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하락세에 전국 곳곳 ‘역전 단지’
대구 수성구 84m²도 5100만원 차이
서울 10채중 4채 작년보다 집값 하락
“공시가 낮춰달라” 이의 잇따를듯
서울 송파구 잠실동 잠실엘스 30평대(전용 84m²) 아파트는 지난달 19억5000만 원에 팔렸다. 이 단지 내 같은 면적의 공시가가 19억6500만 원까지 책정된 점을 감안하면 공시가보다 1500만 원 낮은 금액에 거래됐다. 통상 공시가는 기준시점인 1월 시세의 70∼80% 선에서 정해지지만, 거래 절벽이 극심한 데다 집값 하락세가 이어지자 공시가와 실거래가가 역전된 것이다.
인근 단지인 송파구 잠실동 레이크팰리스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지난달 말 전용 84m²가 17억9500만 원에 팔렸는데, 이는 올해 공시가인 18억2600만 원보다 3100만 원 낮다. 강동구 상일동 고덕아르테온은 전용 84m² 공시가가 12억9100만 원인데 지난달 중순 계약된 실거래 가격은 13억2500만 원까지 내려왔다.
부동산 집값 하락세가 뚜렷해지면서 최근 실거래가가 올해 1월 매겨진 공시가에 육박하거나 이보다 낮은 단지가 속출하고 있다. 최근 2년간 세금 부과의 기준이 되는 공시가를 시세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현실화 정책’을 펼쳐 공시가가 가파르게 오른 점도 이 같은 역전 현상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문재인 정부가 정한 공시가 현실화율 목표치를 당장 낮추진 않지만, 시세의 90%로 정한 목표치는 과도하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난해 아파트값이 급등했다가 올 들어 하락세가 확산되는 인천에서는 공시가 역전 현상이 잇따르고 있다. 인천 연수구 송도더샵센트럴시티 전용 84m²는 지난달 6억4000만 원에 거래됐다. 이 아파트의 올해 공시가(7억1200만 원)보다 낮아진 것. 인천 연수구 e편한세상송도 전용 70m²는 지난달 초 공시가(5억1900만 원)보다 900만 원 낮은 5억1000만 원에 계약서를 썼다.
대구에서도 공시가가 실거래가를 뛰어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대구 수성구 e편한세상범어 전용 84m²는 지난달 실거래가가 5억9700만 원으로 하락해 올해 공시가(6억4800만 원)보다 5100만 원 낮았다.
최근 집값은 서울, 지방 가릴 것 없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1∼8월 누적 실거래가 변동률은 전국(―5.16%), 서울(―6.63%), 수도권(―7.65%) 등 일제히 하락했다.
서울에서는 아파트 10채 중 4채꼴로 평균 매매 가격이 지난해보다 떨어졌다. 부동산 정보업체인 부동산R114가 국토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서 작년과 올해 각각 계약된 서울 지역 같은 단지, 같은 전용면적 아파트의 평균 매매 거래가를 비교한 결과 전체 거래 4086건 중 1492건(36.5%)의 평균 매매가가 작년보다 낮았다. 자치구별로는 성북구(55.9%), 서대문구(51.9%), 은평구(51.3%) 순으로 하락 거래 비중이 높았다.
경기 침체 우려에 금리 인상 등으로 집값 하락이 이어지자 국책연구원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도 공시가격 인상 계획 수립을 1년 유예하자는 방안을 제시하고 나섰다. 공시가는 재산세, 건강보험료, 기초 연금 등 67개 행정제도의 기준으로 활용되는 만큼 섣불리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지 말자는 취지다. 연구원은 4일 열린 공청회에서 2년간 공시가격 급등으로 이미 조세 부담이 커진 만큼 내년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올해 수준으로 동결하는 대안도 냈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집값은 하락했는데 세 부담은 여전히 높다면 조세저항이 일어날 수 있다”며 “내년도 공시가 발표 이후 이를 하향해 달라는 이의 신청이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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