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모 씨(39·여)는 최근 중학교 2학년 아들이 작성한 ‘역사신문 만들기’ 수행평가 과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아들이 취합한 자료는 대부분 인터넷, 소셜미디어 등에서 복사해온 내용이었다.
부정확한 내용이 적지 않았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허구로 만든 스토리가 ‘사실’인 것처럼 인용돼 있었다. 역사를 주관적으로 해석한 개인 유튜브를 출처로 표기하기도 했다. 정 씨는 “요즘 아이들은 시간을 들여 책이나 검증된 정보를 찾기보다는 접근이 편한 인터넷 문서나 영상을 검색해보고, 그 내용을 사실이라고 믿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한국 학생들의 ‘디지털 리터러시(Literacy·문해력)’ 저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디지털 기기 접근성은 높아졌지만 온라인 정보를 바르게 해석하거나 취합한 정보를 활용해 더 생산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떨어진다는 뜻이다.
특히 서울 중고교생 1만3141명을 조사한 결과 부모 경제력에 따라 디지털 문해력 격차가 벌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28일 서울시교육청 교육정책연구소의 ‘Z세대 서울학생의 디지털 리터러시와 학교 환경의 관계’ 보고서에 따르면 온라인 정보 활용, 미디어 비판 능력 등에 대한 개개인의 능력은 가정의 경제 수준 차이에 따라 최대 9.1%포인트 격차가 나타났다. 경제 수준은 학생들이 주관적으로 응답한 것으로, 상(22.2%)·중(69.3%)·하(8.5%)로 구분했다.
‘인터넷 정보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 수 있다’는 문항에 가정환경이 ‘상’이라고 응답한 학생은 81.5%가 ‘그렇다’고 답했다. 반면 ‘중’, ‘하’라고 응답한 학생이 ‘그렇다’고 답한 비율은 각각 75.7%, 72.4%에 그쳤다. 온라인 플랫폼 및 자료 학습 활용, 인터넷 정보 사실 구분 여부 등 다른 문항에서도 경제 수준에 따라 3∼9%포인트씩 차이가 났다. 보고서는 “가정환경에 따른 디지털 문해력 격차가 유의미하게 나타났다”며 “취약계층 학생 지원이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학생들의 디지털 문해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하위권이다. 지난해 5월 OECD가 발표한 보고서에서 한국 학생(만 15세)이 온라인에서 사실과 의견을 식별하는 문제를 맞히는 ‘정답률’은 25.6%에 그쳤다. 미국 69.0%, OECD 평균 47.4%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정부도 청소년들의 디지털 문해력을 높이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22일 ‘디지털 인재 100만 명 양성 방안’을 보고받은 국무회의에서 “디지털 문해력을 높일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들이 체계적으로 제공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디지털 문해력 격차가 ‘학습 능력 격차’, 성인이 된 후 ‘소득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박주호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는 “(청소년 시기) 디지털 활용능력 차이가 향후 직업 선택의 폭까지 좌우할 수 있다”며 “디지털 교육 기반이 열악한 지역이나 취약계층을 위한 ‘핀셋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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