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시장의 ‘텐션’(tension·긴장)이 팽팽하다. 지난해까지 크게 오르던 집값이 주춤한 가운데 올해 들어 ‘거래 절벽’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 서초구·강남구 등 핵심 지역에선 기존 거래가 대비 수억 원 낮은 급매물이 거래되는가 하면, 신고가가 경신되는 상반된 시그널도 감지된다. 향후 집값 등락을 놓고 매도/매수 희망자들의 눈치 싸움이 이어지는 상황. 9월 13일 필명 ‘빠숑’으로 유명한 부동산시장 리서처 김학렬 스마트튜브 부동산조사연구소 소장을 만나 안갯속 시장 상황에 대한 분석과 향후 전망을 물었다.
“거래량 예년 대비 20분의 1 수준”
현재 부동산시장을 어떻게 평가하나.
“어찌 보면 조정되는 듯하고, 또 일부 급매물 거래를 두고 폭락장이라고 표현하는 이도 있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상황이다. 다만 올해 주택 거래량은 거래량이라 할 수 없을 만큼 적다. 2020년에 비해 2021년 거래량이 절반으로 줄었다. 올해 거래량은 지난해의 10분의 1 수준이다. 정상적인 시장 상황과 비교하면 20분의 1 토막이 난 것이다. 이런 거래량을 유의미한 통계로 볼 수 있을지가 논란이다. 현재 상황에선 집값 등락을 섣불리 예상하기보다 어떤 거래가 이뤄지고 있는지 체크하는 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실제 ‘체크’해보니 어떤 매물이던가.
“최근 거래된 급매물을 일부 샘플링해 조사해보니, 이사를 앞두고 잔금을 치러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장 매도가 어려우니 부동산공인중개사에게 가격 상관없이 팔아달라고 한 것이다. 주로 어떤 사람이 샀는지도 관계자들에게 물었다. 같은 단지에 살고 있어 급매물이 상당히 싸게 나온 것을 빠르게 판단한 경우가 적잖았다. 가령 20평형대 주민이 같은 단지 30평형대 물건을 사거나, 자기 자녀에게 추천해 사게 한 경우도 있었다. 서울에서 흔히 알 만한 입지는 대부분 이런 식의 거래가 이뤄졌다고 본다. 흔히 말하는 직거래나 증여식 거래는 매매가가 지나치게 낮기 때문에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가령 강남의 한 아파트 단지는 평소 거래가가 (평형대에 따라) 29억 원에서 43억 원 사이에 형성돼 있는데, 최근 15억 원에 거래됐다. 누가 봐도 의아한 거래를 두고 ‘집값이 고점 대비 절반으로 하락했다’고 평가할 순 없다.”
서울과 그 외 지역의 시장 상황은 다르지 않나.
“그렇다. 최근 서울에서 거래가 성사된 급매물 상당수가 이처럼 일반적이지 않은 경우로 보인다. 서울은 일부 급매물이 낮은 가격에 거래될 뿐 공급이 많거나 수요가 급감한 것은 아니다. 다만 지방, 특히 대구는 실제 하락하는 것으로 보인다. 시세가 가장 높다는 수성구조차 신규 분양과 입주는 물론, 기존 아파트 물량도 많다. 매수자로선 굳이 비싼 가격을 감수해야 할 이유가 없고, 골라 살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향후 시세가 더 떨어진다고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전세 매물도 있어서 한시적으로 전세로 갔다가 매매로 전환해도 된다. 대구는 올해, 혹은 내년까진 조정장이 될 전망이다.”
“2021년 부동산 현상, 뇌리에서 지워라”
아파트 청약 경쟁률과 미분양 측면에서도 부동산시장의 변화된 시그널이 감지된다.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R114’에 따르면 7월 말 전국 아파트 청약 경쟁률은 12 대 1로 지난해 평균(21 대 1)보다 낮다. 같은 시기 국토교통부(국토부)가 집계한 전국 미분양 주택은 3만1284채로 2019년 12월 이후 처음으로 3만 채를 넘어섰다(그래프 참조). 이에 대해 김 소장은 “2021년 시장 상황이 많은 사람의 부동산 인식에 잘못된 영향을 미쳤는데, ‘2021년 현상’은 뇌리에서 지울 필요가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부연했다.
“지난해까지 서울의 경우 높게는 수백 대 1, 낮게는 수천 대 1에 이를 정도로 청약 경쟁률이 높았다. 신규 아파트 가격이 기존 아파트보다 저렴했기에 시장이 과열됐던 것이다. 현재 서울의 청약 경쟁률은 여전히 두 자릿수로, 정상 시장으로 가는 과도기라고 보면 된다.”
최근 미분양 사태는 어떻게 보나. “서울에서 미분양이 증가했다는 곳을 가보면 대부분 강북 지역이다. 특히 주상복합인지, 아파트인지 애매하고 가구수도 적은 곳이다. 흔히 생각하는 대단지 아파트와는 거리가 멀다. 지난해까진 이런 주택도 분양이 활발히 이뤄졌다. 올해 역시 서울 주요 지역에 들어서는 선호도 높은 브랜드의 대단지 아파트는 여전히 완판된다. 반면 인근 구축 아파트와 비교해 가격 및 상품성이 애매한 곳은 미분양된다. 시장 상황을 이처럼 지역별로 분리해서 봐야 한다. 이제 정상적으로 매물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시기가 됐다. 주변 시세와 비교했을 때 가격 적정성이나 상품성 등을 가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부동산 상품성 평가 기준은 무엇인가.
