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평가를 받아들고[이기진 교수의 만만한 과학]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8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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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진 교수 그림
이기진 교수 그림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대학에 강의 평가 제도가 있다. 학생들은 강의 평가를 해야 자신의 성적을 알 수 있으니 대부분 무기명으로 강의평을 적고 점수를 매겨 강의를 평가한다. 이 강의 평가 점수는 전체 교수들과 비교되어 다시 상대적인 점수로 평가된다. 이런 제도는 30년 전 내가 학교에 다닐 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보편화된 제도다.

처음 강의 평가를 받고 충격에 빠졌던 때가 생각난다. 교수가 되어 정신없이 연구 논문을 쓰느라, 전날 늦게까지 이어진 술자리 모임 때문에, 다음 날 강의 준비를 소홀히 한 날도 있었다. 학생들이 내 강의를 잘 따라오겠지, 따라오지 못하면 그만이지, 하고 일방적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한 학기를 마무리하고 받아든 강의 평가는 나를 적잖이 당황스럽게 했다. 배신감마저 들었다.

한 학기가 정신없이 끝나고 강의 평가 점수를 받아보는 날은 우울하기만 했다. 아마도 나쁜 성적표를 받은 학생의 마음도 이와 같지 않을까? 처음엔 부정적인 강의평을 학생들의 악성 댓글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그 댓글들에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가 된 지 한두 해가 지난 후의 일이다.

진도가 빠르다, 숙제 피드백이 느리다, 매년 유사한 시험 문제가 출제된다, 강의 도중 칠판에 오탈자가 많다, 속필이어서 글씨를 알아보기 힘들다, 수식을 자세히 풀어주지 않는다 등등 사소한 것들이었지만 학생들의 정당한 평가였고, 무시하면 안 되는 것들이었다. 그 뒤로는 귀를 쫑긋 세우고 학생들의 의견과 반응을 더 자세히 살펴보는 중이다.

신경을 쓴다고 하긴 했는데, 월등히 강의 평가가 좋아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처음 강의 평가를 받아들 때처럼 배신감이 들거나 하지는 않는다. 한 학기 70명 정도의 학생 관객 앞에서 연극 무대를 꾸미는 주인공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관객들의 똘똘한 눈을 의식하면서 대사를 하는 배우처럼. 대박 흥행은 바라지도 않고, “뭐 이 강의 나쁘지는 않네” 이런 평가를 받기 위해서.

연구와 강의는 다르다. 연구는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는 과정이다. 어찌 보면 자신과의 싸움이고 고독한 작업이다. 시대를 앞서나간 고집스러운 연구가 획기적인 과학 발전으로 이어진 예는 수없이 많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지동설, 아인슈타인의 상대론, 허블의 우주 팽창론, 폴 디랙의 반물질, 베라 루빈의 암흑물질 등등. 분명 연구와 교육은 다른 방향을 보고 있다. 연구가 정면을 보는 것이라면 교육은 따라오는 뒤쪽을 보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앞이든 뒤든, 어느 것 하나라도 소홀히 볼 수는 없는 일이다.

미국의 이론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은 노벨상을 받을 정도로 연구 업적이 뛰어났지만, 학생들에게 물리학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깊이 있고 유머러스하게 가르치기로 유명했다. 요즘 그가 쓴 에세이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를 읽으며, 연구와 강의, 재미난 삶을 동시에 성공적으로 만드는 삶의 기술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만.

#대학#강의 평가 제도#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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