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인 사람은 없다[내가 만난 名문장/백승주]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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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주 전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백승주 전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국제 사회에서는 초과 체류한 이주민을 ‘불법 체류자’라고 부르는 것은, 그들을 ‘불법’적인 존재로 낙인찍어 혐오를 조장하기에 ‘미등록’ ‘비정규’ 같은 중립적인 용어로 써야 한다는 논의가 제기되어 왔다…인간 자체가 ‘불법’일 수도 없으며 존재 자체가 ‘불법’이 될 수도 없다.”

―우춘희 ‘깻잎 투쟁기’ 중


사회언어학자라는 직업상 우리의 삶 속을 떠돌아다니며 우리를 알게 모르게 지배하는 말들을 의심하는 게 일상이다. 최근 내가 가장 관심 있게 살펴보는 단어는 ‘불법’이라는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지하철을 타는 것 자체가 불법이 되기도 하니, 이 말에 의문을 품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위의 문장을 만났다. 말을 의심하는 게 직업인 내가 ‘불법 체류자’라는 말을 왜 의심 없이 받아들여 왔을까.

얼마 전 교통법규 위반 사실을 알리는 고지서를 받았다. 학교 앞을 지날 때 잠시 딴생각을 하다가 규정 속도를 살짝 넘긴 모양이었다. 내가 인지하지도 못한 교통법규 위반. 그렇다면 나는 ‘불법 운전자’인 것일까? 그렇게 부르는 것을 허용한다면 이렇게 도로를 묘사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한국의 도로 위는 불법 운전자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우리는 불법 운전자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우춘희는 이 부분을 지적한다. 체류 기간 초과는 행정 절차를 위반한 것이지 형사적인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미등록 체류자들을 ‘불법 체류자’로 낙인찍어 왔다. ‘깻잎 투쟁기’는 한국 사회가 그리는 이주 노동의 지옥도를 보여준다. 노예 노동의 사례라고 불러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그 그림 속 이주 노동자들의 삶은, 우리가 잊고 있던 당연한 사실들을 알려 준다. 불법인 사람은 없다는 것, 등록, 미등록을 떠나 이주 노동자들은 한국 사회와 분리될 수 없는 한국 사회의 일원이라는 것. 그러니 이제는 ‘더 큰 우리’를 상상할 때이다.

#불법#인간#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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