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여름, 한 드라마가 ‘자폐’에 대한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을 바꿔놓고 있다. 자폐는 병이 아닌 장애이기에 자폐증(自閉症)이라 부르면 안 되고, 집착하는 특징도 그들이 가진 흥미라는 점을 인정해 존중하자는 것. 자폐성 장애인으로 국내 처음 박사 학위를 취득했던 윤은호 인하대 문화콘텐츠문화경영학과 초빙교수(36)는 “당연한 얘기지만 현실은 드라마와는 많이 다르기에 편하게 보지만은 못했다”며 “자폐성 장애(자폐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관심이 실제 변화로 이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어떤 점이 편하지 않던가요.
“네, 네. 드라마에는 우영우가 어떻게 서울대 학부에 입학했는지 안 나오는데… 제가 서울대 장애인 전형에 지원했을 때는 원서도 못 냈거든요.” (원서를 못 내다니요?) “2005년 서울대 장애인 전형에 지원했는데, 당시 서울대는 지원 자격이 되는지 사전 검증을 했어요. 여기를 통과한 학생만 원서를 낼 수 있었던 거죠. 제 경우는 직원분이 ‘자폐성 장애인을 교육해 본 적이 없어서 받을 수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돌발 행동을 할 수 있어서 어렵다고도 하고. 면전에서….”
―장애 때문에 장애인 전형에 지원할 수 없었다는 겁니까.
“그런 셈이죠. 기가 막혀서 당시 언론에 투고를 했는데 학교에서 봤나 봐요. 며칠 뒤 전화가 오더라고요. 지금이라도 지원하고 싶으면 내라고. 그런 식으로는 들어가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비장애인 수험생들과 똑같이 시험 보고 인하대에 들어갔지요. 인하대에는 장애인 전형이 없었거든요.” (우영우도 장애인전형이 아닐 수 있을까요.) “그럴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러려면 비장애인 학생들과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시간에 시험을 봐야 하기 때문에 경쟁이 힘들어요.” ―별도의 고사장이 제공되지 않습니까.
“정부가 분류한 15가지 장애 중 청각, 시각, 뇌병변 등 운동장애인에게만 해당돼요. 나머지는 비장애인 학생들과 같은 교실에서 시험을 봐요. 시각장애인에게는 점자 문제지, 청각장애인에게는 별도의 시험실, 뇌병변 등 운동장애인에게는 1.5배의 시험 시간 등 배려가 있는데 다른 장애인에게는 없어요. 장애인 선수와 비장애인 선수가 같은 트랙에서 달리는 셈이죠.”
―드라마다 보니 실제와 차이 나는 부분도 있었겠지요.
“솔직히… 쉽게 보기 힘든 부분도 있기는 했어요. ‘저렇지는 않은데…’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TV를 껐다, 켰다 반복하곤 했지요. 예를 들면 큰 소리가 날 때 자폐당사자가 손으로 귀를 두드리고 누르며 막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자폐당사자들은 귀를 막기는 해도 두드리지는 않아요. 소리 때문에 귀가 아파서 막는 건데 거기를 또 두드리면 더 아프니까요. 3회에 나온 ‘펭수’에 빠진 자폐당사자도 현실에서는 좀 있기 힘들어요.” ―자폐성 장애에는 어떤 물건에 빠지는 특징도 있지 않습니까.
“그렇긴 한데 대부분 아주 어릴 때 생겨요. 펭수는 2019년에 나왔잖아요. 성인이 됐을 때, 짧은 시간에 그렇게 확 빠지기는 쉽지 않거든요. 물론 드라마적인 요소 때문에 그런 것이겠지만… 실제 자폐당사자들은 만나서 얘기를 들어봤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해요. 그리고… ‘우영우’로 인해 사회적 관심이 는 것은 긍정적인데 반대로 혐오 발언이 더 늘어난 면도 있어서 안타까워요.”
―그럴 이유가 있습니까.
“‘우영우’가 뭘 잘못해서는 아니에요. 전에는 관심 자체가 없어서 우리 같은 사람들에 대한 혐오 발언도 적었어요. 그런데 드라마가 뜨면서 평소에 장애인을 혐오하는 사람들에게는 또 하나의 비하할 소재가 생긴 거죠. 오늘도 다른 자폐당사자분들과 이야기하다 왔는데… 확실히 전에 비해 혐오, 비하가 더 늘어난 게 느껴진다고 해요.” (실례지만 어떤 식으로….) “뭐 욕하는 경우도 있고, 자폐당사자들이 지나가면 ‘우영우 간다’ 이러기도 하고….”
―드라마 덕분에 ‘자폐증’이 왜 잘못된 표현인지 알게 됐습니다.
“자폐에 대해 가장 잘못된 표현인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게 ‘자폐증’이란 말이에요. 자폐성 장애에는 정말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는데 모두를 싸잡아 병으로 규정하는 것이니까요. 장애는 병이 아니거든요. 국제표준인 ‘세계표준질병 사인 분류(ICD)’에서도 ‘자폐성 장애’를 유일한 공식용어로 쓰고 있어요. 그런데도 우리는 표준어에 ‘자폐증’, ‘자폐적’을 등재하고, 설명도 부정적으로 하고 있지요.”
