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최근 4개 시중은행을 통해 1년 6개월에 걸쳐 약 7조 원의 수상한 외환 거래가 있었다고 보도했다. 기간도 상당히 길고 그 액수는 천문학적이며 서민 은행인 KB국민은행까지 개입됐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외환 거래는 원화 거래와 달리 건별로 특별약정과 절차를 걸쳐 적법하게 이뤄진다.
은행은 일일 스퀘어 포지션(square position·외환 보유 제로)을 원칙으로 보유 외환을 가지지 않는다. 이는 은행이 환율 변동에 의한 환차손에 노출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은행은 고객의 필요에 따라 거래하며, 이는 결국 공개된 외환 시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아무리 감추고 비밀로 하려 해도 일일 20억, 30억 원 수준의 국내 외환 시장에서의 거액 거래는 그 실체가 바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필자는 의무적으로 사전 및 사후 보고를 해야 하는 현 법규 체제하에서 외환 당국이 모르는 거래는 결코 없다고 단언한다. 이번 대규모 외환 거래에 대한 비호 세력이나 최소한의 묵인 세력이 있을 거라 의심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가상화폐의 투기 세력이 ‘김치 프리미엄’을 노려 판매하고 이를 외화로 바꿔 송금했다는 의문도 제기된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이를 기업을 시켜 무역 거래로 위장했다는 것은 이 분야에서의 경험에 비춰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입금 없는 출금이 어디 있으며 수출입 허가 없는 대금 결제가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면 국세청, 관세청, 한국은행은 무엇을 했다는 말인가. 얼마나 대단한 세력이기에 불법 거래를 2년이나 계속할 수 있겠는가.
이 거래는 투기 세력이나 자금 세탁이나 최소한 금융기관과 권력의 협조나 암묵적 비호 없이는 불가능하다. 더욱이 사후 관리가 엄격한 외환 법규하에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이 일이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
은행은 지금도 수취인의 존재나 신용 파악은 우리 소관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는 소액이고 통상적인 외환 거래에서는 맞다. 그러나 거액인 데다가 적성국으로 분류되는 나라와의 거래에서는 그 파급 효과에 비춰 얼마나 무책임하고 위험한 사고인지 모르겠다.
현재의 혼란한 국제 정세 속에서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스위프트(SWIFT·국제금융통신망)를 통한 전산 필터링을 강화하고 제재 범위도 최고도로 넓혀 운영하고 있다. 이런 때 수상한 외화 거래가 적성국의 물자나 무기 구입 대금으로 쓰일 가능성이 없다고 누가 장담하겠나. 심지어 북한 관련설까지 나도는 엄중한 상황에서 어느 금융기관이라도 제재 대상이 된다면 가뜩이나 어려운 우리 경제에 대재앙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2000년 대북 송금의 실무 책임자로 연루돼 고초를 겪은 바 있다. 평생 몸 바쳐 일한 외국환 전문은행인 외환은행이 자취도 없이 사라지는 아픔도 겪었다. 지금 펼쳐지는 외환 거래 사건을 바라보며 왜 폭발 직전의 공포감이 엄습해 오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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