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경기 안산의 한 서점에서 ‘저 청소일 하는데요?’를 출간한 김예지 작가와 함께 북 토크를 하며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는 일러스트레이터라는 꿈을 이루기까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다른 일이 필요했고, 그래서 청소 일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청소 일을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출간했고, 현재는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꿈도 이뤄 가고 있으며 강연 활동, 새로운 책 준비 등도 하고 있다고 한다. 나 역시 도배 일을 하며 책을 출간한 뒤 강연이나 방송 등 활동을 병행하며 최근에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이런 우리를 ‘N잡러’라 부른다.
우리 주변에서는 과거보다 쉽게 N잡러를 찾아볼 수 있다. 반면 부모님 세대에는 N잡러는커녕 전혀 다른 직종으로의 이직조차 평범하게 보지 않았던 시선이 존재했던 것 같다. 아마도 직업이 그 사람의 정체성 그 자체였기 때문이 아닐까. 36년간 한 회사에 다녔던 아버지와 잘 다니던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전혀 다른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주변의 걱정을 샀던 어머니만 봐도 알 수 있다.
우리는 왜 N잡을 하게 되었을까? 일차적으로는 수입을 늘리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연봉이 더 높은 회사로 이직을 하는 방법도 있는데 굳이 왜 N잡일까. 그 이유는 현재의 직업이 평생 직업이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다른 길을 열어놓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더 이상 평생직장이라든가 평생 직업이라는 개념이 없다.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한다. 과거에는 안정성이 보장되었던 일이 미래에도 그럴 것이라는 확신이 없기에 우리는 변화에 빠르게 적응해야 한다. 그렇다고 세상이 변할 때마다 안정적인 수입이나 현재의 일을 아예 포기하고 새로운 일에 무작정 뛰어들기에는 위험 부담이 너무 크고 한번 실패를 하면 다시 회복하기 어려운 사회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수입이 보장되는 일을 하고 있더라도 미래 변화에 대비하여 여러 갈래의 길을 미리 마련해 놓는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여러 일을 하는 이유가 오로지 수입을 늘리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더 이상 직업이 나라는 사람을 대표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방법으로 내 이야기를 하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의 가장 주된 직업은 도배사이지만 사람들이 갖고 있는 도배사라는 획일화된 이미지에 나를 가두고 싶지는 않다. 수백, 수천 명의 도배사 중 한 명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는 여러 가지 중 하나가 도배사일 뿐이다. 또한 나는 내가 도배를 시작한 이유를 포함해 일을 하며 경험한 것들과 생각하고 느낀 것 등 좀 더 자세한 내 이야기가 하고 싶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도 만들고 책도 쓰고 최근에는 영상까지 제작해 게재하고 있다. 이처럼 내가 가진 직업이 곧 내가 아니기에, 여러 직업을 가지고 여러 창구를 통해 나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직업이나 직장에 몰두하지 못하고, 끈기와 열정이 없어서가 아니다. 우리의 불안한 마음, 그리고 우리를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동시에 나타난 것이 N잡이 아닐까?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