―어떤 점이 잘못된 설명인가요.
“‘자폐적’을 ‘다른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을 회피하고 자기 내면세계에 파묻혀 주위로부터 고립되는 것’으로 설명해요. 자폐당사자 모두를 싸잡아 외부와 접촉을 거부하고, 현실에서 도피해 내면세계에 틀어박힌, 치료가 필요한 부정적인 존재로 보는 거죠. 그러다 보니… 제가 최근 3년 동안 기사를 조사해봤는데, 정치권이나 언론에서도 부정적인 상황을 비유할 때 쉽게 ‘자폐’란 단어를 써요. 예를 들면 ‘자폐적 역사관을 청산해야’ ‘자폐적 경향을 보이는 사회문화를 바꿔야’ 이런 식으로요.” ―외국에는 자폐성 장애를 가진 의사, 교사, 프로그래머, 연구자 등이 수두룩한데 왜 우리는 보기 힘든 겁니까.
“그게… 자폐를 포함해서 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람이 대한민국 일반 학교에 진학하면 그 순간부터 괴롭힘 등 학교 폭력을 벗어나는 게 거의 불가능해요. 저도 상처가 아물 새가 없었으니까요. 돈이나 물건을 뺏는 건 일상적이고…. 그래서 중고교 시절에 힘들어도 미래를 위해 일반학교에 남을지, 아니면 특수학교나 특수학급으로 갈지 갈림길에 서요. 대부분은 특수학교를 선택하죠.”
―학교 폭력 때문인가요.
“네, 네. 특수학교로 옮기면 학교 폭력은 줄지만 대학 진학 공부와는 완전히 멀어지게 되요. 뒷받침만 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학생들도 사라질 수밖에 없는 거죠. 자폐를 포함해 정신적 장애를 가진 학생들이 얼마나 학교 폭력을 당하는지 나라에서 조사라도 해줬으면 좋겠는데…. 제가 알기로는 제대로 한 번 조사한 적이 없어요. 자폐성 장애가 있는데도 장애인 등록을 하지 않는 분도 많고요.” ―장애 등록을 하지 않는 이유가….
“자폐성 장애인으로 등록된 분이 3만 명 정도 되는데 미등록자가 상당히 많아요. 아이가 자폐성 장애를 갖고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 부모님들이 많거든요. 그저 조금 불편하거나 발달이 늦는 것, 치료하면 나아지는 것으로 생각하시죠. 그런 부모님들은 아이가 다른 자폐성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통제해요.” (생활에 지장이 없는 정도라 그런 것 아닙니까.) “진단상으로는 자폐성 장애가 있는데 부모님이 인정하지 않아 장애인 등록을 못한 친구가 있어요. 입대했는데 결국 관심사병으로 찍혀 굉장히 힘들게 복무했지요. 정신 질환도 있어서 약을 먹는데 장애인 등록을 하지 않아서 도움도 받을 수가 없고요. 우영우도 남자였으면 군대 갔을지 몰라요.”
―장애인이 왜 군대를 갑니까.
“자폐 진단 기준에 아이큐(IQ)는 있지도 않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상하게 IQ가 사실상 기준이 돼요. 이 수치가 높으면 자폐 검사를 잘 안 해 주는 거죠. 저도 2002년인가 재진단 받으러 병원에 갔더니 IQ검사부터 시켰는데 수치가 높게 나오니까 (재진단 검사가) 안 될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제대로 진단 검사할 수 있는 곳도 적다 보니 좋은 의사 선생님은 예약해도 3년 후에나 받을 수 있어요. 자폐진단 검사를 제대로 못 받으면 (군대) 갈 수 밖에 없죠. 서러운 게 어디 한두 가지인가요. 제가 박사 학위를 딴 게 이상하다고 민원을 넣은 사람도 있었으니까요.” ―무슨 그런 민원이….
“처음 자폐성 장애인 등록을 하면 2년 후에 한 번 더 진단 검사를 받고 재등록을 해야 해요. 그러면 영구적으로 장애인 등록이 되는 거죠. 그런데 이후에도 누가 ‘쟤 이상하다’고 지자체에 민원을 넣으면 지자체에서 자폐당사자에게 진단 검사를 다시 받아 결과를 제출하라고 해요. 그래서 저도 2018년에 또 검사를 받았어요.” (박사 취득이 뭐가 이상하다는 겁니까.) “저런 애가 어떻게 박사를 받느냐고… 결국 다시 받았어요. 비용이 40만∼50만 원 드는데 정부 보조는 10만 원이에요. 나머지는 제가 내야 해요. 그게 우영우에는 안 나오는… 우리 현실이에요.”
윤은호 교수(36)
자폐성 장애인으로는 국내 처음으로 2016년 박사 학위(문화경영학)를 취득했다. 2019년부터 모교인 인하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자폐성 장애를 가진 등록 장애인 중 교수는 그가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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