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응급대응센터 출범 한달… “환자 입원 처리 4시간에서 1시간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2월 12일 03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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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초 늦은 시간에 서울의 한 지구대로 신고 전화가 걸려 왔다. 신고자는 “아파트 10층 난간에 한 여성이 다리를 걸치고 있다. 빨리 출동해 달라”고 했다. 출동한 경찰이 확인해 보니 20대인 이 여성은 정신질환의 일종인 ‘양극성 장애’를 앓고 있었다. 이 질환은 흥분과 우울 상태가 번갈아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게 특징이다.

자해 가능성이 있어 보였지만 연락된 부모는 “지방에 살고 있어 당장은 서울로 가기 어렵다”고 했다. 결국 지구대 요청을 받은 ‘정신응급 합동 대응센터’(센터) 소속 전문요원이 출동해 응급입원 절차를 밟았다. 그 덕분에 지구대에서 출동한 경찰은 1시간 만에 현장에서 철수할 수 있었다.

올 10월부터 서울경찰청과 서울시가 운영 중인 정신응급 합동 대응센터 덕분에 응급 입원 과정에서 발생했던 인권 침해 논란의 소지가 줄었고, 지구대 등 일선 경찰들의 부담도 감소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센터는 올 7월 윤석열 대통령이 경찰에 응급 입원 체계를 정비할 것을 지시한 뒤 나온 첫 번째 후속 대책이다.
●경찰과 지자체 합동으로 ‘정신응급 상황’ 대응

11일 서울경찰청 등에 따르면 센터에선 경찰과 서울시정신건강복지센터 전문인력을 합쳐 6, 7명이 상시 근무한다. 늦은 밤이나 휴일 등 취약 시간대에 정신질환자로 추정되는 사람이 사건·사고를 일으켰거나, 일으킬 위험이 크다는 신고가 들어올 경우 이들이 현장에 출동한다. 낮에 자치구 정신건강 전문요원이 담당하는 역할을 서울 전체를 대상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일선에선 “센터가 문을 연 뒤 경찰력 낭비 문제가 크게 개선됐다”라고 입을 모은다. 서울청에 따르면 그동안은 경찰이 정신질환자를 발견해 입원시키려 할 경우 병원을 찾느라 평균 약 4시간을 길거리에서 보냈다. 하지만 최근엔 입원 업무 등을 센터가 담당하면서 현장 부담이 크게 줄었다.

서울의 한 지구대 소속 경찰관은 “센터가 정신질환자 응급 상황을 처리하면서 이전에는 최소 4시간은 걸리던 처리 시간이 1시간으로 줄었다“며 ”이 덕분에 야간 순찰이나 다른 112 신고 처리에 더 많은 인력을 투입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센터 소속 요원들이 전문성을 바탕으로 결정하면서 응급 입원 과정에서의 인권침해 소지도 줄었다. 센터 개소 후 1개월 동안 비자발적 강제 입원은 87건으로 9월 강제 입원(113건)보다 23%가량 줄었다.

서울청 관계자는 “전문가가 정신질환자를 직접 면담한 뒤 입원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이전과 같은 무분별한 응급 입원 사례도 줄고 있다“며 ”당장 긴급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대상자가 지원을 원하면 지방자치단체 정신건강복지센터의 도움 등을 받을 수 있도록 연결해주고 있다“고 했다.
●“입원 가능 병상 실시간 확인 가능해야”

전문가들은 추가로 정신질환자의 응급 입원이 가능한 의료기관의 병상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도 갖춰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센터 소속 경찰관과 전문요원들도 빈 병상을 찾으려면 병원마다 일일이 전화를 돌려야 한다. 일선 지구대나 파출소의 업무 부담은 줄었지만, 빈 병상을 찾는 일에 여전히 많은 행정력이 투입되고 있는 것.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월 ‘제2차 정신건강복지기본계획’에서 ‘정신 응급팀’이 24시간 대기하는 권역 정신응급의료센터를 올해부터 2025년까지 4년에 걸쳐 14곳으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전담 인력이 24시간 상주하는 의료기관이 생기는 만큼, 늦은 밤이나 휴일에 정신질환자의 응급 입원이 수월해질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현재 운영 중인 권역 정신응급의료센터는 4곳에 불과하다.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경찰이 정신질환에 대한 전담 인력을 지정한 것은 상당히 의미 있는 변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다른 응급상황과 달리 정신 응급은 실시간으로 병실 상황을 파악할 수 없어 일일이 병원에 확인하고 있다“며 ”정신응급 이송에 관한 컨트롤 타워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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