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코인’(한국산 가상자산)을 국내 대형 거래소에 상장시킨 뒤 해당 코인을 직접 사고팔며 시세를 조작한 가상자산 발행사 2곳이 금융당국에 처음 적발됐다. 상장 이후 1년간 이뤄진 코인 거래의 최대 80%가 발행사가 직접 사고판 ‘자전거래’였다.
지난해 ‘코인 광풍’ 속에서 상당수 투자자들이 이 같은 김치코인의 시세 조종으로 피해를 입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치코인의 불공정거래를 감시하거나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이 없어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발행사가 75만 건 사고팔아
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은 9월 말 가상자산 거래소를 대상으로 ‘가상자산 자전거래 등에 대한 유의 및 협조 요청’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보냈다. FIU는 공문을 통해 “가상자산 사업자에 대한 검사 과정에서 일부 사업자(코인 발행사)의 자전거래 의심 행위를 확인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또 “발행사가 법인 고객으로 거래소에 가입해 여러 개의 계정을 발급받은 뒤 자신이 발행한 가상자산을 자전거래해 시세를 조종했다”고 지적했다.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FIU가 자전거래를 적발한 코인 발행사는 2곳으로, 복수의 법인 명의 계좌를 만들어 매수와 매도를 반복하는 수법으로 시세를 조종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가운데 ‘데이터 탈중앙화’를 내세우며 발행된 A코인은 지난해 3월 상장 이후 1년간 94만 건이 거래됐다. 하지만 이 중 75만 건이 발행사의 법인 계좌를 통한 자전거래였다. 1500원으로 출발한 A코인은 상장 한 달 만에 400% 가까이 폭등하며 투자자를 끌어 모았지만 1일 현재 80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B코인도 지난해 3월 상장 이후 1년간 거래된 100만 건 가운데 64만 건이 자전거래였다. 이 코인 역시 자전거래가 집중됐던 상장 초반에 10원에서 50원까지 치솟은 뒤 현재 6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 “김치코인, 시세 조종 놀이터”
6월 말 현재 국내에서 거래되는 전체 가상자산 638개 가운데 61%(391개)가 국내에서 발행된 김치코인이다. 김치코인은 해외 거래소에서 거래되지 않아 글로벌 시세가 없기 때문에 자전거래나 시세 조종 같은 불공정거래가 상대적으로 쉬운 것으로 평가된다.
전문가들은 이번에 적발된 자전거래가 국내 가상자산 불공정거래의 극히 일부에 불과할 것으로 보고 있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다수의 김치코인에서 상장 초반 시세가 급등하는 ‘상장빔’이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이번에 적발된 자전거래는 빙산의 일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이번에 자전거래가 이뤄진 거래소는 은행에서 실명 입출금 계좌를 발급받아 금융당국에 신고한 5대 거래소 중 한 곳이었다. 비교적 안전하다고 평가받는 대형 거래소 역시 발행사의 자전거래를 감시할 수 있는 관리체계를 갖추지 못한 것이 드러난 셈이다. 또 FIU의 검사 범위는 현재 특정금융정보법상 ‘자금세탁 방지’에 한정돼 있어 이번 적발도 자금세탁 방지를 위한 ‘본인확인절차 의무’를 확인하던 중 우연히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코인시장은 자본시장과 달리 시세 조종 등 불공정거래를 감독하거나 규제할 수단이 전혀 없다”며 “투자자 보호를 중심으로 가상자산 관련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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