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더 많이 사랑하는 자식(같은 작품)들이 있기에, 사실 ‘두 여자’는 나의 아픈 손가락도 예쁜 손가락도 아니다. ‘두 여자’는 나를 닮은 자식이다.
쓰는 내내 웃음과 즐거움을 준 A도 있었고, 엉망진창에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아도 애정을 거둘 수 없던 B도 있었다. 그들을 다시 들여다보는 것은 아직도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가장 나를 닮은 것은 ‘두 여자’다.
구상부터 집필까지 조금의 막힘도 없이 헤매지 않고 달렸다. 호영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당연했고, 선화의 그러한 행동은 다른 선택지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내 안에선 자연스러웠다. 어느 부분에서도 더 나은 장면을 위해 애쓰지 않았다. 그저 따라가면 됐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나를 닮아 쓸쓸했으며, 나를 닮아 끝까지 마음이 쓰였다. 몇 번을 보다 보면 속이 쓰려 울화가 치밀었고 몇십 번을 채우다 보면 아예 파일을 삭제해 디지털의 심연에 던지고 싶었다.
그렇게 나를 가장 불편하게 했던 작품이 결국 얼떨떨한 영광을 갖고 돌아왔다. 그제야 나는, 작가로 사는 한 절대 글의 등 뒤로 숨을 수 없겠구나 깨닫는다. 사는 대로 써야 하고 쓰는 대로 살게 된다는 것을 배운다.
가까스로 얻은 첫 성취 앞에서 나는 어떻게 살고 어떻게 써야 할지가 어렵다. 서늘한 기쁨이다.
끝없는 애정과 지지를 보내준 가족들에게 특별히 감사드립니다.
△1993년 대구 출생 △유원대 사회복지학과 졸업
○ 심사평 소름 끼친다… 읽는 내내 숨소리 한번 내지 못해
신춘문예 심사를 한 지 10년이 넘었다. 본심에 오른 작품들을 읽을 때마다 설렘보다는 당선작을 못 낼 경우를 예단하며 초조할 때가 많았다. 햇수를 거듭할수록 초조함은 더해 갔다. 그런데 올해는 달랐다. 당선작이 우뚝 솟아 있어 쉽게 찾았다. 당선작에 자리를 내어준 다른 작품들도 예년에 비해 풍년이었다.
한국의 1980년 전후 정치적 격변기를 다룬 ‘초절정고수’는 풍자와 재치가 돋보이지만 그만큼의 깊이가 따르지 못했다. 또한 제목의 분위기와는 달리 액션이 감질났다. 제주4·3사건을 다룬 ‘4월이 오면’은 욕심을 부린 탓에 주제의식이 길을 잃었다. 여러 인물이 등장하고 그만큼 사건도 풍성하지만, 그래서 주제는 더 빈곤해졌다. 역사적 사건을 다루면서 사건의 실체를 조명하는 대신 한 단면만 부각시켜 감성에 호소하는 건 위험하다. ‘뭐지? 이건 뭐지?’ 하며 끌려가듯 읽은 ‘도둑까치’는 산만하지만 속도감이 느껴져 점수를 땄다. 하지만 인물들이 노골적으로 단편적이다. 없는 자는 항상 선하고, 있는 자는 언제나 악인으로 묘사되는 게 아쉽다. 그래도 종합적으로는 꽤 신선했다.
신춘문예 시나리오 부문을 아직까지 고수하는 신문사는 찾기 힘들다. ‘두 여자’는 동아일보의 그간의 고집과 수고에 보답하는 작품 같다. 두 여자들 각자의 입장과 각각의 명분을 소름 끼칠 정도로 명확하게 담아내 읽는 내내 숨소리 한번 크게 내지 못했다. 신인이라고는 여겨지지 않을 정도의 완성도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