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영화 ‘영웅’ 작곡 오상준
2008년 첫 곡 총 31곡 완성
“영웅을 마음에 담는 건 값진 일”
안중근 의사(1879∼1910)가 중국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을 당시 그의 나이는 고작 서른이었다. 청년 안중근의 가장 뜨거웠던 생애 마지막 1년을 담은 뮤지컬 ‘영웅’은 윤제균 감독이 동명의 뮤지컬 영화로 제작해 현재까지 167만 명이 관람했다. 지난해 12월 21일 개봉한 영화 ‘영웅’을 보고 나이에 관계없이 눈물을 흘렸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같은 날 뮤지컬 ‘영웅’이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에서 막을 올렸다. ‘영웅’의 작곡가 오상준(54·사진)을 지난해 12월 22일 LG아트센터 서울에서 만났다. 영화에도 그가 작곡한 ‘영웅’의 넘버 전체 31곡 가운데 16곡이 그대로 담겼다.
“관객이 과거로 가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청년 안중근을 지금 시대로 불러오고 싶었습니다. ‘영웅’의 넘버들이 웅장하고 비장하지만 빠른 템포의 곡도 여럿 담긴 이유죠.”
2008년 9월 13일. 그는 첫 곡을 작곡한 날짜를 정확하게 기억한다. 뮤지컬 ‘영웅’을 제작한 윤호진 에이콤 대표는 “눈 내리는 만주 벌판에서 안중근 의사가 말을 타며 독립 운동하는 걸 상상해보라”며 작곡을 제안했다. 이후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문득 선율이 떠올랐다. 타이틀 곡인 ‘영웅’의 도입부였다.
“제안을 받았을 때 큰일이 생겼다는 두려움과 잘해내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들었어요. 감히 비교할 순 없지만 거사를 앞둔 청년 안중근의 마음과 조금이나마 비슷하지 않았을까요.”
그로부터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뮤지컬 ‘영웅’에 수록된 넘버 31곡을 완성했다. 모든 곡이 ‘영웅’처럼 단박에 떠오른 건 아니었다. 2막 중반,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 사살을 실행하기 전 기도하며 부르는 ‘십자가 앞에서’는 며칠을 고민해도 단 한 음정도 생각나지 않았다.
“처음엔 비장하게 내지르려 했어요. 그런데 연출가가 이 곡은 내면으로 삭여야 한다고 하더군요. 강한 의지와 굳은 신념으로 결심은 했지만 막상 맞닥뜨리려니 얼마나 두려웠겠어요. 안중근의 인간적 면모를 보여줘야 했죠.”
‘영웅’에서 제일 유명한 넘버는 ‘누가 죄인인가’. 그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작곡한 곡이다. 안중근 역의 배우들은 이 곡을 부르며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15가지 이유’를 하나하나 나열한다.
그는 “이토의 15가지 죄목을 지루하지 않게 한 곡에 담을 수 있을지 고민이 컸다”며 “말하는 것처럼 빠른 템포로 시작하고 단계별로 박자의 변화를 주는 등 여러 시도를 했다”고 말했다.
“억압받던 시절, 한 줄기 빛 같았던 영웅을 매일 기리며 살 순 없지만 마음 한편에 담아두는 건 값진 일입니다. 뮤지컬과 영화를 통해 산 자의 가슴속에 죽은 자의 정신이 살아나는 경험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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