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중개사법 개정안에… “불법중개 차단” vs “혁신 죽이기”[인사이드&인사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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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개사협회 권한 확대 공방

이축복 산업2부 기자
이축복 산업2부 기자
국회에 발의된 ‘공인중개사법 개정안’으로 부동산 중개업계에 파장이 커지고 있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에 공인중개사가 의무 가입하도록 하는 등 협회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법안에 프롭테크(정보기술 등을 이용한 부동산 서비스) 기업들이 “혁신 죽이기”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기존 공인중개사들은 “불법 중개를 줄이기 위한 장치”라고 맞서고 있다.

과거 택시 업계와 플랫폼 업체 간 갈등처럼 이번에도 구(舊)산업과 신(新)산업 간 갈등이 격화되며 공인중개사법 개정안이 혁신을 가로막는 ‘제2의 타다 금지법’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소비자들은 중개 수수료 대비 서비스 만족도가 낮은 편이어서 영세하고 낙후된 중개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다양한 서비스로 소비자 선택의 폭을 넓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공인중개사법 개정안, 협회에 중개사 단속 권한까지


이번에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이 지난달 4일 발의한 개정안은 임의 설립 단체인 한국공인중개사협회(중개사협회)를 법정 단체화하고, 협회의 회원 관리, 지도, 감독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물론이고 정의당, 여당인 국민의힘 일부 의원까지 공동 발의했다. 그만큼 통과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개정안은 공인중개사가 개업 시 반드시 중개사협회 회원으로 가입해야 한다. 회원이 공인중개사법을 위반하면 협회가 시도지사 및 등록관청에 행정처분을 요청할 수 있고, 거래질서 교란 행위 단속 등의 업무를 정부로부터 위탁받아 수행할 수 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중개사협회 회원 수는 약 11만 명에서 최대 50만 명(지난해 말 기준 공인중개사 자격 보유자 수는 49만3503명)으로 늘 것으로 추산된다. 이 경우 중개사협회는 신규 가입비(50만 원)로만 1950억 원을 받는다. 연회비(7만2000원) 수입은 79억2000만 원에서 360억 원으로 4배 이상으로 증가한다.

중개사협회 측은 “늘어난 재원을 전세 사기나 기획부동산 등 불법 중개 방지에 쓰고, 공인중개사의 손해배상액 한도도 기존 1억 원 한도에서 최대 10억 원으로 늘려 불법 중개 피해 소비자에 대한 보상을 늘릴 수 있다”고 한다.

○ 프롭테크 업계 “반값 수수료 등 중개 혁신 막힐 것”




프롭테크 업계는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한국프롭테크포럼이 지난달 25일 긴급 간담회를 열고 개정안 반대 논리를 펼쳤다. 협회에 공인중개사를 의무 가입시키고 단속권까지 부여하면 신산업 성장 가능성을 막는 족쇄가 될 거라는 취지다.

지금도 신규 서비스에 걸림돌이 많은데 협회 권한이 더 커지면 혁신 서비스가 원천 봉쇄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실제 프롭테크 업체들은 중개 수수료가 적지 않은데도 계약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기존 시장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직방’ 등은 온라인 중개 플랫폼 등을 통해 젊은 층을 위주로 중개 서비스의 선택지를 넓혀 왔다. 하지만 기존 공인중개사 이익을 대변하는 중개사협회가 부동산 거래질서 교란 행위를 판단하면 ‘반값 수수료’와 같은 신규 서비스를 선보일 기회가 차단된다는 것이다.

최근 프롭테크 업계는 전자계약 등을 활용한 비대면 부동산 직거래에 법률 자문과 권리분석 등을 더하고, 중개수수료는 낮추는 서비스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서비스 역시 규제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다. 공인중개사법에 따르면 공인중개사가 아닌 사람은 공인중개사 또는 이와 유사한 명칭을 사용할 수 없다. 프롭테크 업계 관계자는 “지역 공인중개사들이 소속 지역구 의원을 상대로 꾸준히 법 개정을 요청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충분한 검토 없이 법안 처리에만 속도를 낼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 해묵은 갈등… “영세하고 낙후된 서비스 개선해야”



이 같은 중개사협회와 프롭테크 업계 간 갈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협회 측은 그동안 다양한 형태의 신규 부동산 중개 서비스를 놓고 고발 등 법적 다툼을 벌여 왔다. 2019년에는 ‘반값 수수료’를 표방한 ‘다윈중개’를 공인중개사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세 차례 고발했지만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협회는 2018년에도 ‘무료 중개’를 내건 프롭테크 업체인 ‘집토스’가 중개사법을 위반했다며 고소했지만 검찰은 무혐의로 처분했다. 지난해 6월 직방이 간접 중개서비스인 ‘온택트파트너스’를 선보였을 때도 협회는 “골목 상권 침해”라고 반발하며 대립각을 세웠다.

중개사협회와 프롭테크 업계 간의 해묵은 갈등 배경에는 개인사업자가 압도적으로 많고 서비스가 제한적인 영향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토교통부 개업공인중개사 현황에 따르면 국내 중개서비스에서 개인 사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98%에 이른다. 공인중개사 대부분이 포털사이트에 매물을 등록하는 ‘공동 중개’ 형태로 운영한다. 중개 서비스도 대상물 확인 설명, 거래계약서 작성 등으로 제한적이다. 고도화된 신규 서비스를 내놓기에는 한계가 있는 환경이다.

반면 해외에서는 중개업을 금융, 보험 알선 등 부동산 거래 전반을 다루는 종합 서비스로 본다. 미국은 부동산 중개법인(기업) 한 곳이 매물을 전담하는 ‘전속 계약’ 위주다. 중개법인은 임대차, 법무, 세무 서비스 등을 수행하고 매물에 문제가 생기면 책임까지 진다. 또 개업 공인중개사 외 변호사, 감정평가사 등이 중개 서비스에 참여해 전문성을 높인다.

한국의 경우 요율이 최대 1.8%(쌍방 기준)이지만 미국은 3.5∼6.0% 등 요율이 더 높고 폭도 넓다. 외국의 경우 중개보수 외 등기보호, 에스크로(결제 대금 예치) 등에도 수수료를 지불한다. 더 고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받아 가는 셈이다.

국토부도 중개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올 9월 제도 개선 용역을 발주했다. 주택법, 도시개발법 등 부동산 공법, 직업윤리, 부동산 사고 예방 중심으로만 교육이 이뤄져 소비자 특화 서비스 제공이나 프롭테크 등 중개 시장 변화 대처에 한계가 있다고 본 것이다. 토지, 건축 등 전문 분야별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교육 과정을 마련하는 한편 자격갱신제, 중개사고 삼진아웃제, 미종사자 자격 박탈 등 공인중개사 자격 관리 제도를 내놓을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소비자 선택지를 넓히기 위해서라도 프롭테크 업체들이 중개 시장에 진입할 길을 열어 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학과 교수는 “선진국에서는 중개법인 대다수가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하는 정보 제공에 초점을 맞춰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며 “기존 중개업과 프롭테크가 협력 관계를 맺고 시장 규모를 키워 상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공인중개사법 개정안#부동산#중개사협회 권한 확대 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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