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틀·조성진, 환상 호흡으로 ‘찢었다’…런던심포니 콘서트 가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14일 10시 52분


마곡 LG아트센터 런던심포니 콘서트
화려한 음색과 밸런스로 관객 매혹

LG아트센터 서울의 탄생일에 초대된 지휘자 사이먼 래틀과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LSO),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앙코르를 포함해 모두 여섯 곡으로 정교하게 차린 코스요리를 내놓았다. 구성의 호화로움 뿐 아니라 장인적인 맛내기까지 경탄을 자아낸 코스였다.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에 새로 들어선 LG아트센터 서울에서는 13일 저녁 개관 기념 공연인 래틀과 LSO의 콘서트가 열렸다. 프로그램에 실린 네 곡은 19세기 후반 관현악 색상의 팔레트를 호화롭게 변혁시킨 바그너와 그 영향권에 있는 20세기 초 작곡가들의 곡으로 채웠다. 세계 정상급 악단 중에서도 특유한 개성을 강조하기 보다는 영화음악을 포함한 다양한 장르에서 정교한 기능성으로 인정받아온 LSO에 맞춤한 선곡이었다.

첫 곡인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전주곡과 사랑의 죽음’에선 래틀과 LSO가 가꿔온 유기적 호흡이 돋보였다. 탐미적인 악구들이 부풀고 가라앉는 동안 다양한 음량에서 악기군(群)들의 밸런스가 한결같은 색상을 유지했다.

LG아트센터 제공 ⓒ김윤희
LG아트센터 제공 ⓒ김윤희

조성진이 협연한 라흐마니노프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에서 조성진은 각 변주에 담긴 낱낱 음표들의 세공을 뛰어넘어 각 변주들의 대비까지 넉넉히 신경 쓰는 큰 그림을 펼쳐냈다. 타악 연주자 출신으로 피아노적 타격감을 잘 아는 래틀과의 찰떡 호흡을 지켜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였다. 조성진은 쇼팽 연습곡 작품 10-12 ‘혁명’의 불꽃 타건으로 청중의 열렬한 환호에 보답했다.

콘서트 후반부 시벨리우스 교향곡 7번에서 악단의 색상은 서늘하면서 처연한 빛으로 바뀌었다. 지휘자의 주관이 억제된 모범적인 해석이었지만 현에서 언뜻 언뜻 비쳐 나오는 신비한 색상의 스펙트럼과 전체 합주의 노호(怒號)에서 각 파트의 움직임이 뚜렷이 들려오는 데서 이 곡이 래틀의 애착 레퍼토리 앞 순서에 놓이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메인 프로그램 끝 곡은 탐미와 신경증적 광란이 얽힌 라벨의 괴작 ‘라 발스’였다. 이 곡과 이후 앙코르로 연주한 스트라빈스키 ‘불새’ 피날레에서 래틀은 특유의 운동신경을 입증했다. 반동과 리듬감이 찰진 식감처럼 귀에 본능적인 쾌락을 선사했다. 루바토(마디 안에서 박자의 길이를 자의로 조절하는 것)는 통달한 독주자가 악기를 혼자 연주하듯 호흡이 척척 맞았다. 래틀은 열연을 펼친 단원에게 직접 다가가 악수를 청하며 일으켜 세웠다. 몸을 낮춘 그의 매너에 관객은 더 큰 환호로 응답했다.

LG아트센터 제공 ⓒ김윤희
LG아트센터 제공 ⓒ김윤희

LG아트센터의 음향은 성격이 분명했다. 벽체의 컨트롤을 통해 잔향을 조절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날 공연에선 반향음이 적고 무대에서 바로 전달되는 직접음이 강했다. 공간의 크기에 비해 음량이 크지 않은 편이었지만 여러 음높이들 사이의 밸런스는 단정한 편이었다. 믹싱 콘솔로 조정해 편집한 음반을 연상시켰다. 연주자가 드러내는 낱낱의 미세한 결까지 잘 들려 합주력에 자신 없는 악단이라면 애를 먹을 듯했다. 실제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주곡에서는 잔향이 큰 홀이라면 묻힐 수도 있었던 클라리넷의 실수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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