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각지의 명문 고택과 전통 가옥 등을 둘러보면 대개 남향집들이 많다. 남향집은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에는 햇볕이 방 안 깊숙이 들어와 사계절 살기에 좋기 때문이다. 반면 북향집은 낮에도 실내가 다소 어두컴컴하고 겨울에는 확실히 춥다. 자연히 전기세나 난방비가 남향집보다 많이 드는 편이다.
아파트도 마찬가지다. 거실 베란다가 남쪽으로 난 남향 아파트는 다른 향의 아파트보다 분양이 잘 되고 더 높은 값에 거래된다. 북향 아파트는 꺼리는 대상 1순위로 꼽히기도 한다. 과연 북향집은 무조건 피해야 할까.
서울 한강변을 지나다보면 강을 사이에 두고 아파트들이 줄지어 서 있는 게 보인다. 한강 북쪽의 강북 아파트들은 한강을 바라보는 남향(남동,남서 포함) 구조가 많다. 반면 한강 남쪽의 강남 아파트들은 최근 지어진 곳일수록 한강이 바라보이는 북향(북동, 북서 포함) 구조가 많은 편이다. 여기에는 ‘한강 뷰’를 확보해야 아파트 값어치가 높아진다는 현실적 계산이 개입돼 있다.
그렇다면 한강뷰를 가진 강변의 강남 아파트와 강북 아파트 중 어느쪽이 더 비쌀까. 남향집과 북향집의 논리대로라면 당연히 남쪽으로 한강을 바라보는 강북 아파트가 더 인기가 좋고 값도 높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각종 부동산 통계를 보면 북향인 강남 아파트들이 훨씬 더 인기가 높다. 심지어 원래 남향으로 지어진 강남 아파트들 중에는 거실 베란다 반대쪽으로 통유리를 설치하는 등 리모델링을 통해 한강 조망권을 확보하는 경우도 적잖다. 이는 인위적으로 아파트를 북향집으로 개조한 사례에 해당한다. ‘남향집에 살려면 3대가 적선(積善)해야 한다’는 옛말이 무색할 정도다.
사실 두 지역의 부동산값 차이는 남향이나 북향과는 별 관계가 없다. 이는 오히려 서울의 지운(地運)과 연계돼 있다. 강북과 강남은 행정구역상 모두 서울시이지만 땅의 ‘족보’는 엄연히 다르다. 한북정맥에 속하는 강북지역(한양)은 500여 년 넘게 조선의 수도 역할을 하면서 지운이 상당히 쇠한 반면, 한남정맥에 속하는 강남 땅은 백제의 수도였다가 1500년만에 다시 지운이 한창 부활하고 있는 곳이다. 강남의 지운이 강북보다 왕성하다는 뜻이다. 서울이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수도로 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한양기운을 강남이 보충해주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풍수적 해석이다.
남향보다는 배산임수(背山臨水)가 먼저다
강남과 강북의 비교는 오히려 배산임수의 풍수 원리로 살펴보아야 한다. 배산임수는 산을 집 뒤로 두고 물을 앞에서 맞이하거나 가까이 두는 구조를 가리킨다.
강북은 지형상 북쪽으로 산을 두고 남쪽으로 한강을 끼고 있는 지형이다. 그러니 강북에서는 배산임수와 잘 어울리는 남향집이 자연친화적인 주거가 된다.
강남은 강북과 지형이 다르다. 청계산에서 펼쳐져 나온 우면산이나 대모산 등이 남쪽에 있고 한강이 북쪽으로 흐르고 있다.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아지는 남고북저(南高北低) 지형이다. 따라서 남쪽의 산을 집 뒤로 두고 북쪽의 한강을 앞으로 바라보는 북향집이 자연친화적이다.
만약 강남에서 강을 뒤쪽으로 두고 산이 앞으로 보이는 남향집을 지으면 어떻게 될까. 무엇보다도 바람이 부는 방향을 생각해보면 억지스러운 구조가 될 수 있다.
바람은 기압의 차이에 따라 생기는 물리적 현상이다. 보통 낮에는 한강 쪽에서 우면산, 대모산 등 산쪽으로 강바람이 불고, 밤에는 반대로 산에서 아래쪽 즉 강쪽으로 산바람이 분다. 밤에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여름에도 써늘한 기운을 느낄 만큼 한기(寒氣)가 강하다. 인체 건강에 해롭다고 해서 살풍(殺風)이라고도 한다. 그러니 강남의 남향집은 밤마다 살풍을 정면으로 맞이하는 셈이다. 풍수에서는 건강뿐 아니라 재물운까지 빠져나간다고 본다. 다만 강남 남향집들은 주변에 들어선 고층건물 등이 살풍을 가려주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
북향 집도 풍수 명당
은퇴를 전후한 시니어 세대 중에는 자연을 즐기는 전원주택단지나 쾌적하고 전망이 좋은 아파트를 찾는 이들이 많다. 부동산 종사자들에 의하면 이들은 대체로 ‘전망 뷰’를 확보한 곳을 으뜸으로 꼽고, 습관적으로 남향 구조를 주로 많이 찾는다고 한다.
그러나 전망이나 향보다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점이 배산임수의 조건이다. 집 뒤로 산이나 언덕이 든든한 배경처럼 자리잡고 있고, 앞이 낮게 툭 트인 곳이나 물이 흘러가는 곳이면 남향이든 북향이든 동향이든 가릴 게 없다. 방향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지형과 지맥(地脈)의 흐름에 맞추어야 온전히 땅 기운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전북 고창군 줄포면 인촌리에 있는 인촌 김성수 생가와 충남 아산시 배방읍에 있는 조선의 명재상 맹사성 생가다. 두 곳 모두 북향집이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양택 명당으로 꼽힌다.
두 집이 북향을 하게된 데는 배산임수의 지형을 따랐기 때문이다. 즉 남쪽으로 산을 두르고 있고 북쪽으로 물길이 보이는 북향 구조를 해야만 지기가 맺힌 혈(穴)에 집을 지을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으로 상대적으로 인기가 떨어지는 북향집을 역으로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단독주택을 허물어 건물을 신축할 계획이라면 북향집이 더 유리할 수 있다. 뒷집의 일조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건물높이를 제한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낮에도 어둑한 것은 현대의 조명으로 해결할 수 있고, 겨울 추위는 최신식 난방 기구가 해결해주는 세상에서 북향집의 단점은 충분히 극복된다. 배산임수에 맞는 북향집이 점차 주목받게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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