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앞으로 5년 간 전국에서 270만 채의 주택을 공급하기로 했다. 이는 역대 최대 규모라고 홍보했던 문재인 정부의 공급계획(257만 채)을 넘어서는 물량이다.
정부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 각종 개발 규제 완화와 대규모 신규택지 발굴, 철도역세권 고밀개발, 사업심의 절차 간소화 등을 통한 사업절차 신속처리 등을 추진해나가기로 했다.
특히 공급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민간의 주택공급 활성화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공공은 취약계층을 위한 주거복지 등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공급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적잖은 법안 개정이 필요해 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문턱을 넘어야 하는 과제가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우려된다.
국토교통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국민 주거안정 실현방안’(이하 ‘8·16 대책’)을 16일(오늘) 발표했다.
● 5년간 270만 채 공급…수도권에서만 200만 채 이상
국토부에 따르면 정부는 내년부터 2027년까지 5년 동안 270만 채를 공급하기로 했다. 이는 문 정부가 약속했던 물량(2018~2022년·257만 채)보다 13만 채가 많은 것이다.
지역별로는 서울에서 50만 채(문 정부·32만 채), 인천과 경기에서 158만 채(129만 채) 등 수도권에서만 208만 채를 공급한다. 서울에서 지난 정부 때보다 50% 이상 계획물량이 늘어났다.
비수도권 지역에서는 광역·자치시에서 52만 채(48만 채), 8개 도에서 60만 채(80만 채)를 각각 준비하기로 했다. 수요가 상대적으로 적은 8개 도에서는 문 정부 때보다 20만 채 이상 물량이 줄어들어 눈에 띈다.
사업유형별로는 재개발·재건축과 도심복합사업 등을 통해 도심지역에서 52만 채(41만 채)를 공급한다. 공공택지에서는 3기 신도시 물량을 포함해 88만 채(64만 채)를 건설한다. 나머지 130만 채는 도시개발이나 지구단위계획구역, 기타 주택법 근거 일반주택사업 등을 통해 민간에서 공급하게 될 물량이다.
● 재개발 재건축 규제 완화해 22만 채 공급
정부는 이같은 공급 물량 확보를 위해 대대적인 관련 규제 완화를 추진한다.
최우선 대상은 도심 내 주택공급의 핵심이 될 재개발·재건축 사업 정상화이다. 우선 앞으로 5년 간 전국에서 신규 정비구역 지정 간소화 등을 통해 22만 채(12만8000채)를 확보하기로 했다. 서울에선 신속통합기획 방식으로 10만 채를, 경기·인천에서 역세권과 노후주거지를 중심으로 4만 채, 지방은 광역시 구도심 중심으로 8만 채를 각각 확보하는 게 목표다. 이를 위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평균 5년 정도 걸리는 정비구역 지정기간을 2년으로 줄이기로 했다.
재건축 사업 활성화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재건축 부담금은 대폭 낮아진다. 재건축 부담금은 2006년 도입됐지만 법정논쟁 등으로 실제 적용이 미뤄졌고, 2018년 재시행돼 올해 처음으로 부과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2006년 도입된 기준이 그대로 적용돼 집값 상승이 크게 오른 상황이 반영되지 않았다. 그 결과 수도권은 물론 지방에서도 과도한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이에 부과기준을 현실화하고, 1주택 장기보유자나 고령자 등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세부적인 내용은 9월에 확정 발표할 예정이다.
재건축 활성화에 또다른 걸림돌로 지적돼 온 안전진단 관련 규제도 완화된다. 구조안전성 비중(현행 50%)을 30~40% 수준으로 줄이고, 항목별 배점에 대해 관할지역 지자체장이 국토부와 협의를 거쳐 최대 10%포인트(p)까지 조정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로 했다. 구조안전성 비중이 20~30% 수준으로 낮아질 수 있다는 뜻이다.
정비사업에 부동산개발 신탁사 등의 참여도 혀용된다. 또 한국부동산원을 통해 재개발 재건축 공사계약 검증, 추진위원회 설립 지원 컨설팅, 관리처분계획 타당성 사전검증 등을 지원받을 수 있다.
● 리츠, 신탁 통한 도심복합개발로 20만 채 공급
정부는 도심공급 확대를 위해 문재인 정부 때 추진했지만 실적이 미미했던 ‘도심복합사업’도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다만 사업방식은 공공 주도에서 민간도 사업주체가 될 수 있도록 바꾸기로 했다.
