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4일(현지 시간) 프랑스 의회 앞. ‘투우 금지’라고 쓰인 팻말을 손에 쥔 시민들이 “고문은 쇼가 아니다. 투우를 금지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바로 반대편에선 프랑스 투우협회 등 투우 지지자들이 모여 “투우는 지역의 문화유산이자 경제 상품”이라고 반발하는 맞불시위를 열었다. 의회에 발의됐던 ‘투우 금지 법안’이 이날 철회되자, 투우 존폐를 둘러싼 찬반 갈등이 한 자리서 맞붙은 것. 프랑스뿐 아니라 투우 종주국 스페인에서도 소싸움을 놓고 민속유산이냐 동물학대냐는 논란이 뜨겁다.
지난달 전북 정읍시의회가 소싸움대회 개최를 명목으로 올해 시 예산안에 2억8515만 원을 편성하면서 국내에서도 소싸움대회를 둘러싼 존폐 논란이 제기됐다.
소싸움은 경북 등 가야문화권에서 정월대보름 무렵 행해지던 민속행사다. 민속 문화재 전문가인 전경욱 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서로 다른 두 마을을 대표하는 소가 맞붙는 소싸움을 통해 마을이 단합돼 농경공동체를 지탱해왔다”고 평했다. 하지만 최근 시민단체는 물론 학계에서도 동물에게 부상을 입힐 수 있는 소싸움을 존치해야 하느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동물학대’ 논란이 제기됐지만 현행법상 동물학대는 아니다. 동물보호법 제8조는 ‘도박·오락·유흥 등 목적으로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는 행위는 동물학대’라고 규정한다. 이 법에 따르면 소싸움대회는 명백한 동물학대에 해당하지만 이 법은 예외조항을 두고 있다. ‘민속경기 등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지정한 11개 지방자치단체장이 주관하는 소싸움 경기는 제외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A 문화재청 무형문화재위원회 위원은 “형평성에 어긋나는 동물보호법 예외조항을 폐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대 흐름을 좇아가지 못하는 민속유산이 자연 소멸하는 것 역시 민속유산의 생리”라며 “동물보호법 예외조항을 폐지한다면 ‘개고기 식용 문화’처럼 점진적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과연 소싸움대회가 오늘날 반드시 존재해야 할까요. 지금의 시대정신과 맞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A 위원)
소싸움대회를 존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 역시 전통 가치를 회복하는 게 급선무라고 조언했다. 정연학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은 “현재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소싸움대회는 자신이 응원하는 소에 돈을 거는 사행성 게임처럼 변질돼 본래 소싸움이 지녔던 농경사회 결속이라는 가치를 완전히 잃어버렸다”고 지적했다.
실제 국내 소싸움 중 가장 유명한 경북 청도 소싸움대회을 운영하는 청도공영사업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6월 18일부터 7월 3일까지 열린 ‘청도소싸움대회 최강자전’에 1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방문해 147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민속유산이라는 가치보다 문화상품으로서의 가치가 더 커진 셈이다.
정 학예연구관은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민속유산으로서 소싸움은 보존 가치가 있다”면서도 “앞으로 어떻게 지켜나갈 것이냐, 이것이 더 중요한 문제다. 추수철 농촌 마을을 한 데 묶어주는 옛 가치를 회복하는 게 먼저”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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