“거주에 필요한 기반시설을 잘 갖추고 일자리가 많아야 한다.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입주민들의 경제력이 비슷한지도 따져야 한다. 그런 조건을 갖춘 입지는 딱 정해져 있다. 서울 서초구, 강남구, 용산구다. 지금도 탄탄한 수요층이 있다. 최근 거래 사례를 보면 일부 급매물이 비교적 낮은 가격에 거래되는 동시에 신고가도 경신되고 있다.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퍼스티지(전용면적 222.7㎡, 7월 14일
84억 원 거래), 반포자이(전용면적 216㎡, 5월 21일 72억 원 거래) 등이 대표적 사례다. 다른 지역으로 급히 이사 갈 때 급매물을 내놓는 법인데, 서초·강남·용산구의 주요 아파트 단지 주민들은 부동산시장의 최종 종착지에 살고 있다. 굳이 급하게 매물을 내놓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물론 같은 지역에 신축 아파트가 생기면 기존 집을 팔고 옮길 수도 있으나 지금은 신규 단지 매물도 없다시피 하다.”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 가능성 높아”
부동산시장이 얼어붙었지만 정부는 아직 이렇다 할 규제 완화 드라이브를 걸지 않고 있다. 최근 시장에선 시가 15억 원을 넘는 아파트에 대한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금지 규제가 추석 이후 해제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왔다. 다만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 국토부 등 관계 당국은 “시장 상황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언젠가는 논의할 수 있는 사안이나 적어도 현 시점에선 검토, 협의하거나 결정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 대신 전국 43곳의 ‘투기과열지구’와 101곳의 ‘조정대상지역’ 일부를 지정 해제하는 방안이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급격한 규제 완화가 시장을 자극할 수 있기에 속도 조절 기조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추후 유력한 규제 완화 포인트는 무엇일까. 김 소장은 “현실적으로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가 이뤄질 가능성이 적잖다”고 내다봤다. 이어지는 그의 설명이다.
“인천이나 경기 지역은 신도시 건설을 통해 신규 주택을 계속 공급할 여지가 있다. 반면 서울은 도시정비사업 말고는 대규모 주택 공급 방법이 마땅히 없다. 결국 당장 시세의 오르내림과 상관없이 재건축·재개발을 추진할 공산이 크다. 2020~2021년 재건축·재개발은 그야말로 폭등 시장이었다. 신축 아파트를 구할 방법이 막혀 사람들이 그 전 단계인 재건축·재개발 시장에 눈을 돌린 것이다. 이 중에서 최근 가격 조정이 이뤄진 지역에 들어가는 것을 고려할 만하다.”
구체적으로 어떤 곳을 눈여겨볼 만한가.
“분양이 여러 이유로 연기된 곳들이 있다. 가령 최근 서울 상계, 신림, 북아현 뉴타운과 경기 광명뉴타운 등이 피(premium)가 상당히 내렸다. 재개발 사업에 근본 문제가 생긴 게 아니라, 분양 일정이 밀린 것이기에 눈여겨봐도 좋다. 재건축의 경우 그간 안전진단을 통과 못 해서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곳들이 있다. 향후 안전진단 기준이 완화되면 재건축 사업도 당연히 정상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이전 정부에선 재건축 사업을 억제했는데, 특히 안전진단 기준 강화로 진행을 막아섰다. 안전진단 기준 완화는 시행령 개정으로도 가능하기에 재건축에 속도가 붙을 수 있다.”
“아파트 수급, 상품성 따지는 기본기 중요”
결국 부동산 수요자들의 관심은 향후 시장 전망으로 쏠린다. 김 소장은 이에 대해 “지금은 부동산시장을 내다보기 어려운 시기로 대세 상승, 대세 하락 같은 전반적인 전망은 어렵다. 다만 철저히 기본으로 돌아가라고 조언하고 싶은데, 아파트의 수요-공급과 상품성을 따져보라는 것”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서울 핵심 지역에 양질의 아파트가 공급되기 전까지는 지금 같은 사실상의 거래 정지 상황이 계속될 것이다. 부동산시장 상단은 정체 상황이고, 하단에 속한 지역만 일부 순환되는 셈이다. 서울 상단 지역은 그보다 상급 입지가 없다. 중하위권이라 할 수 있는 곳은 인접한 인천, 경기보다 시장 경쟁력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어 지역 간 순환이 이뤄질 수 있다. 서울 핵심 지역에서 공급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시장이 나뉜 상황은 계속될 것이다.”
수도권 주택 수급은 어떨까.
“서울의 입주 물량이 적은 것은 팩트로 보인다. 경기도는 쏘쏘(so so: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고 인천은 많다. 서울에서 부동산 수요를 해소 못 한 이의 상당수가 인천에 관심을 둘 것 같다. 인천도 가격이 무조건 조정되는 것은 아니고, 서울에서 수요가 유입될 만한 곳의 시세가 반등할 수 있다. 서울 안에서도 입지가치가 탄탄한 곳은 조정되더라도 급매물 위주로만 거래되고, 인천·경기와 경쟁해 순위가 밀리는 곳은 조정 가능성이 크다. 수도권의 가격 오르내림을 전망해봤는데, 같은 논리를 지방에 적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적절한 내 집 마련 타이밍은?
“지역과 상품에 따라 다르다. 상급 입지로 이동을 고려하는 이들에게는 ‘지금 당장’ ‘준비된 사수부터 쏴’라고 조언할 수 있다. 다만 같은 지역에서 움직이거나 하급 입지로 이동해야 하는 이들은 상황을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몰려든 단기 수요로 지난해 가격이 크게 올라 조정 가능성이 있는 곳, 서울 중하위권 지역이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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