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 모르게 주민등록이 다른 곳으로 이전된 뒤 집주인이 집을 담보로 수천만 원을 대출받는 사건이 벌어졌다. 경찰은 신종 전세 사기 범죄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수사에 착수했다.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직장인 A 씨(26)는 올 7월 서울 서대문구의 한 오피스텔을 전세보증금 2억1800만 원에 임차하고 동 주민센터에 방문해 전입신고를 마쳤다. 최근 예비군 소집 일정 변경차 병무청에 연락한 그는 주민등록 주소지가 지난달 17일 자신도 모르게 충북 제천시의 한 암자로 변경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A 씨가 전혀 모르는 곳이었다.
A 씨가 주민등록등본과 오피스텔 등기부등본을 확인해보니 자신이 사는 오피스텔에 집주인 B 씨(29)가 전입신고를 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0일 오피스텔을 담보로 한 개인으로부터 거액을 차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오피스텔에는 채권최고액 9000만 원의 근저당권이 설정됐다.
주민등록 이전으로 대항력을 잃게 된 A 씨는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을 권리가 저당권자보다 뒤로 밀리면서 오피스텔이 경매에 넘어갈 경우 보증금을 날릴 처지가 됐다. 법무법인 자연수의 이현성 변호사는 “행정 소송을 통해 전입신고가 잘못됐다고 인정되면 A 씨의 대항력이 인정될 가능성이 있지만 경매 시에는 낙찰자와 소송을 통해 임차인으로서 권리를 증명해야 한다”고 했다.
A 씨는 최근 집주인 B 씨를 사기 및 배임 혐의로 고소했다. 서대문경찰서 관계자는 20일 “A 씨가 신종 전세 사기 범죄에 당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같은 피의자를 수사 중인 경기의 한 경찰서로 사건을 이첩했다”고 밝혔다.
서류와 도장을 위조해 A 씨 몰래 ‘대리인’ 자격으로 제천시 암자에 전입신고를 한 것은 암자 가구주 C 씨(27)였다. 충북 제천경찰서는 주민등록법 위반, 사문서 위조 및 위조사문서 행사 혐의로 C 씨를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B 씨와 C 씨 등이 사전에 범행을 공모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 중이다.
경찰 조사결과 56.05m²(약 17평) 규모의 암자에는 A 씨 외에도 4명이 자신도 모르게 전입신고가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추가 피해 발생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 중이다.
동 주민센터, 읍·면사무소 등이 당사자 몰래 한 전입신고를 못 거른 것이 문제란 지적도 나온다. 관련 시행령은 대리인이 전입신고를 할 때 전입자의 직전 가구주와 새 가구주가 다를 경우 직전 가구주나 전입자에게 확인을 거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제천시 관할 면사무소는 이전 가구주이자 전입자인 A 씨에게 확인 없이 전입신고를 접수했다. 이 면사무소 관계자는 “시행령에 어떤 식으로 확인해야 하는지 규정이 없어 전입자의 도장이 찍혀 있으면 사실상 동의한 걸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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