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OPEC플러스(OPEC+)’가 10월 하루 원유 생산량을 10만 배럴 줄이기로 합의했다. 물가 상승을 막기 위해 원유 증산 강조한 미국 등 서방 국가의 요구에 정면으로 맞선 것이란 분석이다.
OPEC+는 5일 월례 회의 후 낸 성명을 통해 이 같이 밝혔다. 로이터에 따르면 10만 배럴은 세계 원유 수요의 0.1%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이번 결정으로 OPEC+ 하루 원유 생산량은 8월 수준으로 복귀하게 됐다. OPEC+는 지난달 9월 원유 하루 생산량을 10만 배럴 늘리기로 합의한 바 있다.
로이터는 OPEC+ 내부 소식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OPEC+ 회원국들은 압둘아지즈 빈 살만 사우디 에너지 장관이 필요하면 언제든 회의를 소집해 원유시장 안정을 위해 개입하는 것을 지지했다”고 전했다. 매달 진행하는 월례 회의가 아니더라도 언제든 사우디의 주도 아래 추가 감산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OEPC+가 원유 감산 기조로 돌아선 것은 2021년 4월 이후 처음이다. 당시 OPEC+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유행 초기 하루 900만 배럴을 감산해오다가 같은 해 5월부터 단계적으로 감산 규모를 줄이는 방식으로 점차 증산하기로 합의했다. 2021년 7월에는 하루 감산량이 580만 배럴이던 당시 다음 달인 8월부터 하루 40만 배럴 씩 증산하기로 결정한 이후 줄곧 증산 기조를 이어왔다.
OPEC+의 이 같은 결정은 미국의 원유 증산 방침에 정면으로 맞선 조치다. 제니퍼 그랜홈 미국 에너지부 장관은 이번 OPEC+ 정례 회의에 앞선 지난달 21일 “내년부터 미국이 기록적 원유 생산에 들어갈 것”이라며 대대적 증산을 예고한 바 있다. 미국이 원유 증산을 시사하자 이에 대한 대응 차원으로 OPEC+가 감산 결정을 내린 셈이다.
OPEC+의 이번 결정으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더욱 체면을 구기게 됐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7월 유가를 잡기 위해 논란에도 불구하고 사우디를 방문했는데, 이후 OPEC+가 증산량을 대폭 축소한 데 이어 이달에는 아예 감산 기조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바이든 행정부와 사우디는 사우디 내 인권 문제 등을 두고 대립각을 세워왔다.
카린 장 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OPEC+의 감산 결정과 관련해 별도 성명을 내고 “바이든 대통령은 경제 성장을 지지하고 미국과 전 세계 소비자를 위해 에너지 가격을 낮추기 위해 에너지 공급이 수요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왔다”며 “바이든 대통령은 에너지 공급을 강화하고 가격을 낮추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뉴욕타임즈(NYT)는 “이번 감산은 사우디가 주도한 것으로 보인다”며 “OPEC+는 산유량을 늘려달라는 바이든 행정부의 간청을 얼마든지 무시할 의향이 있음을 보여줬다”고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바이든 대통령이 사우디를 순방한 지 몇 주 만에 나온 감산 결정은 정치적 신호”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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