이를 위해 관련 법(‘도심복합개발법’)을 연내 제정하고, 토지주 3분의 2이상이 동의하는 경우 신탁이나 리츠 등이 주도하는 도심복합개발사업을 허용하기로 했다.
리츠가 주도하는 경우에는 토지주(지분의 50% 이상)와 디벨로퍼, 금융기관 등이 참여하는 특수목적회사(SPC)를 설립하면 된다. 신탁사는 토지주 등으로부터 위탁을 받아 사업과 시공관리를 맡으면 된다.
사업은 대체로 도심과 부도심, 노후역세권, 준공업지역 등에서 이뤄지지만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교통이 편리하면서 사업·문화 거점지역으로 성장 가능성이 있는 지역 가운데 첨단사업 중심 고밀 복합개발을 추진하는 경우는 ‘성장거점형’, 노후도 60% 이상의 역세권이나 준공업지로서 주거중심 고밀 개발을 추진하는 경우는 ‘주거중심형’으로 분류된다.
민간도심복합 사업으로 추진되는 지역에는 공공사업 수준의 용적률 상향 조정과 양도소득세 이연(移延·납부시기를 늦추는 것) 등과 같은 혜택이 주어진다.
공공주도 도심복합사업은 기존방식을 유지하되 후속조치를 신속하게 처리하기로 했다. 다만 주민 호응이 낮은 지역(동의률 30% 이하)은 민간사업으로 바꾸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 신규 택지 조성 확대 통해 88만 채 공급
정부가 안정적으로 주도할 수 있는 공공택지 공급도 지속적으로 늘려나간다.
일단 문재인 정부 때 추진해온 3기 신도시와 지난해 발표한 광명·시흥 등 21만 채 공공택지는 후속 절차를 계속 밟아나가기로 했다. 이와 함께 올해 10월부터 내년까지 15만 채 내외의 후보지를 순차적으로 공개하기로 했다. 2024년 이후는 시장 상황을 고려해 물량을 조정할 방침이다.
대상지는 수도권과 지방의 수요가 높은 지역을 중심으로 하되, 산업단지와 도심·철도 인접지역이 최우선 타깃이다. 특히 철도역 인근은 개발밀도를 대폭 높여 ‘콤팩트 시티’로 만들 계획이다. 현재 3기 신도시 가운데 광역급행철도(GTX) 역이 들어설 경기 고양 창릉과 남양주 왕숙에 콤팩트 시티가 시범 조성될 예정이다.
콤팩트 시티는 철도역 반경 500m~1km 이내에 위치한 지역에 100m 이상의 초고층 아파트와 복합쇼핑몰, 복합교통환승센터 등을 조성하는 것이다. 프랑스나 홍콩 등에서는 이미 활용되고 있는 도심개발 방식이다.
한편 관심을 모았던 1기 신도시 재건축 허용 여부는 2024년으로 늦춰졌다. 정부가 도시 재창조 수준의 마스터플랜을 마련하기 위해 충분한 시간을 갖기로 했기 때문이다. 다만 관련 작업은 올해 안에 시작한다.
● 사업절차 간소화 통해 공급 속도 높인다
정부는 주택공급의 시간을 줄이기 위해 통합심의를 도입하는 등 사업절차를 대폭 간소화하기로 했다. 까다로운 행정절차의 중복과 지연처리가 원활한 공급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다.
우선 정비사업과 도시개발사업에 도시·건축·경관심의와 교통·교육·환경 등 각종 영향평가를 합쳐서 점검하는 ‘통합심의제도’를 의무화하기로 했다. 또 유사한 심의와 평가제도는 통합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100만㎡ 이하 중소택지는 지구지정과 계획수립 절차를 통합하고, 정비사업은 정비계획 변경과 사업인가를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택지조성 속도도 빨라진다. 공공기관 예비타당성 조사가 간소화되거나 필요하면 면제되고 토지보상제도도 대폭 개선된다. 특히 토지 협의양도 시 특별공급 대상에 그린벨트 이외 지구도 포함하고, 쪽방사업 토지주에게도 현물보상을 허용하기로 했다.
소규모 주택사업에 대한 지원도 강화된다. 단일 공동주택 단지에서만 추진 가능한 소규모 재건축을 연접한 2개 이상의 단지에도 허용하고, 금융 및 세제지원, 인허가 절차 간소화 등과 같은 혜택도 부여된다.
