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피해자 모습 아니다” 무죄선고에…대법 “잘못된 통념 전제 판단 안돼”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18일 19시 39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전경. 2018.6.17/뉴스1 ⓒ News1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전경. 2018.6.17/뉴스1 ⓒ News1
성폭력 피해자가 통상적인 피해자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진술의 신빙성을 부정해선 안 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A 씨(70)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8일 밝혔다. A 씨는 2019년 1월 채팅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만난 B 씨(30·여)를 경기 구리시의 한 모텔로 데려가 강제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판결문에 따르면 A 씨는 “예전에 국가대표 감독을 한 적이 있다. 중요하게 할 얘기가 있는데 여기는 너무 춥다.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을 테니 모텔에 가자”면서 B 씨와 모텔로 갔다. 이어 일방적으로 생활비 등에 보태라며 50만 원을 가방에 넣어준 뒤 신체 접촉을 했다. B 씨는 피해 당일 성폭행 피해자 지원센터에 신고한 뒤 다음 날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B 씨는 사건 이후 성폭행 상담소 직원에게 자살을 암시하는 메시지를 보내고 자살시도를 했지만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자살을 막은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 과정에선 유일한 직접 증거인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쟁점이 됐다. A 씨는 재판 과정에서 합의에 의한 신체 접촉만 있었다고 주장했으나 1심 재판부는 피해자 진술이 일관되고 구체적인 점 등을 들어 A 씨의 혐의를 유죄로 보고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사건 전후 피해자의 태도가 강제추행 피해자라 하기에 수긍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A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B 씨가 처음 만난 A 씨와 별 저항 없이 모텔에 동행한 점, 사건 직후 도움을 요청하거나 모텔을 빠져나가려 하지 않은 점 등을 이유로 B 씨 진술의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봤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잘못된 통념에 따라 통상의 성폭력 피해자라면 마땅히 보여야 할 반응을 상정해 두고 이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피해자 진술의 합리성을 부정했다”며 지적했다. 피해자의 대응 방식이 상황과 처지에 따라 다를 수 있는 만큼 통념이 아닌 피해자 상황에 기초해 진술 신빙성을 따져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또 B 씨의 진술에 대해서도 “주요한 부분이 일관되고, 구체적이며, 모순되는 부분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원심이 “수긍하기 어렵다”고 본 B 씨의 행동에 대해서도 피해자의 당시 심리 상태나 40살의 나이 차이로 A 씨를 믿고 의지한 점 등을 고려할 때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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