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이태원 핼러윈 참사 당시 경찰이 112 신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면서 희생자 가족 등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법조계에선 당시 정부의 안전조치 부족 및 경찰의 부실 대응이 참사와 인과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날 경우 배상도 가능할 것이란 지적이 적지 않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원은 경찰이 범죄나 사고예방을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피해가 발생했다고 판단된 경우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해 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2년 발생한 ‘오원춘 사건’이다. 당시 경찰은 피해 여성 A 씨로부터 112신고를 받고도 초동 대처에 실패한 뒤 이를 축소 발표했다.
A 씨 유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3억60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파기환송심 끝에 9962만 원의 배상이 결정됐다. 당시 대법원은 “경찰이 신고내용의 심각성을 제대로 전달받았다면 A 씨를 생존 상태로 구출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경찰관직무집행법상 경찰의 직무위반 행위와 A 씨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2012년 서진환이 주부를 성폭행하려다 살해한 ‘중곡동 살인사건’ 피해자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도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당초 1, 2심은 “국가 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단했으나 대법원이 국가 배상 책임을 일부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로 파기 환송해 현재 서울고법에서 파기환송심이 진행 중이다. 대법원은 최초 범행 장소 부근에 전자장치 부착자가 있는지 경찰이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점, 보호관찰관이 주기적인 감독을 실시하지 않은 점 등을 정부의 과실로 판단했다.
범죄 사건 뿐 아니라 사고에서도 국가의 배상 책임이 인정된 사례가 있다. 대법원은 1993년 12월 전북 김제시에서 도로 상에 방치된 트렉터를 피하려다 사고로 다친 운전자에게 국가가 1280여 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 트렉터는 전날 농민 시위에 동원됐던 것이었다. 대법원은 “경찰이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 현저하게 불합리하다고 인정된 경우, 이는 직무상의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며 경찰의 과실과 사고와의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현재 드러난 정황으로 볼 때 경찰에 부실하게 대응한 책임이 있다고 볼 여지가 크다”면서 “실제로 정부가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 사고 발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피해 발생에 영향을 준 다른 요인은 없는지 등을 고려해 배상 여부와 규모가 결정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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