굵은 선으로 그려진 사람의 형상이 담백하면서도 중후한 분위기를 풍기는데, 가운데 적힌 삐뚤빼뚤한 글씨가 낯선 경쾌함을 선물한다. “할아버지 사랑해요. Happy Birthday! 서미림 올림.”
한국 수묵 추상의 대가 서세옥 화백을 기리는 전시 ‘삼세대(三世代): 서세옥(1929-2020)을 기리며’에 나온 작품 ‘무제’(2019년)다. 작가는 서 화백의 손녀 서미림 씨고, ‘할아버지’는 서 화백을 가리킨다.
서울 용산구 리만머핀에서 20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서 화백의 수묵화와 드로잉 7점을 볼 수 있다. 대표작 ‘People’(사람들) 시리즈는 극도로 단순화된 몇 개의 선만으로도 인물이 살아 있는 것 같은 역동성을 보여준다.
전시는 서 화백 가족 9명의 드로잉, 회화, 설치, 영상 등 작품 73점과 함께 예술가를 추모하는 색다른 방식을 보여준다. 서 화백의 아들인 설치예술가 서도호 씨와 건축가 서을호 씨의 작품도 전시장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서 화백의 자취가 3세대 가족 구성원에게까지 녹아있다는 점은 특히 흥미롭다. 손녀 서오미 씨가 동그라미와 직선을 반복해서 그린 ‘Piggybacks’(2018년)에서는 할아버지 서 화백의 추상미와 아버지 서도호 씨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유기성이 엿보인다. 서미림 씨의 종이 설치작품 ‘Suh People’(2018년) 역시 서 화백의 ‘사람들’이 종이 밖으로 튀어나와 서로 얽혀 있는 듯한 모양새다.
리만머핀은 “여러 세대의 가족이 만든 작품으로 구성한 이번 전시는 서 화백의 개방적, 실험적 접근이 3세대에 걸쳐 전승된 것을 기린다”며 “서 화백이 고민했던 ‘시공을 초월하는 공동체의 연결성’에 대한 현 세대의 답가이기도 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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