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들어 외국인 투자자들이 삼성전자 주식을 적극적으로 사들이고 있다. 10월 1~25일 외국인 투자자가 순매수한 삼성전자 주식은 1조1155억 원어치다(표 참조). 국내 종목 중 가장 큰 규모로, 외국인 투자자가 두 번째로 많이 사들인 SK하이닉스(7925억 원)와 격차도 크다. 지난해 외국인이 삼성전자 주식 17조9784억 원어치를 팔고, 올해 9월 말까지 10조2112억 원을 순매도한 흐름이 바뀐 것이다. 반면 국내 개인투자자는 이달 들어 삼성전자 주식 7972억 원어치를 순매도했다. 9월 1조9410억 원어치를 사들여 ‘물타기’에 나섰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자 ‘손절’에 나선 것이다.
‘물타기’에 지쳐 순매도 나선 개인들
외국인 투자자들의 순매수에도 삼성전자 실적은 글로벌 경기침체 영향 탓에 어둡다. 삼성전자는 10월 27일 3분기 영업이익이 10조8520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때보다 31.39% 감소했다고 공시했다. 2019년 4분기 이후 약 3년 만에 전년 동기 대비 역성장한 것이다. 반면 매출은 76조7817억 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3.79% 늘어 3분기 기준 최대치를 기록했다. 그간 실적을 떠받치던 메모리 반도체 판매가 부진했고, 코로나19 특수가 사라져 가전제품 등 수요가 위축된 영향으로 분석된다.
외국인 투자자가 삼성전자 주식을 다시 대거 매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관건은 세계시장에서 갈수록 중요도가 높아지는 ‘산업의 쌀’ 반도체 업황이다. 삼성전자 단기 실적은 그리 좋지 않지만 주가에는 이미 업황이 선반영돼 ‘저가 매력’이 소구력을 발휘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내년 1분기까진 반도체 기업 실적이 좋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처럼 실적이 안 좋을 때 주가 하단이 어디까지 열릴지 고민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밸류에이션 측면에서 삼성전자가 매력적인 구간에 이르렀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세계 메모리 반도체 산업이 2023년 하반기 즈음 회복될 가능성이 있다”며 “최근 삼성전자가 3㎚(나노미터: 10억 분의 1m) 공정 양산에 성공해 다른 반도체업체 고객을 유치하는 등 기술 위상도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투자자들이 ‘업황이 나쁠 때 주식을 사 회복될 때 팔자’는 학습 효과에 따라 매수에 나섰다는 것이다.
반도체 패권 경쟁으로 이어지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도 삼성전자를 비롯한 한국 기업엔 위기이자 기회다. 미국은 중국의 반도체산업 성장을 견제하기 위해 첨단 반도체 장비의 대중(對中) 수출을 제한하는 등 조치를 취하고 있다. 당장 미국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 업체가 운영하는 중국 내 생산 공장에 대해선 반도체 장비 수출 제한을 1년 유예하기로 했으나 그 후 전망은 불투명하다.
“中 경제적 고립, 한국엔 천운”
반면 경제 블록화에 따라 중국 투자를 꺼리는 글로벌 자본이 그 대안으로 한국을 주목하는 점은 호재다.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부각되는 점도 반도체업계 경쟁자인 한국의 몸값을 올리고 있다. 윤지호 센터장은 “최근 글로벌 자금 흐름을 보면 포트폴리오에서 중국 비중을 줄이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분석했다. 윤 센터장은 “결국 한국, 일본, 호주 등이 대체 투자처로 주목받는데, 한국에선 반도체 대표주자인 삼성전자가 소구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노근창 센터장은 최근 외국인의 삼성전자 주식 매수 흐름에 대해 “대만의 지정학적 위험으로 TSMC 대신 삼성전자에 투자하는 이가 늘어나는 등 반사이익도 일정 부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한 투자 전문가는 “최근 중국이 경제적 고립을 자초한 것이 한국엔 천운”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전망했다.
“디스플레이, 가전, 2차전지 등 여러 산업 분야에서 중국이 한국을 빠르게 추격했다. 반도체 분야에서도 한국이 중국에 밀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던 터였다. 미국이 세계 여러 나라의 중국 투자를 막아서면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일어날 수 있지만, 한국은 상품을 팔 수 있는 여지가 더 생기는 것이다. 삼성전자도 이재용 회장 취임을 기점으로 미국 내 반도체 설비투자를 본격적으로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일각에선 최근 외국인 투자가 주가 반등 신호가 아니라 ‘숏커버링’(주식시장에서 빌려서 팔았던 주식을 되갚고자 다시 사는 환매수)에 따른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투자자들이 수익 실현 차원에서 삼성전자 주식을 매수해 공매도를 위해 빌린 주식을 상환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10월 18일 기준 삼성전자 공매도 잔고는 6290억 원으로 9월 말보다 500억 원 가까이 늘었다. 이에 대해 “숏커버링 흐름도 있지만 최근 주식시장 흐름을 숏커버링 단일 변수로만 볼 순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결국 삼성전자를 떠난 국내 ‘동학개미’의 관심은 주식을 다시 살지, 또 매수한다면 적기는 언제일지에 쏠린다. 전문가들은 “주식시장 상황을 예단하긴 어렵다”면서도 “지금부터 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연세대에서 반도체 소재로 박사학위를 받은 ‘현명한 반도체 투자’의 저자 우황제 박사는 현재 주식시장 상황을 두고 “(삼성전자 주식을) 사 모으기 좋은 시기”라면서 “1~2개월만 보면 팔아도 좋지만, 2~3년 보유할 생각이라면 상승 사이클이 언제 올지 정확히 예측하긴 어려워도 투자를 고려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금 업황은 하락 구간이고 주가는 이를 선반영해 바닥을 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그래프 참조). 우 박사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3대 업체(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테크놀로지)가 과점하는 구조로, 이들 업체가 가격을 크게 낮추지 않고 감산하는 식으로 공급량을 조절한다”며 “적자를 안 보는 선에서 가격을 낮추기 때문에 실적 방어에 유리하다”고 덧붙였다.
“업황 하락, 주가에 선반영”
반면 시장 상황을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노근창 센터장은 “삼성전자 실적이 4분기에 한 번 더 레벨 다운될 가능성이 있다”며 “내년 하반기 업황 개선 가능성도 실제 닥쳐봐야 알 수 있기 때문에 당장 브이(V) 자 반등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주식을 지금보다 더 좋은 가격에 살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윤지호 센터장은 최근 국내 주식시장 상황에 대해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코스피 2000대가 깨지고 금융위기가 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있었는데, 글로벌 자본 입장에선 한국이 어느 정도 매력적으로 보이는 상황”이라면서 삼성전자 주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전망했다. “투자엔 사이클이란 게 있다. 특히 반도체업계는 구조적 성장 산업이 아니라 철저히 글로벌 유동성과 연동되는 사이클 산업이다. 투자자들이 ‘10만 전자’를 외칠 때처럼 모두가 자신감에 차 있을 때가 위험하다. 삼성전자 주가가 5만 원대에 접어드니 이제 반도체산업이 다 망해가는 것처럼 낙담하는 분위기가 팽배한데, 역설적으로 이럴 때가 투자 기회일 수 있다. 최근 국내 투자자 중 삼성전자 주식을 9만 원대에 ‘상투’ 잡고 매수한 이들이 던지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장기적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생존 가능한 한국 기업 중 하나가 삼성전자다. 이미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면 당분간 버티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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