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보미 작가 ‘사라진 숲의 아이들’, 청소년 살인사건 진실 좇는 이야기
“도심 폐건물 보고 충격 받아 구상…주인공 형사 내세운 차기작 생각중”
한 인터넷방송에서 일하는 채유형 PD는 방송에서 다룰 자극적 소재를 찾다 청소년 살인사건을 마주한다. 18세 소년이 흉기를 휘둘러 남녀를 죽인 혐의를 받는 끔찍한 사건이었다. 소년은 처음엔 남성과 연애하던 여성을 사랑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혐의를 부인하기 시작한다. 사건을 좇던 채유형은 비행 청소년들을 만나 “‘을지로의 숲’으로 가보라”는 말을 듣는데…. 동료의 비리를 캐다 조직에서 소외된 형사 진경언이 채유형과 합류한다. 이들은 진실을 찾을 수 있을는지. 도대체 ‘을지로의 숲’은 어떤 곳일까.
최근 출간된 ‘사라진 숲의 아이들’(안온북스·사진)은 손보미 작가(42)가 처음 쓴 추리소설이다.
올해 단편소설 ‘불장난’으로 이상문학상을 받은 그가 장르문학에 발을 들인 것이다.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8일 만난 손 작가는 “단편소설에 추리적 색채를 담은 적은 있지만 본격적인 장편소설로 다룬 건 처음이다. 추리소설 작가 흉내를 내긴 했는데 성공했는지는 모르겠다”며 웃었다.
“대학생 때부터 첩보소설의 제왕인 영국 작가 존 러카레이(1931∼2020)나 미국 추리작가협회장을 지낸 로스 맥도널드(1915∼1983) 등 해외 추리소설 작가의 작품을 탐독했어요. 제겐 이런 소설을 쓰는 게 낯설지 않은데, 오히려 주위에서 ‘깜짝 놀랐다’ ‘어떻게 쓴 거야’ 같은 반응이 많더라고요. 이전 소설들과 그렇게 결이 많이 다른가요?”
그가 이 소설을 구상한 건 서울 중구에 있는 한 오래된 건물을 보고 나서였다. 그 건물엔 아무도 살지 않았고, 영업하는 가게도 없었다. 도심 한가운데에서 거대한 건물이 죽은 채 버려져 있단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이 건물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상상하다 갈 곳 없는 청소년들을 떠올렸어요. 땅값 비싼 곳이 슬럼화되면 비행 청소년들이 모여 불법적인 일에 손을 대지 않을까 싶었죠.”
손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장르적 긴장감은 유지하되 사회적 의미도 담으려 애썼다.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군인이나 파월 기술자들의 상처를 다뤄 깊이를 더하고자 했다. 문학의 본질에 대한 고민은 장르소설이란 틀에서도 변하지 않은 셈이다.
“베트남전쟁을 경험한 이들의 구술이 담긴 역사서 ‘베트남전쟁의 한국 사회사’(푸른역사)를 읽고 오랫동안 빠져 있었어요. 전쟁은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선악을 나눌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섞이는 복잡한 진실을 풀어보고 싶었어요.”
그의 추리소설 도전은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다. 벌써부터 이번 작품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또 다른 소설을 마음에 두고 있다.
“형사 진경언을 내세운 또 다른 작품도 구상하고 있어요. 법정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도 갖고 있습니다. 재밌게 쓸 수 있다면 어떤 이야기, 어떤 장르든 얽매이고 싶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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