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이 한국에 온다고 해서 며칠 전부터 산업계는 물론 주식시장까지 들썩거렸죠.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미스터 에브리씽(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 마치 산타처럼 한국에 큰 선물을 던져주러 오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는데요.
그 관련 뉴스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네옴시티(NEOM CITY)’입니다. 빈 살만 왕세자가 주도하는 2030년을 목표로 한 대규모 신도시 건설사업인데요. 그 스케일이 어마어마하다 못해 다소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이죠. 국내 기업들에 ‘제2의 중동 붐’ 기대감을 부풀게 하는 네옴시티. 과연 그 정체가 무엇인지 딥하게 들여다 보겠습니다.
그 스케일 못지 않게 놀라운 건 ‘탄소제로’ 도시로 만든다는 구상입니다. 태양광∙풍력∙그린수소(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해 만든 수소) 같은 신재생에너지로만 전기를 생산할 뿐 아니라, 주거지구엔 아예 자동차가 다니지 않을 거라고 하죠. ‘더 이상 석유만 파서 먹고 살진않겠다’는 빈 살만 왕세자의 의지가 집약된 프로젝트인데요. 2017년에 발표한 총사업비는 5000억 달러(약 650조원). 현재 언론이 예상하는 사업비는 1조 달러에 달합니다. 1차 완공은 2025년, 최종 완공은 2030년을 목표로 하죠.
돈 많은 사우디아라비아가 역대급 초대형 신도시를 건설한다니, 엄청난 기회다 싶은가요? ‘사막의 기적’이라는 두바이 사례도 있는데, 네옴시티도 오일머니를 쏟아부으면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겠냐고요?
그런데 지난 7월 네옴시티 중에서도 핵심인 ‘더 라인(The Line)’ 조감도가 공개된 뒤, 전 세계가 술렁거립니다. 대체로 ‘뭐? 이게 말이 돼?’라며 눈을 의심한다는 반응이었죠.
상식 파괴 공상과학적 디자인
홍해 해안에서 사막을 거쳐 산을 향해 무려 170㎞에 걸쳐 높이 500m짜리 고층건물 두개가 200m의 폭으로 평행하게 일직선으로 뻗어갑니다. 높이는 롯데월드타워(550m)에 맞먹고, 길이는 서울에서 강릉까지 거리와 같죠. 이곳이 바로 900만명이 살게 될 네옴시티의 주거지구, 더 라인(The Line)입니다.
도시가 일직선인 데다 수직이라고? 정말 낯설기 짝이 없는 디자인인데요. 빈 살만 왕세자는 수직도시 설계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 디자인은 전통적인 ‘수평 도시’에 도전하고 자연보호와 인간의 거주성 향상을 위한 모델을 만들 겁니다.” 수평으로 펼치지 않고 수직으로 도시를 쌓아올리면 개발하는 면적을 줄일 수 있으니 주변 자연환경을 보존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더 라인 설계를 보면 땅 위에 차도가 없습니다. 자동차가 아예 못 다니는데요(‘교통사고와 오염이 없는 도시’라 홍보 중). 대신 지하에 터널을 뚫어 고속철도가 최대 20분 만에 도시를 관통한다고 합니다(170㎞를 20분 만에 돌파하면 시속 510㎞라는 얘기인 건가). 그래서 일단 지하 터널부터 파고, 이후 그 위에 도시를 건설하게 됩니다. 현대건설과 삼성물산이 이미 이 터널 공사에 들어갔죠.
그럼 출퇴근 할 때마다 고속철도를 타느냐고요? 아니요. 더 라인은 구역별로 사무실∙상점∙병원∙학교∙영화관∙경찰서 등을 적절하게 배치해서 ‘모든 게 걸어서 5분 거리 안에 있게’ 만든다는 계획입니다. 이땐 위아래만이 아니라 수평으로 이동하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 되는데요. 예를 들어 50층에 사는 사람이라면 축구 경기장에 가기 위해 굳이 1층까지 내려올 필요 없이, 40층 또는 60층쯤에서 수평 이동 엘리베이터(또는 경전철)를 타고 갈 수 있다는군요.
