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청와대, 현재 용산 대통령실의 구성원들은 당적(黨籍)을 가질 수 없다. 소속 정당의 대선 승리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뛰었더라도 공무원이 되는 순간 당원 자격을 내려놓고 탈당해야 한다. 다만 한 사람은 예외다. 바로 대통령이다. 정당법 제22조에 따르면 공무원은 정당의 당원이 될 수 없지만 대통령은 제외다.
문제는, 소속 정당을 대하는 대통령들의 모습이다. 정당의 수장은 당 대표다. 하지만 평당원 신분인 현직 대통령은 집권 여당에 끊임없는 관심을 보여 왔고, 당 대표를 뛰어넘는 힘을 과시하려 들기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아예 ‘새 집 짓기’에 직접 나섰다. 1997년 대선에서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으로 당선됐던 김 전 대통령은 2000년 총선을 앞두고 새천년민주당의 창당을 주도했다. 새천년민주당 소속 후보로 김 전 대통령의 뒤를 이어 집권한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집권 여당의 개편에 나선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또 열린우리당이라는 새 집을 지은 것.
진보 정권의 두 대통령이 공통적으로 창당을 주도했다면, 보수 정권에서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친위 그룹이 전면에 나섰다. 친이(친이명박), 친박(친박근혜)의 등장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08년 총선 공천은 ‘친박 공천 대학살’로 불린다. 친이계의 주도로 친박 인사들이 무더기로 공천에서 탈락한 것. 그러나 친이계의 전성시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4년 뒤인 2012년 공천에서는 친박계의 복수가 펼쳐졌기 때문이다.
2012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친박의 기세는 더 등등해졌지만, 그 끝은 다르지 않았다. 2014년 당 대표 선거를 앞두고 친박계는 청와대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서청원 의원을 밀었지만 패배하고 만다. 이쯤에서 멈췄어야 했지만, 친박계는 2016년 총선 공천에서 또다시 실력 행사에 나선다.
2023년 새해,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똑같은 시도가 또 펼쳐질 분위기다. 그 첫 무대는 3월 8일 열리는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은 이번 전당대회를 앞두고 18년 만의 규칙 개정에 나섰다. 일반국민 여론조사를 없애고 ‘당원 투표 100%’로 고쳤고, 결선투표도 도입했다. 무조건 친윤(친윤석열) 진영 후보를 당선시키겠다는 의도다. 자연히 전당대회는 ‘윤심(尹心·윤 대통령의 의중)’ 경쟁이 됐다. 대통령 관저에서 누가, 몇 번이나 밥을 먹었는지에 관심이 쏠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심지어 “우리는 윤석열을 위해 존재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과거 청와대가 있던 시절, ‘건강한 당청 관계’라는 말이 있었다. 정권의 성공을 위해 청와대와 여당이 합심하면서도, 잘못된 길을 갈 경우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권은 여당이 청와대 뜻대로 움직이는 ‘수직적 당청 관계’를 택했고, 비슷한 결말을 맞았다. 집권 2년 차를 맞는 윤석열 정부는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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