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의 방주’ 차수판, 서초구 11년전 의무화하고도 관리 소홀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8월 19일 14시 34분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있는 ‘청남빌딩’의 10년 전 모습(왼쪽)과 올해의 모습. 사진출처=온라인 커뮤니티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있는 ‘청남빌딩’의 10년 전 모습(왼쪽)과 올해의 모습. 사진출처=온라인 커뮤니티
“(차수판 설치가) 의무라는 건 전혀 들어본 적이 없는데요?”

16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한 빌딩 앞에서 기자와 만난 이 건물 주인은 ‘차수판 설치 의무’에 대해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 했다. 2011년 8월 18일 이후 건축 허가를 받은 서초구 내 신축 건물의 경우 반드시 차수판을 설치해야 한다는 지침이 있다. 이 건물주는 “그런 기준이 있는 줄 알았으면 설치를 했을 것”이라며 “그렇잖아도 이번 폭우 때 지하 계단으로 물이 들어와 직원들이 이틀 내내 청소하느라 고생했다”고 했다.

● 차수판 설치된 서초구 건물 12곳 중 2곳뿐
서초구 ‘청남빌딩’은 최근의 기록적 폭우 뿐 아니라 2011년 여름 ‘최악의 물난리’라는 말이 나왔던 폭우 당시에도 다른 빌딩들과 달리 침수되지 않았다. 1m가 넘는 높이의 차수판을 설치한 덕에 빗물이 지하주차장과 건물 안으로 들이닥치지 않을 수 있었던 것. ‘노아의 방주’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서초구는 국지성 폭우에 따른 건축물 침수에 대비하겠다며 건물 신축 시 지하계단·주차장 출입구 등에 차수판 설치를 의무화하는 지침을 2011년 8월 만들었다. 서초구는 차수판 설치를 독려하기 위해 이를 건축 허가 조건으로 부여하고, 사용승인 시 감리자가 차수판 설치 이행 사진을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후 관리 감독이 이뤄지지 않아 이같은 지침이 유명무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본보 기자가 16일 서초구 서초동과 방배동, 반포동 일대 2011년 9월 이후 건축허가를 받은, 지하층이 있는 건물 12곳을 둘러본 결과 차수판이 있는 곳은 2곳뿐이었다. 이 2곳은 이번 폭우 때도 별다른 침수 피해가 없었다.

서초동 A 빌딩은 2020년 건축 허가를 받아 2021년 사용승인이 났음에도 차수판이 마련돼 있지 않았다. 빌딩 관리소장은 “얼마 전 폭우 때 건물 안으로 물이 종아리 높이만큼 들어왔고 지하주차장까지 물이 찼다”고 했다. 건축 당시 상황을 알고 있다는 이 관리소장은 건축 시 차수판 설치 규정이 있는지 몰랐고, 차수판이 없었지만 건축 허가와 사용승인을 받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이 빌딩은 16일 뒤늦게 차수판을 설치하기 위해 업체를 불러 출입구 3곳의 너비를 측정하던 중이었다.

● 현장 확인 과정 없어 유명무실한 지침
서초구청 관계자는 “건축 허가 시 설계자나 건축주, 감리자가 제출하는 자료를 보고 차수판 유무를 확인하는데 설계도에는 (차수판을) 설치하겠다고 해놓고 허가를 받은 이후 설치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했다. 이어 “완공 후 사용승인을 받을 때 감리자가 차수판을 설치한 것처럼 허위 자료를 제출했을 수도 있다”며 “실제로 건물에 차수판을 설치했는지까지는 구청에서 확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구에서는 현장을 방문해 설치 여부를 확인하고 있지 않다는 얘기다.

서초구는 “차수판 설치 의무화는 구 내부 방침으로 조례나 규칙은 아니다”라며 “준수하지 않았을 때 벌칙규정은 따로 없다”고 했다. 구는 “앞으로 건축 허가 및 사용승인 시 허술한 부분이 있는지 철저히 관리 감독해 서초구 내 폭우로 인한 침수 피해를 줄여가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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