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영화 ‘영웅’서 관객 눈물바다 만든 나문희
안중근 의사 모친 조마리아 여사役
음정-박자 안맞는 노래로 큰 울림
“역할 제안받고 선뜻 수락 못해… 정말 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
지난해 12월 21일 개봉해 이달 3일까지 관객 180만 명을 모은 뮤지컬 영화 ‘영웅’에는 무심한 이들조차 울음을 터뜨리게 만드는 ‘눈물 일등공신’이 있다. 안중근 의사(정성화)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로 열연한 배우 나문희(82)다. 그가 사형을 앞둔 아들의 수의를 지으며 부르는 노래 ‘사랑하는 내 아들, 도마’가 나오면 영화관 안은 눈물바다가 된다. 음정도 박자도 맞지 않는 노래가 갖은 기교로 무장한 노래보다 더 큰 울림을 준다.
“나한테 아직도 이런 힘이 있었나. 깜짝 놀랐어요.”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4일 만난 나문희는 많은 이들의 눈물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이었다. 그는 “윤제균 감독이 다른 배우들이 노래할 때 내 노래를 틀어줬다고 하더라. 그런 감정으로 노래하라는 의미였다. 인정해주시니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 노래는 처음에는 형무소 담벼락 앞에서 라이브로 녹음됐다. 전체 곡을 한 번에 부르는 방식으로 10여 번이나 촬영했다. 그런데 윤 감독이 “뭔가 아쉽다”며 나문희에게 안중근 의사 고향집 방 안에서 부르는 것으로 다시 촬영하고 싶다고 요청했다. 나문희는 “어차피 형무소 장면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같이 늙으면 건망증이 심해져서 고생한 생각이 잘 안 난다”며 웃었다.
그는 조 여사 역할을 제안 받고 선뜻 이를 수락하지 못했다. 아들에게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지 말고 죽음을 받아들이라고 말하는 조 여사 마음을 헤아리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는 “어떻게 그렇게 자기 자식을 희생시킬 수 있었을까. 아직도 다 공감하진 못하겠다”며 “자식은 열 살이어도 쉰 살이어도 아이 아니겠나. 내가 아무리 잘 표현했다고 해도 조 여사 마음보다는 훨씬 덜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민족의 아픈 역사를 다룬 영화에 출연한 것에 대한 사명감도 밝혔다. 그는 “픽션 속 캐릭터를 다룬 영화와는 확실히 다른 자세로 임하게 됐다”며 “정말 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출연한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처럼 앞으로 가벼운 작품을 하고 싶다고 했다. 최근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틱톡’에도 도전해 쇼트폼 영상을 즐기는 젊은층을 만나고 있다. 그가 ‘하이킥’에서 유행시킨 ‘호박고구마’에 열광하는 이들이다. 극 중 그가 “고구마호박”이라고 하자 며느리(박해미)가 “호박고구마”라고 계속 지적한다. 이에 화가 난 그가 “그래, 호박고구마”라며 절규하듯 여러 차례 외친 장면이 큰 화제가 됐다.
“내가 이렇게 항상 움직인다는 게 참 좋아요. 나이 먹었다고 굳어지는 거 싫거든요. ‘호박고구마’처럼 가벼운 작품을 많이 하며 재밌게 놀다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할머니라고 카메라 앞에서 무거울 필요는 없잖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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