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대표팀 수비수 김영권 특별 세리머니
시즌 끝낸 운동선수 연말연시 결혼 러시
초혼 연령 늦어지는 사회적 분위기에도
심리적 안정, 책임감, 동기부여 강화
기적 같은 한국의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을 이끈 수비수 김영권(32·울산 현대)의 오른쪽 팔에는 문신이 있다. 프랑스어로 ‘가슴 속에 지니고 있겠다’는 글귀와 함께 아내 이름, 첫째 딸 영문명(Sejin P & Baby Ria)을 차례로 새겼다.
김영권은 3일 열린 카타르 알라이얀에서 열린 포르투갈와의 조별리그 H조 최종 3차전에서 0-1로 뒤진 전반 27분 동점골을 터뜨린 뒤 오른쪽 팔에 입을 맞추는 세리머니를 했다. 멀리서 응원하고 있을 가족을 떠올린 것이다. 김영권은 ‘카잔의 기적’으로 불린 4년 전 러시아 월드컵 독일과의 경기에서 0-0이던 후반 추가 시간 선제골을 올린 뒤에도 같은 세리머니를 했다.
●즐겁고 유쾌한 기분에 집중력 강화 효과
롤러코스터 같은 축구 인생을 걸어온 김영권에게 가족은 기쁠 때나 힘들 때나 늘 그의 곁을 지켜주며 가장 큰 힘이 되는 존재다. 2014년 12월 24세 나이로 승무원 출신 아내 박세진 씨와 결혼한 뒤 1녀 2남을 둔 가장으로서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가족을 생각하며 휴식 시간에도 땀을 흘리며 훈련에 매달려 양발을 두루 잘 쓰게 됐다. “가족 보다 중요한 건 없다”는 지론을 갖고 있는 그는 과거 ‘대회 기간 중 자녀출산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란 질문을 듣고는 “어떤 대회든 어떤 기간이든 아이를 보러 갈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영권처럼 스포츠 무대에서는 일반인보다 빠르게 결혼을 하는 사례가 많다.
통계청 발표를 보면 지난해 국내 평균 초혼 연령은 남자 33.4세, 여자 31.1세로 전년도보다 각각 0.12세, 0.19세 늘었다. 한일월드컵 축구 4강 신화를 이룬 해인 2002년 남자 평균 초혼 연령은 29.55세였고 여자는 27.01세. 운동선수들은 대개 30세를 넘기지 않는 편이다. 김영권이 그랬듯 장기레이스로 치르는 시즌을 마친 시점인 12월이나 1월에 결혼식이 집중되기 마련이다.
사랑 또는 결혼은 운동선수의 경기력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샌버나디노)가 올림픽 출전 선수를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75%의 선수가 사랑에 빠졌을 때 높은 성과를 보였다. 사랑을 하게 되면 도파민과 세라토닌 등 신경전달물질이 다량 분비돼 즐겁고 유쾌한 기분을 느끼게 하고 집중력이 올라간다. 결혼 후 심리적 안정을 갖고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훈련 또는 실전에서 강한 동기부여도 된다.
코칭 심리 전문가인 정그린 그린코칭솔루션 대표는 “결혼은 안정감을 줄 수 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고, 어디에 있든 돌아갈 곳이 있고, 나를 믿고 지지해주는 대상을 뜻하는 심리적 안전기지를 얻기 때문이다. 사람이기도 하고 장소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런 안정감이 있기에 힘든 상황 속에서도 더 잘 견뎌 낼 수 있게 된다. 또한 여유와 유연함이 결합돼 팀 내 분위기도 좋아질 수 있다. 누군가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폭도 넓어질 수 있다.
●임성재 김시우 PGA간판스타 품절 대열
올 연말에는 프로골프 선수들의 결혼이 줄을 잇고 있다. 한국프로골프협회(KPGA)에 따르면 최근 10장 넘는 청첩장이 쏟아졌다고 한다.