사막으로 향한 양쪽의 벽면은 온통 거울로 채워집니다. 거울벽은 실용성(햇빛을 반사해 뜨거워 지는 걸 막아줌)이 물론 있지만, 디자인적인 의미도 큽니다. 네옴의 자일스 펜들턴 전무는 이렇게 말하죠. “거울이 주변환경을 반사하기 때문에 ‘더 라인’은 자연과 완전히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느낌이 어떠신가요. 무슨 공상과학 영화 속 도시 같다는 반응이 많은데요.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부터 영화 ‘블랙팬서’ 속 미래왕국 와칸다까지, 다양한 작품들이 거론됩니다. 실제 더 라인 개발 과정엔 건축가뿐 아니라 미래학자, 할리우드 프로덕션 디자이너까지 고용됐죠. SF 영화 속 미학을 연구하는 컨설턴트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애초엔 일직선으로 길긴 하지만 저층으로 구상됐던 더 라인 디자인이 500m라는 초고층의 거울 달린 장벽으로 완전히 바뀐 거고요.
멋지다는 반응도 있겠지만 시니컬한 전문가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건축가 엘리야후 켈러가 후자에 해당합니다. “사우디는 ‘블레이드 러너’ 같은 일종의 공상과학 소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미래가 어떤 모습인지에 대한 대중적인 인식에 맞는 이미지이죠. 반짝거리고, 빛나는 네온사인으로 가득 찬. 그런데 왜 사막에 이걸 새로 만들어야 하죠? 기후 위기에 대처하려면 새로운 도시를 만드는 게 아니라 기존 도시를 개선해야 하지 않나요?”
너무 야심찬데, 이거 가능해?
그렇습니다. 네옴시티 계획이 너무 야심차다 못해 비현실적이란 회의론도 많은데요. 크게 두가지 측면에서 그렇습니다. 하나는 ‘이거 정말 사람이 살 만한 도시가 될 수 있어?’, 다른 하나는 ‘탄소제로, 그거 정말 할 수 있는 거야?’
①네옴시티는 살 만한 도시가 될까
빈 살만 왕세자는 네옴시티가 2026년까지 45만명, 2030년 150만~200만명, 2045년엔 900만명을 수용하는 도시가 될 거라고 밝힙니다. “네옴시티를 아부다비보다 큰 도시로 만들 것”이라는 포부도 밝혔죠.
하지만 네옴시티가 들어설 타북주는 개발되지 않은 낙후 지역입니다. 이제 막 도시 건설을 위한 왕복 4차선 도로만 들어선 허허벌판인데요.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약 1000㎞나 떨어져 있죠. 다른 주요 도시들과도 수백㎞씩 떨어져 있고요.
이렇게 외지고 동떨어져 있는 네옴시티로 이주하려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냐는 의문이 드는데요. 동시에 사람들이 이주해서 산다고 해도 큰 걱정거리가 있습니다. 과연 식량을 어디서 어떻게 공급하느냐는 거죠.
현재 나온 계획으론 네옴시티는 식량을 자급자족하는 도시가 될 거라고 합니다. 어떻게? ‘혁명적인 수직농업과 온실을 이용’한다고 밝히는데요. 채소라면 실내 온실을 이용해 키워낼 수 있을 듯합니다. 그런데 고기는 어떻게 공급하겠다는 걸까요. 가축도 수직 농장에서 키우려나요. 궁금증이 남습니다.
막대한 건설비용을 어떻게 대느냐도 문제인데요. 돈 많은 사우디아라비아이긴 하지만 최소 5000억 달러(어쩌면 1조 달러 이상)라는 비용은 만만찮습니다. 일단 빈 살만 왕세자는 1단계(약 3200억 달러) 비용의 절반은 사우디 공공투자기금으로 충당한다고 했는데요. 나머지 돈은 어디선가 끌어오겠다는 뜻이죠. 건설자금 마련을 위해 사우디가 채권을 발행하거나, 네옴시티 프로젝트를 증권거래소에 상장하게 될 거란 관측이 나옵니다.
②탄소제로라고는 하는데…
네옴시티가 탄소제로를 추구하는 프로젝트라고 말씀드렸죠. 화석연료 없이 태양광∙풍력 같은 신재생에너지만 100% 사용할 거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는데요.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사우디는 물이 매우 부족하기 때문에 네옴시티엔 바닷물의 소금기를 없애주는 담수화플랜트가 반드시 필요한데요. 이 해수담수화 플랜트는 일반적으로 화석연료가 사용됩니다. 그리고 보통 엄청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죠.
네옴시티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담수화플랜트에 화석연료가 아닌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오, 좋은 아이디어라고요? 그런데 BBC 보도에 따르면 담수화 플랜트에서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게 아직까지 성공한 적은 없습니다. 즉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아직 알 수 없다는 거죠.
