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 상장사인 쎄미시스코 주가가 폭등한 건 지난해 6월부터다. 에디슨모터스가 쌍용자동차 인수자금을 마련하는 창구로 쓰겠다며 이 회사를 사들이면서다. 6000원대를 오가던 주가는 작년 11월 장중 8만2400원까지 치솟았다. 회사 이름도 에디슨EV로 바꿨다. 지난해 초부터 이 회사 지분 38%를 매수한 투자조합 6곳은 주가가 급등하자 지분을 대거 처분했다. 이들 조합은 지분을 쪼개서 매입하는 수법으로 1년간 주식을 팔지 못하도록 한 보호예수 규제와 공시 의무를 모두 피해갔다.
대주주 조합들의 ‘먹튀’ 의혹을 조사한 금융당국과 최근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기업사냥꾼으로 악명 높은 이모 씨가 일련의 과정을 주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씨 일당이 투자조합을 만든 뒤 쌍용차 인수를 주가 조작의 먹잇감으로 삼아 거액의 부당이득을 챙겼다는 것이다.
회계사 출신인 이 씨는 과거에도 무자본으로 기업을 인수한 뒤 허위 공시로 주가를 띄우고 먹튀한 전력이 있다. 시세 조종, 미공개 정보 이용 등 불공정거래 사건에 연루된 것만 최소 7건이라고 한다. 하지만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을 빼고 확정된 처벌은 800만 원 벌금형에 그친다.
더군다나 이 씨는 다른 코스닥 기업의 배임, 부정 거래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도중에 이번 쌍용차 먹튀를 저질렀다. 불공정거래 혐의자에 대한 법적 판단이 나오기 전에 주식 거래 등을 차단하는 장치가 있었다면 이 씨의 기업사냥을 막을 수 있었다는 뜻이다.
미국, 영국, 홍콩 등 선진국은 자본시장 범죄에 대해 형사처벌 외에도 금융당국이 강도 높은 행정제재를 가한다. 금융당국 제재만으로 불공정거래를 한 사람의 금융 거래를 막고 상장사 취업 등을 제한한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부당이득을 전액 몰수할 수 있고 과징금 성격의 민사 제재금도 별도로 부과한다. 지난해 SEC가 부과한 제재금과 환수한 부당이득은 38억5200만 달러(약 5조2000억 원)다. 형사처벌 수위도 높아 72조 원대 다단계 금융사기를 저지른 버나드 메이도프는 150년형을 선고받았다.
이와 달리 한국은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 불공정거래 혐의가 적발돼 법원 판결을 받기까지 평균 2년 이상 걸리는 데다 실형 대신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비중이 40%에 이른다. 부당이득도 대부분 수중에 그대로 남아 몇 년 징역형을 살다가 빼돌린 돈으로 호의호식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불공정거래로 얻은 부당이득에 최대 2배의 과징금을 물리도록 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고, 금융당국의 행정제재를 도입하는 방안도 이제야 추진되고 있다.
이 씨 일당이 먹튀하는 동안 에디슨EV 추격 매수에 나섰던 개미들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쌍용차 인수 무산 이후 에디슨EV는 3월 말부터 주식 거래가 정지됐다. 소액주주 10만여 명이 7000억 원대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산된다. 갈수록 진화하는 자본시장 범죄를 적시에 엄벌하지 못하는 한 투자자들의 불신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부당이득을 모두 몰수하고 투자자 피해를 구제할 제도 등이 동반돼야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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