브래드 피트가 설립한 제작사 ‘플랜B’도 참여하고, 로버트 패틴슨과 마크 러펄로, 스티븐 연 등 유명 배우들이 출연한다고 한다.
소설은 이처럼 미래사회에 복제인간으로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한 사내에 대한 이야기다. 다시 제목을 보면 짐작이 되겠지만, ‘미키7’은 일곱 번째 미키라 할 수 있다. 미키7은 새로운 행성을 탐험하는 개척단에 투입돼 임무를 수행하다 깊고 깊은 절벽으로 떨어진다. 겨우 목숨을 건진 미키7은 가까스로 기지로 돌아오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미키8’. 자신이 죽은 줄 안 동료들이 새로운 복제인간을 깨운 것이다. 그럼 미키7은 용도가 끝나 폐기처분돼야 할 대상일까. 아니면 혼선을 빚고 잘못 생명을 얻은 미키8을 없애야 하나. 그 전에, 미키7과 미키8은 서로에게 아군일까, 적군일까.
소설은 페이지를 넘길수록 왜 봉 감독이 이 작품을 영화의 원작으로 택했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뭔가 블랙코미디적인 설정이 흥미로운데다 알게 모르게 묻어나는 계급 담론이 짙기 때문이다. 사실 미래사회라고 누구나 복제인간의 삶을 선호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이 끔찍한 굴레를 피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빚더미에 깔려 돈이 필요했던 미키는 어쩔 수 없이 힘든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복제인간에 지원했다. 미국 로체스터대에서 양자물리학을 가르치는 과학자이기도 한 저자는 국내 출판사와의 인터뷰에서 “경제시스템에 대한 의구심이나 계급 갈등에 대해 봉 감독과 비슷한 관점과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고 세상이 아무리 발전해도 하층민의 삶이 서글프고 고단한 건 바뀌질 않나 보다. 봉 감독은 또 이 독특한 소설을 어떻게 영상으로 풀어낼는지. 요즘 국내 웹툰이나 웹소설에서는 과거로 돌아가 다시 태어나는 ‘회귀물’이 대세인데, 삶이 반복되는 게 정말 행복을 보장할까. 잠깐, 혹시 우리는 지금 ‘n회 차’ 인생을 살고 있나. 괜스레 주변 사람들을 실눈 뜨고 쳐다보다 머리만 긁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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