기본적으로 이런 대형 건설 프로젝트 자체가 친환경과는 거리가 멀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네옴시티 건설 단계에서 발생하는 탄소발자국은 영국이 1년 동안 내뿜는 것의 4배가 될 겁니다. (사우디에선) 아무도 이것을 설명하지 않는군요.”(미국 시더빌대학 지질학과 톰 라이스 교수)
우주인터넷으로 에어택시 타는 도시
회의론이 적지 않지만, 네옴시티가 산업계엔 엄청난 기회가 될 거라는 설렘도 가득합니다. ‘미래형’ 신도시를 추구하는 만큼 전통적인 인프라∙건설 산업뿐 아니라 미래지향적 신사업에 기회가 열릴 전망인데요. 이미 싹이 보이는 분야들이 있습니다.
①도심항공모빌리티(UAM)
‘더 라인’엔 자동차가 없다고 말씀드렸죠. 그럼 자동차를 못 타게 된 사우디의 부자들이 이주노동자들과 나란히 고속철도나 경전철을 타고 이동하게 될까요? 아마 그렇진 않을 겁니다. 더 라인은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즉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대중교통수단으로 도입할 예정이거든요.
이를 위해 네옴시티는 지난해 독일의 볼로콥터(Volocopter)와 계약을 맺고 15대의 수직이착륙항공기를 도입하기로 했는데요. 5대는 화물, 10대는 승객 수송에 쓴다는군요. 얼마 전엔 볼로콥터에 1억7500만 달러를 투자하기도 했죠.
네옴시티는 건설 단계부터 에어택시가 이착륙할 수 있게 설계될 겁니다. 이 에어택시는 더 라인(주거지구)과 옥사곤(산업지구), 트로제나(관광지구)를 모두 오갈 예정이라고 합니다.
②우주인터넷
에어택시(UAM)가 상용화되려면 필요한 게 있죠. 바로 통신인데요. 네옴시티는 이를 위해 우주인터넷 기업인 영국의 원웹(Oneweb)과 손을 잡았습니다. 지난달 2억 달러 규모의 합작투자 계약을 맺었는데요.
우주인터넷은 기지국을 지상에 따로 깔 필요 없이 위성을 쏘아올려서 위성에서 바로 신호를 받아서 이용하는 인터넷 서비스입니다. 원웹은 이 분야의 선도주자인 기업이죠(스페이스X의 ‘스타링크’보다 먼저 위성 발사). 원웹은 네옴시티에서 와이파이는 물론 5G 통신도 지원한다는 계획입니다.
③그린수소
사우디아라비아는 네옴시티에 하루 650t의 ‘그린수소’를 생산하는 플랜트를 세울 계획입니다. 2026년 생산 예정. 수소에도 급이 있는 거 아시죠? 생산방식에 따라 급이 나뉘는데요. 화석연료를 이용해 수소를 만드는 그레이수소(탄소 배출 많음)와 달리, 신재생에너지를 통해 얻은 전기로 물을 분해하는 방식이 바로 그린수소입니다. 한마디로 궁극의 친환경 에너지원.
그린수소는 너무 생산단가가 높다는 단점이 있죠. 또 수소 자체가 기본적으로 생산은 물론저장과 운송 비용이 너무 비싸다는 게 문제입니다. 하지만 사우디 에너지 장관은 “우리는 재생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할 때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나라”라며 자신감을 보이는데요. 햇볕이 쨍쨍 내려쬐고 바다 바람이 꾸준히 불어오다보니 태양광과 풍력 자원이 모두 뛰어나다는 것. 발전기를 설치할 남아 도는 땅(사막)도 풍부하고요. 과연 세계 최대 석유 수출국 사우디아라비아가 세계 최대 그린수소 생산국이란 타이틀을 갖게 될까요? 사우디에 맞서는 그린수소 경쟁국으로는 러시아와 아랍에미리트(UAE)가 있다는군요. By.딥다이브
빈 살만 왕세자 방한에 맞춰 네옴시티를 좀 깊이 들여다 봤는데요. 주요 내용을 정리하자면
최소 5000억 달러짜리 프로젝트라는 사우디아라비아 ‘네옴시티’. 탄소 제로의 거대 신도시 건설이 시작됩니다.
상상 초월의 스케일, 상식 파괴의 디자인. ‘더 라인’ 조감도는 전 세계를 술렁이게 했습니다. 공상과학 영화에서 튀어나온 줄.
거기에 누가 살겠어? 돈은 어떻게 조달해? 탄소제로는 안 될 걸? 회의론도 많은데요.
도심항공모빌리티, 우주인터넷, 그린수소 같은 신산업엔 엄청난 기회가 열릴 수도. 빈 살만의 꿈은 과연 현실로 이뤄질까요.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