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 스크린이 불을 켜면/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사람들이 손짓을 해요/ 마치 꿈속 같아요 … 시간은 해일처럼 눈앞에 다가와/ 현실의 문을 자꾸 두드리는데/ 아! 어떡하죠/ 이제야 재미를 알아 버렸는데’(시 ‘작은 도서관’ 중)
충남 당진시 ‘원당꿈초롱 작은도서관’ 이용자 홍정임 씨(55)는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잠시 도서관이 문을 닫자 집에서 홀로 시를 썼다. 도서관에서 책에 푹 빠지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창작을 시작한 것. 그는 이 시 등 17편의 작품을 출품해 ‘당진 신진 문학인’에 선정됐고 65편의 시를 모아 지난해 11월 시집 ‘익숙함과의 이별 후’(책과나무)를 펴냈다.
5일 찾은 원당꿈초롱 작은도서관은 194㎡ 규모로 아담하지만 약 1만8000권의 책으로 가득한 ‘책의 천국’이었다. 이날 만난 홍 씨는 자신의 시집을 자랑스럽게 들어올리며 시에 담은 마음을 수줍게 고백했다.
“책에 푹 빠져 있는데 도서관 문을 닫을 시간이 된 거에요. 얼마나 아쉬워요. 책 속에서 만나야 할 사람과 가야할 곳이 아직 남았는데 떠나야하는 제 기분이 시에서 느껴지시나요. 호호.”
작은도서관은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대표 김수연 목사)이 KB국민은행 후원을 받아 전국 각지에 짓고 있다. 2008년 경기 부천시 도란도란도서관으로 시작한 작은도서관은 전국 곳곳을 채워 100개에 달한다. 2008년 5월 문을 연 원당꿈초롱 작은도서관은 7호 작은도서관이다.
홍 씨가 원당꿈초롱 작은도서관을 처음 찾은 건 2015년이다. 우연히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독서 토론 동아리 회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도서관을 찾았다. 자가용으로 30분이 걸리는 시립도서관과 달리 작은도서관은 걸어서 5분 거리에 있어 방문이 편했다. 처음 동아리 회원들과 서먹했지만 책이 매개체가 돼 친구도 여럿 생겼다. 지금은 독서 토론 동아리 회장을 할 정도로 열심히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7년 동안 1주일에 1번씩 책을 읽고 토론하면서 시야가 넓어졌어요. 같은 책을 읽어도 내 생각과 남의 생각이 다르다는걸 깨달았죠. 코로나19로 모임을 열지 못했을 땐 줌으로 토론했죠.”
그는 매일 오전 10시 작은도서관을 찾고, 1년에 50여 권의 책을 빌려 읽는다. 독서하다 뜻 깊은 문장을 필사하다 캘리그라피를 하게 됐고, 독서 후 마음속에 담긴 생각을 풀어내다 시를 쓰게 됐다.
“책은 의식을 확장하고, 영혼을 성장시키는 최고의 도구에요. 책을 읽은 덕에 사유하는 힘이 생겼죠. 또 글쓰기를 하면서 무심코 지나가던 일상을 자세히 관찰하게 됐습니다. 남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고 공감을 하게 됐고요. 난생 처음 시를 쓰게 된 뒤 일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뀐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2010)의 주인공 미자(윤정희)처럼 인생이 달라졌어요.”
그는 최근 수필 창작 동아리에 가입해 에세이를 쓰고 있다. 올해 3월부터는 1주일에 2번씩 초등학생들에게 시를 가르치고 있다. 그에게 작은도서관의 의미를 물으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일본 시인 중에 시바타 도요(1911~2013)라는 분이 있어요. 평범한 할머니였지만 92세에 시 쓰기를 시작하고 98세에 첫 시집 ‘약해지지 마’(2010·지식여행)를 펴냈는데 일본에서 150만 부가 팔려 화제가 됐죠. 저 역시 나이가 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만 했는데 작은도서관을 만난 뒤 하고 싶은 일이 많아졌습니다. 작은도서관은 제 세상을 확장시켰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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