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어제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5세로 낮추는 학제 개편안에 대해 ‘신속한 공론화’를 교육부에 지시했다. 대통령실은 “여러 장점이 있더라도 국민 뜻을 거스를 순 없다”고 설명했다. 최근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보고를 받은 윤 대통령이 “신속히 강구하라”고 했다가 한발 물러선 모양새다. 박 부총리도 국민들이 반대할 때는 폐기할 수도 있다는 뜻을 밝혔다.
정부는 조기에 공평한 교육 기회 부여, 아동기 교육과 돌봄의 통합 중요성 등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아이들마다 발달 정도가 다르다” “경쟁만 치열해진다” 등 반대 의견이 쏟아졌다. 무엇보다 사전 숙의 과정이 미흡했다. 전국 시도교육감 사이에서도 반대와 우려 목소리가 커졌다. 초등학교 교육 집행기관의 의견 수렴 절차도 없이 설익은 정책을 던졌다가 수습에 진땀을 빼고 있는 것이다.
현 정부의 정책 역량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린 일은 또 있었다. ‘국민제안’ 혼선이다. 대통령실은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등 국민제안 10건을 놓고 온라인 투표를 실시해 우수 국민제안 상위 3건을 발표하기로 했다가 취소했다. 조회 수나 투표수를 조작하는 ‘어뷰징(중복 전송)’ 사태가 벌어진 탓이다. 이해당사자들의 집단 투표나 인기투표로 전락할 가능성이 농후했는데도 문제점을 미리 차단하지 못한 것이다.
취학 연령이나 국민제안을 둘러싼 논란은 단순히 해프닝으로 넘길 사안이 아니다. 현 정부의 정책 역량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앞서 고용노동부 장관의 주 52시간제 개편 방침을 놓고 대통령과 엇박자 논란으로 한바탕 홍역을 겪었는데도 별반 달라진 게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이는 궁극적으론 취임 3개월이 다가오는데도 윤석열 정부의 국정 기조와 비전, 핵심 국정과제가 여전히 흐릿하다는 데서 기인한다. 정책 조율 컨트롤타워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어설픈 한건주의 정책을 내놓고 여론의 질타가 쏟아지면 슬그머니 거둬들이는 일이 또 반복돼선 곤란하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국정 비전부터 바로 세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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