1,2인 가구에 적합한 도시형생활주택은 규모가 300실에서 500실로 확대되고, 방 2개 이상(투룸) 도시형생활주택 비중도 전체의 3분의 1에서 2분의 1로 상향된다. 다만 투룸이 늘어난 사업장은 주차장 설치기준이 공동주택 수준(1실당 0.6대→0.7대)으로 높아진다.
주택공급 촉진지역(이하 ‘촉진지역’)을 도입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촉진지역으로 지정되면 일정기간 각종 동의요건 등이 완화되고, 용적률이 상향되는 한편 금융지원 등과 같은 혜택이 주어진다. 내년 1분기(1~3월)까지 전문가와 지자체 의견 등을 수렴해 도입 여부가 결정된다.
● GTX 조기개통, 층간소음 비용 인정 통해 주거환경 개선
이번 대책에서는 공급 물량 확대 이외에도 쾌적한 주거환경 조성을 위한 다양한 방안도 포함됐다.
우선 서울 외곽에 조성됐거나 조성 예정인 신도시의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GTX 노선 개통시기가 앞당겨진다. A노선은 2024년6월 이전까지 완전 개통을 목표로 추진된다. B노선은 2030년 개통을 목표로 2024년에, C노선은 2028년 개통을 목표로 2023년에 각각 착공한다는 계획이다.
또 2기 신도시 등 기존 신도시 128개 지구는 교통 여건 개선을 위한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광역버스 신설, 출퇴근 전세버스 투입, 광역교통축 지정 등과 같은 맞춤형 교통대책이 마련된다.
층간소음 대책도 마련된다. 신축주택에 대해서는 소음 완화를 위해 바닥두께 등을 보강한 경우 분양가 가산을 허용하는 등 인센티브가 주어진다. 또 기존 주택에서 소음저감 매트 등을 설치하는 경우에도 지원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이와 함께 법정기준(세대당 1.0~1.2대) 이상의 주차 편의시설을 갖춘 주택을 지을 때 추가비용은 분양가에 포함하는 방안이 논의 중이다.
● 청년원가주택 공급 통해 주거복지 기능 강화
이번 대책의 중요한 축 가운데 하나는 주거사다리 복구다. 청년원가 주택이나 역세권 첫집을 50만 채 규모로 공급해 무주택 서민들의 내 집 마련 꿈을 실현시켜주겠다는 것이다.
청년원가주택 및 역세권 첫집은 공공택지나 도심정비사업 용적률 상향 등으로 기대되는 기부채납 물량 등을 활용해 건설원가 수준(시세의 70% 이하)으로 공급하는 주택이다. 남양주 왕숙지구, 고양 창릉지구, 하남 교산 등 3기 신도시와 도심 국공유지, 역세권 정비사업지, 도심복합사업 등지에서 공급된다.
공급대상은 19~39세 이하 청년층과 결혼한 지 7년 이내인 신혼부부, 생애최초 주택구입자 등이다. 40년 이상 장기 저리대출이 큰 자금 부담 없이 자기 집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5년 이상 의무 거주해야 하며, 매각은 공공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시세차익이 발생하면 70%는 최초 분양자가 갖는다.
최대 10년 간 임대한 뒤 분양할 수 있는 ‘(가칭) 내집마련 리츠주택’도 도입된다. 주택도시기금 등이 출자해 설립한 리츠가 시행사가 돼 공급하는 주택으로, 분양가의 절반을 입주 시 보증금으로 내고, 나머지 절반은 분양 전환 시 감정을 받은 금액으로 내게 하는 주택이다. 공급 대상 역시 무주택서민이지만 청년원가주택보다는 소득 기준 등이 높게 책정될 예정이다.
이밖에 서울시가 적극 추진 중인 ‘토지임대부 주택제도’도 개선된다. 토지임대부 주택은 토지는 사업시행자가 갖고, 주택소유권만 분양하는 주택이다. 그만큼 분양가가 싸다. 문제는 주택소유자가 환매할 때 LH에게만 팔 수 있도록 돼 있어 활성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정부는 앞으로 환매사업자에 LH 이외에 SH 등 지방공기업도 포함시킬 방침이다.
한편 공공임대주택의 품질 개선 작업도 본격화된다. 우선 평균 면적이 49㎡에서 56㎡로 넓어지고 마감재와 내부설비도 개선된다. 민간 분양주택을 사들여 공공임대로 공급하고, 표준건축비도 인상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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