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뉴욕 맨해튼 지하철역에서 누군가 “왜 전철을 7분이나 기다려야 하느냐”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욕하는 것을 봤다. 하지만 사람들은 익숙한 듯 그를 지나쳐 갔다. 뉴욕 길거리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람은 매우 많다. 화를 내는 사람, 약물에 취해 정신 못 차리는 사람…. 뉴욕시는 최근 ‘정신건강 위기’를 선언하고 정신질환자를 강제 입원시키도록 하겠다고 밝히기까지 했다.
한 택시 기사는 정신건강 위기를 “외로움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택시에 탄 기자에게 “오랫동안 택시를 몰면 승객들 얘기를 듣게 된다. 뉴욕은 돈이 없으면 친구도 없는 곳이다. 그래서 불안 속 외로움이 사람을 죽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진단’이 마음에 남아 있던 차에 동아일보 신년 기획 인터뷰를 위해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이자 정신분석학계 석학인 로버트 월딩어 하버드대 의대 교수를 화상으로 만났다. 월딩어 교수는 85년 동안 하버드대와 보스턴 빈민가 출신 2000여 명의 삶을 추적하는 세계 최장기 ‘인생 연구’를 21년 째 책임지고 있다. 월딩어 교수도 “원치 않는 외로움과 고립이 우리 몸과 뇌에 치명적”이라고 했다. 반대로 “행복과 건강에 영향을 주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사람들과의 따뜻한 관계”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된다면 부(富)는 행복을 결정하는 요인이 아니라고 했다.
그 택시 기사는 “돈이 없으면 친구도 없다”라고 했으니 돈을 두고는 석학과 의견이 갈린다. 신기하게도 2일 월딩어 교수 인터뷰가 지면에 실린 뒤 택시 기사와 비슷한 주장을 하는 독자로부터 e메일을 받았다.
월딩어 교수가 말하는 행복 비결인 ‘따뜻한 관계’는 내가 잘나갈 때는 좋은 말만 해주다가 실패하면 바로 떠나버리는 그런 관계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안전망처럼 어려울 때 의지할 수 있다고 믿는 가족이나, 가벼운 친구라도 진정성 있게 서로를 긍정해주는 관계라면 된다고 했다. 철학자들도 그렇게 말했다. 이마누엘 칸트는 “할 일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희망이 있다면 행복한 사람”이라 했고, 버트런드 러셀도 저서 ‘행복의 정복’에서 비슷한 말을 했다. 철학자들은 이미 깨친 진리를 과학적 데이터가 뒷받침하는 셈이다.
안타깝게도 극단의 경쟁과 양극화에 허덕이는 사회에서는 그런 진정성 있는 타인을 만나는 것도 굉장히 어렵게 느껴지는 것 같다. 실패하면 가족도 나를 버릴 수 있다는 불안감이 감지된다. 상대가 자신을 무시할까 봐 서로 무시하는 것은 아닌지도 생각해 본다. 미국 한 연구에서는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느끼는 가장 큰 고통이 ‘투명인간’ 취급이었다.
1일 미 뉴욕타임스(NYT)는 ‘새해에 더 행복해지자’는 취지로 월딩어 교수와 함께 ‘7일 프로젝트’를 시작한다고 보도했다. 감사하기, 친절해지기처럼 사람과의 관계를 강하게 만드는 도전을 일주일만이라도 해보자는 것이다. NYT 담당 기자는 ‘감사’ 과제로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선생님에게 편지를 보냈다.
“선생님이 ‘나중에 유명한 작가가 될 것 같다’고 성적표에 적어줬는데 그때 누군가 내게서 무언가를 발견해줬다는 생각이 제 인생을 바꿨습니다.”
올해 91세가 됐다는 그 교사가 이 감사편지를 받고 얼마나 기뻐했을지 상상이 간다. 조금 낯부끄럽지만 새해 결심으로 ‘친절해지기’ ‘감사하기’를 실천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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