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갱신청구권, 전세의 월세화와 이중가격 심화시킨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5일 12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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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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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차 계약갱신청구권(이하 청구권)도입이 ‘전세의 월세화’에 일조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또 청구권 도입에 전세보증금의 이중가격 구조도 굳어져가고 있었다.

이에 따라 현재의 전세가격지수가 시장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가능성이 큰 만큼 새로운 지표를 개발하고, 월세가 확대되는 상황에 맞춘 임차인 보호책 마련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공사가 운영하는 부동산정보포털 ‘씨:리얼(SEE:REAL)’에 최근 이런 내용의 기고문(‘계약갱신청구권 도입 이후 전·월세 가격의 특징 및 변화’)을 게재했다.

기고문은 김성진 우리은행 부동산연구실 연구위원이 올해 6월까지 접수된 서울의 전·월세 신고자료 11만여 건 가운데 신규 및 갱신계약 여부가 명시된 자료 8만 5927건을 분석한 결과다. 월세는 반전세, 부분전세 등 월세가 일부라도 포함된 경우를 모두 포함했다.

● 신규 임대차 계약에서 월세 선호 현상
5일 기고문에 따르면 전체 계약에서 신규계약이 56.1%(4만 8191건), 갱신계약이 43.9%(3만 7736건)였다. 또 계약형태별 전·월세 비율을 보면 갱신계약의 경우 전세가 72.1%, 월세가 27.9%로 큰 차이를 보였다.

반면 신규계약에서는 전세(53.8%)와 월세(46.2%)의 차이가 크지 않았다. 재계약 때 대부분 기존형태를 유지하면서 전세 비중이 상대적으로 크지만, 신규계약 때엔 전세 대신 월세를 선택하는 비율이 늘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갱신계약을 사용한 재계약 때에도 청구권 사용 여부에 따라 비슷한 상황이 나타났다. 전세비율이 청구권 사용 때엔 78.8%였지만 미사용 때엔 59.1%에 불과했다. 월세 임차인의 경우 청구권 사용 확률이 낮거나, 연장 계약 시 전세에서 월세로 바뀌는 일이 발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월세 임차인은 청구권 사용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다. 종전 계약방식이 전세일 때에는 청구권 사용비율이 70.7%였으나 월세는 51.3%로 절반을 조금 넘었다.

계약 갱신의 경우 90% 이상이 대부분 기존 계약 형태를 유지했다. 하지만 전세보다는 월세계약에서, 청구권 사용 때에 계약 방식을 기존대로 유지하는 비율이 높았다. 반면에 청구권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전세→월세‘로 바뀌는 경우가 12.0%나 됐다. 청구권을 사용하지 않고 재계약할 때 전세의 월세 전환이 활발하게 나타났음을 의미한다.

● 청구권 사용에 전세보증금 이중구조 심화
청구권 사용에도 대부분의 계약에서 보증금을 올렸다. ’전세→전세‘로 재계약한 경우 95.1%가 보증금을 올렸다. 감액은 0.1%였고, 기존 금액 유지도 4.8%나 됐다.

청구권 사용 여부에 따라 전세보증금의 상승폭에서도 큰 차이를 보였다. 청구권 사용 때 평균 전세보증금은 4억 8507만 원에서 5억 877만 원으로 4.9%(2370만 원) 올랐다. 반면 청구권을 사용하지 않은 계약에선 4억 7819만 원에서 5억 6627만 원으로 18.4%(8808만 원)이나 상승했다.

심지어 계약 갱신 전에는 청구권 사용 아파트의 전세보증금이 비쌌지만, 갱신 후에 청구권 미사용 아파트의 전세보증금이 더 많이 오르면서 가격이 역전되는 곳도 나타났다.

게다가 청구권 사용 시에 계약 갱신 전후 보증금 증가액이 1억 원을 넘는 곳이 0.2%에 불과했지만, 청구권을 사용하지 않은 계약 갱신의 경우에는 26.2%에 달했다.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한 계약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청구권 사용 땐 보증금 유지가81.8%로 압도적으로 많았고, 증액은 1.1%에 불과했다. 반면 청구권 미사용 시엔 유지가67.1%로 줄고, 증액이 23.4%로 늘었다.

월세계약을 유지하는 경우에도 청구권 사용 여부에 따라 보증금 증가율이 크게 차이를 보였다. 다만 청구권 사용 시엔 월세 인상, 미사용 시에는 보증금 인상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 새로운 전세가격 지표 필요
김성진 우리은행 연구위원은 이와 관련 “청구권 사용 여부가 전·월세 계약형태에 상관없이 동일 물건의 가격 격차를 확대시키고 있었다”며 “청구권이 임대인 우위의 시장에서는 가격 상승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현재의 전세가격지수는 신규-재계약, 청구권 사용-미사용 간의 가격차가 확대된 시장에서 올바른 지표로 역할을 못할 가능성이 높다”며 “청구권 여부가 반영된 새로운 지표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금리 상승의 영향과 함께 청구권 도입이’전세의 월세화‘에 일조하고 있는데, 월세가 전세보다 임차인 보호에 취약하거나, 가격 인상에 민감하다”며 “월세 확대에 맞춘 임차인 보호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이어 “현재 전세시장이 비교적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시장이 과열되는 시기가 다시 오면 여러 문제점이 부각될 수 있다”며 “시장이 안정된 지금이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는 적기라고 판단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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