올 시즌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활약한 임성재(24)와 김시우(27)는 각각 서울에서 17일과 18일 하루 차이로 결혼한다. 임성재는 뉴욕대 음대를 졸업한 예비신부와 화촉을 밝힌다. 김시우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 7승을 올린 동료 선수 오지현(26)과 골프 커플이 된다. KPGA 코리안투어에서 뛰고 있는 전성현, 황중곤, 장동규, 이상희, 조민규 등도 평생 배필을 맞이한다
최근 5년 5개월 만에 여자골프 세계 1위 자리를 되찾은 뉴질랜드 교포 리디아 고(25)는 30일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아들 정준 씨와 혼례를 치른다.
27세 때 결혼 한 이경훈은 지난해 첫 아이 출산을 앞두고 PGA투어 첫 승을 신고했다. 올해는 세계 랭킹을 개인 최고인 33위까지 끌어올렸으며 한국 선수 최초로 PGA투어 2연패를 달성하기도 했다. 이경훈은 “운동선수는 친구가 많아 보여도 외로움을 자주 느낀다. 항상 같이 할 수 있는 동반자가 생기면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고 말했다.
이경훈, 김시우, 임성재의 소속사인 CJ의 김유상 스포츠마케팅 상무는 “다른 운동도 마찬가지겠지만 골프 선수 결혼은 심리적인 안정을 줄 수 있는 요소”라며 “아무래도 젊은 나이에 이성에 대한 관심도 높고 하다보니 경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하나의 요소가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전적으로 서포트해주는 사람도 생기다보니 더 심리적인 안정을 찾게 되는 게 아닐까 한다”고 전했다.
유명 골프교습가인 이시우 프로와 프로골퍼 이보미의 소개를 통해 현재 약혼자를 만난 리디아 고는 올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3승을 거두며 상금왕, 평균타수 1위, 올해의 선수상 등 3관왕을 차지했다.
정준 씨와 인연을 맺은 뒤 리디아 고는 과거 10대 천재 골프의 소녀의 명성을 되찾았다는 평가. 리디아 고의 언니 고슬아 씨는 “그를 만나고 나서 리디아 고가 평안을 얻었다”고 전했다. 리디아 고는 우승 인터뷰에서 “골프가 잘 풀리지 않을 때 나는 내 정체성과 골프를 연결해 생각했지만 그는 나와 골프를 연결짓지 않는다. 내가 79타를 치건 65타를 치건 항상 나를 사랑할 것이다”고 말했다. 골프위크에 따르면 정준 씨는 리디아 고를 즐겁게 해주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리디아 고의 심리상담을 맡은 정그린 대표는 “리디아가 결혼할 친구와 소통이 잘 되고 강한 믿음을 느끼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 스포츠 심리전문가는 “골프는 대표적인 멘탈스포츠다. 플레이 결과에 대한 부담을 혼자 지기 때문에 주위에 따뜻한 반려자가 있으면 심리적으로 위안이 된다. 특히 승부의 세계를 잘 이해하는 배우자라면 더욱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오지환 고우석 등 야구계에서만 40명 넘게 결혼
야구 축구에도 결혼 소식이 줄을 잇고 있다. 프로야구 관계자에 따르면 10개 구단과 한국야구위원회 심판 등을 합쳐 올 연말과 내년 초에 40명 넘는 혼사가 예정돼 있다고 전했다.
프로야구 LG 주장 오지환(33)은 4일 김영은 씨와 결혼했다. 김영은 씨 슬하에 2남을 둔 오지환은 2019년 혼인신고를 올렸으나 시즌 일정과 코로나19 영향으로 예식을 미뤘다. LG 마무리 투수 고우석(24)은 이종범 LG 코치의 딸이자 키움 이정후의 동생인 이가현 씨와 내년 1월 6일 결혼한다. 고우석은 올 시즌 61경기에 등판해 4승 2패 42세이브 평균자책점 1.48의 성적을 거둬 세이브 1위를 차지했다.
김광환 LG 홍보팀장은 “야구 선수로 일찍 성공한 선수들이 결혼도 빨리 하는 경향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야구 선수들의 결혼 시점이 일반인들보다 빠르다”고 말했다.
