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질환 환자들의 새해 소망
다른 질병으로 오인되기 쉬워 악화 후 진단돼 생존기간 단축
사회적 인식 저조해 편견 시달리고, 병원 방문 잦아 일상생활 어려워
“조기진단 중요… 널리 알려지길”
우리나라에는 50만 명 정도로 추정되는 희귀질환자가 있다. 매년 5만여 명씩 희귀질환 환자가 새로 발생한다. 희귀질환은 질환당 환자 수가 2만 명 이하이거나, 진단이 어려워 유병인구를 알 수 없는 질환이다. 희귀질환은 세계적으로 8000여 종이 등록돼 있고, 국내에 등록된 희귀질환은 1000여 종이다. 이 중에서 선천녹내장, 마이어증후군 등 20개 질환은 환자가 200명 이하인 희귀질환이다.
희귀질환은 치료제가 개발된 질환도 있고, 아예 치료제가 없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치료제가 있더라도 가격이 비싸 치료할 엄두조차 못 내기도 한다. 희귀질환 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 때문에 가급적 치료 사실을 숨기기도 한다.
이에 동아일보는 2회에 걸쳐 용기를 내어 얼굴을 공개하고 그 치료 경험을 공유하고자 나선 희귀질환자의 사연을 소개한다. 최근 희귀질환 단체는 ‘어느 날 뜬구름’이라는 환자에 대한 사회인식개선 캠페인에 참여해 질환과 환자들의 어려움을 알리고 있다. 질환을 널리 알려야 원인도, 질환도 몰라 고통 받는 이들에게 또 다른 희망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 “의사도 잘 몰라 진단까지 3∼5년 걸려요”
김동현 씨(60)는 2013년 캐나다에 거주할 당시 갑작스럽게 숨이 턱까지 차는 증상이 나타나 병원을 방문했다. 당시에는 심장에 문제가 있다는 것만 확인할 수 있었을 뿐 그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는 2014년 미국으로 건너가 조직검사, 혈액검사 등을 다시 받고서야 유전성 심장병인 트랜스티레틴 아밀로이드 심근병증(ATTR-CM)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처음 증상이 나타난 지 일년이 지난 뒤였다.
ATTR-CM은 울혈성심부전, 부종, 호흡 곤란, 피로감 등을 주로 겪게 된다. 다른 질환과 비슷한 증상이 많아 조기 진단이 어렵다. 이 때문에 많은 환자들이 심근증, 심부전, 부정맥이 악화된 뒤 뒤늦게 ATTR-CM을 진단 받는 경우가 많다. 진단이 제때 이뤄지지 않으니 생존기간도 진단 뒤 2∼3.5년밖에 되지 않을 만큼 짧다. 조기진단과 조기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내 환자 수는 100여 명으로 추정된다.
그는 해외서도 치료방법을 찾지 못하다 삼성서울병원에 ‘아밀로이드 전담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2016년 귀국해 치료를 시작했으나 ATTR-CM의 국내 유병 현황에 대한 연구 및 조사가 전무했다. 정확한 환자 현황도 알 수 없고 환우들과의 교류도 부족해 2019년 아밀로이드증환우회라는 이름의 환자단체를 직접 만들게 됐다.
아밀로이드증 환자들은 확진을 받을 때까지 평균 3곳 이상의 종합병원에서 3∼5년 이상 진료를 받는다. 다행히 2020년 8월, 유일한 ATTR-CM 치료제인 빈다맥스가 우리나라에서 허가를 받았다. 빈다맥스 복용이 실낱같은 희망이지만 아직까지 건강보험 지원이 되지 않아 사실상 복용이 어렵다. 치료제가 눈앞에 있어도 사용할 수 없는 환자들은 ‘희망고문’을 받을 뿐이다.
건강보험 재정을 관리하는 정부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치료할 수 있는 환자들은 일단 생명을 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 역시 정부의 역할이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김 씨는 “올해는 약값이 비싸 치료받지 못하는 희귀질환 환자들이 더 이상 없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 “운동신경 나쁜 줄 알아… 조기진단 중요해요”
최하영 씨(31)가 ‘폼페병’이라는 희귀병 진단을 받은 건 7년 전인 24세 때였다. 그는 초등학생 때부터 유난히 달리기를 못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체육시간에 자신이 없어졌다. 최 씨는 “달리기를 하면, 내가 남들하고 다르다는 걸 알고 싫어하게 됐다”며 “한참 예민한 사춘기엔 체육시간이 죽기보다 싫었다”고 말했다.
최 씨는 유독 남보다 운동신경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계단을 오를 때나, 앉았다 일어설 때, 버스를 타고 내릴 때, 오르거나 뛰어야 하는 순간에 몸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았지만 겉으로는 괜찮은 척했다. 2016년 대학병원에 취업을 하게 되면서 입사검진을 받고 뭔가 이상하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됐다.
그때 근육병이 아닌 폼페병이라는 희귀질환 진단을 받았다. 폼페병은 근육을 약화시켜 계단을 오르거나 운동을 하는 데 어려움을 준다. 심장 비대증이나 피로감, 호흡 곤란, 수면무호흡증 등의 증상이 동반되기도 한다. 증상이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영아라면 호흡 부전으로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성인의 경우도 빠른 진단과 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한 질환이다.
최 씨는 오랜 기간 몸이 고생한 원인이 희귀질환이었다고 생각하니 마음까지 무너졌다. 직장을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아픈 사람을 좋아하는 직장도 없지만 2주에 한 번 병원을 방문해 하루 반나절은 치료에 써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그는 새로운 폼페병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최 씨는 “병이 조금이라도 낫고 병원 방문 횟수가 줄어 일상이 유지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폼페병환우회에 따르면 국내 추정 환자 수는 1000여 명이다. 하지만 등록된 환자 수는 40명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조기에 진단돼 치료한다면 훨씬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 씨는 “저와 비슷한 증상이 나타난다면 의심을 해보고 하루라도 빨리 병원을 방문해서 검사해보라”라고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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