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혜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그제 밤 미국 뉴욕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발언과 관련해 “미국 의회나 조 바이든 대통령이 아닌 한국 국회에 대한 우려를 밝힌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이 글로벌펀드 재정공약회의에 참석해 1억 달러 기여를 공약했는데, 우리 국회에서 야당이 그 예산을 거부하면 어떡하느냐는 걱정이었다는 얘기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은 “거짓말로 민주당에 화살을 돌리려는 저급한 발상”이라며 윤 대통령의 사과를 촉구했다.
윤 대통령이 비하한 대상이 미국 의회인지 한국 국회인지를 놓고 논란은 계속되고 있지만, 그런 해명조차 윤 대통령 발언 15시간 만에야 나온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사이 국회에선 윤 대통령이 미국 의회를 ‘××’라고 폄훼하고 바이든 대통령까지 ‘×팔려 어떡하나’라고 조롱했다는 야당 공세로 종일 시끄러웠다. 외신에도 “한국 대통령이 미 의회를 ‘머저리’라고 모욕하다 들켰다” “바이든에 대한 윤 대통령의 불경한 반응이 마이크에 걸렸다” 같은 보도가 이어졌다.
뒤늦은 대통령실 해명은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기 어렵게 방치한 것이나 다름없다. 한국 대통령이 ‘동맹국을 뒤에서 비방하는 사람’으로 전락했는데도 대통령실은 “사적 발언일 뿐”이란 설명 외엔 입을 다물었다. 참모들이 파문의 확산 상황을 제대로 파악이나 했는지, 사태의 심각성을 윤 대통령에게 보고는 한 것인지 모든 게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대통령실 해명에선 야당을 ‘××’라고 칭한 데 대해 먼저 사과가 있어야 했지만 한마디 유감 표명조차 없었다. 오히려 김 수석은 야당을 향해 “짜깁기와 왜곡으로 발목을 꺾는다. 국익 자해행위다”라고 비판했다. 그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은 트위터에 국제사회에 대한 1억 달러 공약에 대해 ‘국회의 적극적인 협력을 기대한다’는 글을 올렸다. 거대야당의 협조 없이 1400억 원 승인은 불가능하다. 향후 야당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 불 보듯 뻔하다.
이번 파문의 근원은 윤 대통령의 거칠고 가벼운 언행에 있을 것이다. 국가를 대표하는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윤 대통령은 부인할 수 없는 실언에 대해선 먼저 고개를 숙여야 한다. 사과도 없이 야당 탓부터 하는 것은 이번 순방 외교를 둘러싼 여러 실책을 정치논쟁화해 모면해 보겠다는 얄팍한 정략으로 읽힐 뿐이다. 논란을 논란으로 덮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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