KT 황재균(35)은 10일 그룹 티아라 출신 지연과 결혼식을 갖는다. 황재균은 “한창 힘든 시기에 만나 흔들리던 나를 단단하게 잡아주고 옆에 있다는 존재만으로도 많은 도움을 준 친구와 함께 결혼을 결심하게 됐다”고 전했다.
●라이언 킹 이승엽 이동국 다둥이 가장
과거 이승엽(현 프로야구 두산 감독)은 26세 때 12월에 이송정 씨와 결혼한 뒤 각종 기록을 갈아 치우며 국민타자로 이름을 날렸다. 이승엽은 아들 셋을 뒀다. 2002년 한일월드컵 출전 무산으로 실의에 빠졌던 이동국은 2005년 12월 26세 나이로 미스코리아 출신 동갑내기 이수진씨와 결혼한 뒤 재기에 성공하며 간판 스트라이커로 이름을 날렸다. 이동국은 5자녀를 뒀다. 2007년 딸 쌍둥이를 낳은 뒤 2013년 다시 딸 쌍둥이를 봤다. 겹쌍둥이에 이어 이듬해 ‘대박’이라는 태명을 가진 아들을 낳았다.
박인비(34)는 2008년 US여자오픈에서 최연소 챔피언에 된 뒤 LPGA투어에서 4년 가까이 우승 없이 부진에 빠졌다. 운동을 관둘까 고민하던 박인비는 2011년 남기협 스윙 코치와 약혼한 뒤 한 해에 메이저 대회에서만 3승을 올리는 등 황금기를 맞았다. 2014년 10월 결혼 후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선 금메달까지 땄다.
성봉주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수석연구위원은 “결혼과 경기력의 상관관계는 개인차가 크다”면서 “야구처럼 정신력이 중요하고 시즌이 긴 종목일수록 결혼이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정그린 대표는 “요즘 트렌드가 결혼을 안 하거나 아주 늦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긴 하지만 이제는 시기가 문제가 아닌 자신의 선택의 영역에 들어선 것 같다. 빠른 결혼이 도움이 된다고 단정 지을 순 없지만 적어도 올바른 결혼이라면 심리적 안정과 시스템의 안정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운동선수든, 일반인이든 결혼 생활이 늘 핑크빛일 수는 없다. 미국 4대 프로스포츠(야구 농구 미식축구 아이스하키)에서 이혼율은 60%가 넘는다. 스포츠 스타들은 경기와 훈련을 하느라 집을 자주 비우고 주위의 유혹에 쉽게 노출될 수도 있다. 결혼 전 잘 모르던 성격 차이가 갈등을 일으킬 수도 있다.
메이저 골프 대회 최다 우승 기록(18회) 보유자인 ‘황금곰’ 잭 니클라우스(82)는 “내가 남긴 숱한 기록 가운데 가장 뜻 깊은 건 ‘5’”라고 했다. 20세 때 부인 바버라 씨와 결혼한 뒤 얻은 5명의 자녀와 20명의 손자가 가장 소중하다는 의미다. 가정에 대한 헌신이 있었기에 골프 전설로 이름을 날리며 60년 넘게 해로할 수 있었다. 연속 2주 이상 가족과 떨어지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고 선수 생활을 했다.
미국 덴버대에 따르면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구단의 연고 도시 이혼율이 그렇지 않은 도시보다 28% 떨어졌다. 덴버대 하워드 마크먼 심리학 교수는 “건전한 결혼 생활에는 재미와 우애가 중요한 가치다. 야구장을 찾아 즐기고 대화하는 과정은 사랑을 지키는 하나의 방편”이라고 말했다.
야구 관람은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다. 월드컵 축구를 같이 보며 끈끈한 가족 사랑을 느낄 수도 있다. 가사 노동과 육아 분담도 필수다. 결혼과 출산을 독려하기 위한 정부의 실질적인 대책 마련도 시급하다. 노력 없이 거저 얻는 건 없다. 가정의 행복도 마찬가지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